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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쓰기 전 하나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내가 '과학'이라는 주제에 이렇게나 내성이 없을 줄은 몰랐다. '멋진 신세계' 초반부에 고봉밥 마냥 잔뜩 담긴 세계관의 설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책을 덮었는지 모른다. 부끄럽지만, '읽지 말까.'란 생각도 들었다. 이런 모습은 싫어하는 반찬을 앞에 두고 입을 꼭 닫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와 같아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들었지만, 다행히도 초반부를 벗어나자 주요 인물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나서부터는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글이란 단순히 읽고 상상하고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것조차 어려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나는 가야 할 길이 한참 멀은 것 같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와 직업, 신체적 특성, 관념까지 모두 조정할 수 있으며, '소마'라는 약을 통해 불안과 고통을 행복과 쾌락으로 덮어버리는, 공동체 안정을 강조하는 극도로 발전한 과학 문명사회가 있었다. 문명인 버나드와 레니나는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는데, 연애, 임신, 결혼 등이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린 문명사회와는 반대인 (독자에게는 익숙하지만 그들에게는) 낯선 문화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한때는 문명인이었지만 야만인 보호구역에 왔다 길을 잃어 결국 야만인으로 전락해 버린 린다와 그의 아들 존을 만나게 되었다. 야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린다를 보살피느라 존 또한 그 사회에 자연스레 스며들지 못하였고, 항상 말로만 듣던 문명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가고 있던 중 버나드의 권유로 그들은 문명사회로 향하게 된다.
존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고, 과학을 경험하고, 남몰래 좋아했던 레니나와 함께 사랑을 나눌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는 존에게 있어 해괴하게만 느껴져 결국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도망친다. 이후 린다는 '소마' 과다 복용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러한 사실에 슬퍼하는 존과는 달리 죽음을 가볍게 여기며 되려 조롱하는 듯한 문명의 아이들을 보면서 이 사회는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폭동을 일으킨다. 그것을 흥미롭게 여긴 이 사회의 지도자, 무스타파 몬드는 존과 일행들을 데려와 이야기를 나눈다.
몬드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사람들의 불안과 의문을 제어할 필요성을 느꼈고, 예술과 종교, 과학(최소한의 허용범위만을 둠) 등 그러한 것들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 이 사회의 실체였다. 그와 동시에 관념과 규범에 있어서 최면 학습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의문을 갖지 않도록 하였고, 전자 골프, 촉감 영화, 섹스와 같은 원초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문화를 자리 잡게 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소마'라는 마약을 통해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였다.
둘의 논쟁 끝에 존은 이 사회에 동화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문명사회의 외진 곳에서 이 모든 것에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또한 그의 숭고한 정신만으로는 문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죽음으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
자유 의지가 사라진 세상. 그것이 바로 멋진 신세계였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보카노프스키 처리를 거치며, 태어난 후에도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최면 학습으로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가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의 가치관으로 통합된 그들의 삶에는 해답이 분명하여 의심을 품을 필요가 없었고,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과 고통에 대해서는 ‘소마’라는 약을 통해 항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쾌락이라는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감각에 매료되어, 그들의 의식 깊은 곳에 머무르고 있는 자유 의지에 대해 인지하지도, 인지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공동체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실존적인 개인의 자아 대신 인위적인 공동체의 사회적 관념으로 갈아 끼우려는 행위는 분명한 디스토피아적 발상이며, 이는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인 ‘1984’에서도 공통적으로 묘사된 부분이었다. 다만 ‘1984’와의 차이점이라면, ‘1984’는 공포와 두려움의 파도가 작품 내내 거세게 몰아치지만 반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고독과 공허함의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비치는 아름다운 밤거리 속에 정처 없이 방황하는 자의 모습과 같아 보였으며, 작중의 존 역시 그들의 문명에 환멸 하여 스스로를 떠나보낸다. 우리는 ‘자유 의지’를 가진 개인으로서 이와 비슷한 존에 몰입하여, 이해받지 못하고 떠난 그의 정신을 마음속에 똑똑히 새기며 그를 위로한다. 그러다 문뜩 어떤 생각이 강하게 뇌리에 스쳤다. 존이 ‘멋진 신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오게 된다면, 그는 행복할 수 있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과 같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우리가 하는 모든 언행들은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외모와 취향, 삶의 목표를 가지며,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나아가 우리는 삶에 대해 항상 고뇌하며, 단순 쾌락을 넘어 심미적인 쾌락을 끊임없이 좇는 우리는 틀림없는 ‘존’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로 나의 자유 의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가? 