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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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 신화, 이야기 중엔 환상 뒤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들도 있습니다. 군담 소설이자 한반도 최초의 걸 크러시 서사라 할 <박씨 부인전>을 쓰게 한 현실은 인조의 찢어진 이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처참한 당대의 여성 인권과 호란의 폐허였습니다. 안내의 일기 속 유대인 소녀가 꿈꿨던 역사 수업을 듣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채 거릴 걷고,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저런 일상마저 모두 금지당했던 참혹한 현실을 더 아프게 보여줍니다.


이렇듯 요셉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사실 창세기 저자 시대 유대인들의 집단적 소망과 판타지를 그렸을 이 서사의 절정은 그들이 갈망했던 이상의 출발점이었을 현실을 유추하게 합니다. 


유사한 언어와 풍속을 가진 몹시 가깝고 유사한 풍속의 이민족들에게도 독특한 꿈(종교)과 특별한 자질 등을 이유로 배제 당하며 언젠간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성공 혹은 이상의 실현을 꿈꾸는 소수 민족. 환경적 한계로 상시화된 기근과 그로 인한 잦은 갈등에서 늘 피해자가 되어 고통 받던 그들의 꿈은 언젠가는 그 갈등의 원인를 없애고 가족과 가문을 영원히 구원하길 바라는 데 까지 성장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상단에 첨부한 5절의 요셉의 고백은 읽는 이의 마음을 여러모로 울립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 고통이 사실 무의미하고 이유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황폐한 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낸다면, 아무리 심한 고난과 실패도 견딜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해 낙관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신'이란 고통받은 보편 인류 속에서도 유독 더 심한 고통을 당하는 인간들의 너무 깊고 너무 오래 되었으며 치료할 방법조차 없는 상처에서 배어나온 유향과 몰약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압도적인 힘과 경제력으로 중동 전역에서 사들인 몰약으로 죽음과 무의미에 대한 저항을 시도한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와 그들의 종교는 스러졌으나, 대부분의 역사 동안 약자이자 빼앗기는 입장이었던 유대인의 영혼에서 응결된 유향과 몰약으로 쓴 성서는 3000년 가까운 시간과 부침을 이기고 지금 우리 앞에 살아 있습니다. 전지전능하고 위대한 참 신, 여호와 하나님의 기록이기 때문일까요? 


성서 전체를 벽에 새기는 조각인 부조에 비유한다면, 여호와, 예수, 명예로운 믿음의 조상들의 모습은 휘황찬.란한 양각으로 도드라진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부조도, 가혹하게 깎여 나간 음각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