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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다놓은 걸 이제서야 읽었다.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읽고 나서야 이게 왜 이렇게 유명한지를 알았다.

<카스테라>는 단편에 대한 나의 거부감을 부숴버렸고, 단편의 맛을 알게 해줬다.

단편의 왕이라는 체호프 읽고 한 번 비교해보고 싶다.



<카스테라>를 읽은 사람은 누구나 기발한 상상력, 독특한 문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읽는 내내 감탄하면서 봤다.

이런 상상을 한다고?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고?

이런 스타일은 한국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단순 기발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론 유머와 위트가 되어 웃음을 주고

떄론 씁쓸한 현실을 담아내며 위로와 희망을 주고

때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카스테라>

냉장의 역사는 부패와의 투쟁이다.

소중한 것이든, 유해한 것이든 모두 냉장고에 넣으면 해결될거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너구리 광견병에 걸리면 무슨 기분일까.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이건 GOAT다.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과 고민을 문학적 표현과 서사로 기발한 상상력을 곁들여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최고 아웃풋 단편소설 중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물론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어머니가 쓰러지고 세상에 떠밀려 산수를 시작하게 된 고등학생 주인공은

푸시맨 알바를 하며 우연히 출근하는 아버지를 만난다.

사회에 나오며 아버지의 산수를 알게 된 아들은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민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과 무게를 견디며 지하철로 출근한다.

자본주의라는 비좁은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구겨지며 왜곡되고 있었고

잘못 들어간 푸시맨 하나는 집단구타 당하고 실려갈 정도로 분노는 쌓이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밀고,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면 다시 그의 아들에게 밀리는 악순환의 아이러니..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는 실종된다.


아버지는 탈출한 것인가? 죽은 것인가?

무해한 초식동물이면서도 거대하고 강력한 기린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 하세요 팰리컨>

오리배로 세상을 누비며 세계시민과 연대하여 세상에 맞서자.



<야쿠르트 아줌마>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도도새, 변비, 보이지 않는 손, 경제학, 야쿠르트 아줌마 이 소재들을 이야기로 엮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이야기 저글링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똥도 제대로 못 쌀정도로 현실은 불안했고, 보이지 않는 손은 제대로 작동하기는 하는 건지

현대 경제학은 수시로 실패하여 병원에 실려갔다 살아돌아왔다.

이건 천재 학자 애덤 스미스도, 케인즈도, 보이지 않는 손도 해결할 수 없었다.

희망은 천재 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야쿠르트 아줌마였다.

주인공의 안색을 보고 건넨 야쿠르트 아줌마의 정이 변비 해결은 물론,

삭막한 사회에 온기를 전달해 주고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코리안 스탠더즈>

아는 형에게 벌어지는 사건은 농산물 개방,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은유로 느껴졌고

마지막 엔딩은 정말 재치있었다.



<대왕오징어의 기습>

어린 시절 보았던 대왕오징어에 대한 동심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훗날 허구인 줄 알았던 대왕오징어의 기습으로 상황이 반전된다.

대왕오징어 출현 순간을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동시 묘사한다.

대왕오징어는 동심과 자연파괴에 대한 대자연의 복수가 아닐까.



<헤드락>

주인공이 헐크 호건에게 헤드락을 당하고 실신하면서 시작한다.

실신하는 과정의 묘사가 영원처럼 느껴지며 재밌었다.

헤드락은 사회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힘의 논리를 상징한다고 느꼈다.

주인공 본인도 사회에 나가 호건에게 당한 헤드락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데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도 헤드락을 보면 눈감아준다.

이런 저런 경험을 쌓은 주인공은 헐크호건을 다시 만나 먼저 헤드락을 시전한다.

자신을 처음 괴롭혔던 괴물에 대한 복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갑을고시원의 체류기>

방이 아니라 관이라고 불러야 할 사이즈, 그런 작은 공간이라도

사람들이 언제든지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씁쓸한 바람.



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