창세기 44장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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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시험이 반복됩니다. 최소 13년 이상이었던 자신의 고통과 그로 인한 원망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 감옥에 갇힌 형제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 형제들에게, 요셉은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보입니다.
곡식 자루 속에 돈이나 은잔을 넣는 동일한 방식에 다시 걸려든 형제들. 모두를 대변해 사죄하고 희생을 자.청하는 것은, 38장에서 다뤘듯 밀도 높은 악행을 연달아 저질렀던 유다입니다. 유다의 변론을 읽다보면 요셉이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아곱)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유다의 주장의 핵심은 연달아 가장 사랑하는 라헬의 자녀들을 잃고 절망할 아버지의 슬픔입니다. 이집트 총리라는 절대 강자 앞에 아무것도 숨기는 것 없이 토로하는 듯 하나, 요셉의 행방을 죽었다고 표현하는 거짓말은 여전합니다.
코앞에서 이 기만적 고백을 듣는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다시 생각해보면 방대한 성서의 주요 인물 중에서도 자신의 가장 크고 심원한 죄악을 털어놓고 회개했던 인물은 의외로 적습니다.
밧세바를 얻기 위해 충신 우라야를 사지로 보내 죽게 했던 것을 털어놓았던 다윗,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죄를 닭울음 소리와 함께 자각했던 베드로, 예수의 발에 평생 매춘을 해 번 돈으로 마련한 향유를 붙고 그의 발을 닦을 수 있을 정도로 울었던 창녀.
하지만 반대편에는 선악과를 먹은 죄를 서로에게 떠넘기던 아담과 하와, 손에 동생의 피를 묻힌 채로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며 대들던 카인, 10번이나 가해진 재앙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모세의 대적자였던 파라오, 입으로만 회개하는 척 하며 여전히 무죄한 다윗을 적대하다 패전하고 자살을 택한 사울, 쿠데타가 성공해 남편이자 왕이던 아합이 죽고 장수 예후가 자신까지 죽이러 찾아오자 "주인을 죽인 시므리(직전 왕을 죽였던 반역자, 7일 만에 패배해 자살함)여, 평안하냐?"라고 비웃고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죽는 이세벨, 그리고 무죄한 이를 팔았음을 깨달았음에도 회개 대신 자살을 택한 가롯 유다가 있습니다. 확실히 성경 안엔 회개 대신 처벌과 죽음을 감수한 인간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돌이키고 신의 뜻을 따르는 삶에 뛰어든 인간들과, 기존 삶의 방향이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님을 자각한 후에도 그 길을 걸어간 인간들. 이 역시 앞으로 성서를 읽으며 생각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한 가지 더, 이 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스올'이란 단어입니다. Sheol(שאול 셰올/스올)로 야곱과 야곱의 말을 옮기는 유다에 의해 성경 최초로 등장하는 단어로, 어원은 '보이지 않는 세계, 묻다(ask), 요구하다, 깊다' 등 입니다. 최초 사용자인 야곱이 쓴 맥락을 보면 두 아들을 잃은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어차피 가게 될 죽음의 상태, 막연하고 변화 없는 사후 세계, 세계가 보편 인간에게 탄생의 대가처럼 늘 요구하는 죽음 혹은 시신이 묻히는 무덤과 지하 세계 등을 의미합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곳은 욥기 속 욥이 자신이 당연히 갈 곳, 범죄자도 가는 곳, 보편 인간이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이란 맥락으로 사용했고, 시편의 다윗은 '스올의 줄'이란 독특한 표현으로 사울을 위시한 자신의 적대자들, 즉 죽음의 위협을 표현했기 때문이고, 중동의 여러 고문서와 유적에서 같은 단어가 무덤이란 의미로도 통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 이야길 덧붙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일부 성경 번역본이나 다수의 기독교 목회자들이 스올을 지옥으로 번역하거나 설교하여 신약 시대 이후 확립된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구약 시대 때부터 존재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구약 성서 안에선 에녹이나 엘리야의 사례처럼 산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버린 경우만 아주 희귀하게 있을 뿐, 개신교 교리처럼 구원받은 자의 영혼이 가는 사후세계인 천국 혹은 낙원의 개념은 아직 없고, 되려 야곱과 다윗, 위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한 선한 왕 히스기야나 흠없음을 인정받은 의인 욥도 자신이 죽음 후 가게 될 곳이 '스올' 즉 죽음의 상태라고 예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명깊은 해석이네요 사울에게도 가룟유다에게도 전심으로 회개하는 길이 열려있었다는 것..
늘 정성껏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스올 저번에도 나와서 궁금했는데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절의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이란 표현이 좋더라고요
강렬한 부성애도 유대인의 특징인 것 같긴 하더라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