나의 자유 의지는 정말로 순결한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결코 공동체에 벗어나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가 먹고 사용하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공동체의 산물들이며, 아무리 똑똑하다고 한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에 홀로 떨어진다면 절대 개인의 힘으로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인 것들 또한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 관념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마찬가지로 한낱 부분에 불과한 개인의 주관(자유 의지)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기에는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 세계 문화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남존여비 사회, 태어나는 순간 나의 존재에 대한 귀천이 결정되는 신분(계급) 사회, 지금 한창 현재진행형으로 대두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사상의 시발점인 사회적 약자(장애인, 소수 인종,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사회 등 지금에서는 이해 못 할 가치들은, 당대에는 아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것들이었다. 현재에 들어선 과거의 가치들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며 더 나은 사상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가치 사이에 경중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완벽한(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설에서는 ‘빅브라더’와 ‘세계 총통’과 이런 가치들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주체가 존재하였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그들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한 가치는 우리의 삶 속에서 피어오른 관념이며,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즉 우리가 바라고 좇고 믿는 가치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아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만 빛을 발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의 ‘자유 의지’는 정말로 자유로운 것인지, ‘사회적 관념’이 보기 좋게 둔갑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어쩌면 우리는 이미 ‘멋진 신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글을 몇 번이나 갈아엎는 와중에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존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며 ‘멋진 신세계’의 허무함에 몸서리치고 있었지만, 점차 나 역시 멋진 신세계의 주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부터는 존이 아닌 레니나를 주목하게 되었다. 모두가 얕잡아 보던 버나드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야만인 보호구역에 놀러 가게 됐을 때 초라하고 열악한 그들의 문화에 괴로움을 느꼈으며, 존이 그녀에게 느꼈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를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공장의 양산품같이 만들어진 육체와 정신이라 한들, 그녀에겐 그녀만의 의지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레니나는 존에게 거부당하고 이후 고통스러운 채찍질까지 당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비참한 심정이었을까. 고독했던 것은 존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존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한다. 이는 스스로를 벌함으로써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의식임과 동시에 쾌락이 범람하는 문명에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며, 호시탐탐 언제든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사회적 관념으로부터 자신의 자유 의지를 지켜내려는 상징적인 행위일 것이다. 그의 뜻은 거룩하고 고상하지만, 사회적 관념에 물들어버리는 것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오히려 그 편이 더 행복할 것이다.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맹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뇌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의 결말에서도 존과 레니나는 참담한 최후를 맞이하는 반면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버나드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것처럼 묘사된다. 나는 과연 존일까, 아니면 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로 가득 찬 '멋진 신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 중 하나일까.
옛날에 읽었는데 점점 현실과 멋진 신세계가 비슷해져감에 따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임. 1984는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억압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움에도 개인이 자유를 선택하지 않는게 와닿는다. - dc App
멋진 신세계가 보여준 행복해보이는 세상에 어느샌가 설득되고 납득되더라. 이성은 존을 말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총통의 말처럼 억압당하지만 행복한 그런 삶을 원하고 있었음
멋진 신세계의 진짜 매력, 개인적으로 멋진 신세계를 1984보다 생각할 점이 많은 명작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그 부분인 것 같음 1984 오세아니아는 고문과 텔레스크린으로 모든 걸 강요하고 그렇기에 확실한 악이지만 멋진 신세계 세계정부는 단 한번도 국민들에게 소마를 강요한 적 없고 실제로 그걸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섬과 통치기구라는 자리까지 만들어놨다는 사
실
팩트는 한국은 1984라는거임...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