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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폭을 수목을 땅을
바윗덩이를 무르녹이는 열기가 쏟아져도
오즉 네만 냉정한듯 차게 흐르는
강아
천치의 강아

국제 철교를 넘나드는 무장열차가
너의 흐름을 타고 하늘을 깰 듯 고동이 높을 때
언덕에 자리잡은 포대가 호령을 내려
너의 흐름에 선지피를 흘릴 때
너의 초조에
너의 공포에
너는 부질없는 전율밖에
가져본 다른 동작이 없고
너의 꿈은 꿈을 이어 흐른다

네가 흘러온
흘러온 산협에 무슨 자랑이 있었드냐
흘러가는 바다에 무슨 영광이 있으랴
이 은혜롭지 못한 꿈의 향연을
전통을 이어 남기려는가
강아
천치의 강아

너를 건너
키 넘는 풀 속을 들쥐처럼 기어
색다른 국경을 넘고저 숨어 다니는 무리
맥 풀린 백성의 사투리의 향려를 아는가
더욱 돌아오는 실망을
묘표를 걸머진 듯한 이 실망을 아느냐

강안에 무수한 해골이 뒹굴러도
해마다 계절마다 더해도
오즉 너의 꿈만 아름다운듯 고집하는
강아
천치의 강아



우선 이 시에서 시인은 강을 천치天痴, 즉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다.
시에서 강은 항상 같은 존재로 나온다.

2연에서 강은 전쟁 상황에서도 흐름을 유지하고있다.
강에 피가 쏟아져 들어와도 강은
초조와 공포와 전율을 가져도, 부질없다.
가져본 다른 동작이 없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긍정적과 부정적 이미지를 보았다.

긍정적 이미지로는 부정적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않고,
선지피가 강물에 쏟아져도 변하지않는 흐름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존재로 볼수있다.

1937년 부근에 쓰여진것으로 보아 독립군으로도 해석할수 있을듯하다.

누가봐도 그당시에는 일제에 편승하는것이 현명했다.
광복은 먼미래였으며, 일제는 막강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치天痴라고 썼다고 생각이 된다.

반면 부정적 이미지로는
현대의 무관심한 대중으로도 볼 수 있을듯 싶다.
물론 이 시가 쓰여진 시대상에는 안맞는다.

이 글을 현대로 가져온다면,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있다.
지금도 남성과 여성이 나뉘어 싸움이 일어나고있다.
지금도 푸른색과 붉은색의 정치파가 갈리어 싸움이 일어나고있다.

이 싸움들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게 아니다.

우리는 큰 사건에 주목하고, 그리고 일상에 이를 금방 망각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것은 4연의 존재들이다.

풀속을 기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기대하며 나아가는 사람들,
서민들의 아래에 숨죽여 고통을 부르짖고있는 사람들,
또 그런사람들이 무수한 해골이 되어 강 밑에 깔리어있는 사람들.

강의 유속은 윗부분이 가장 빠르다.
대중들의 대부분은 그 윗부분에 올라타서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고있다.

하지만 기저에 깔린 사람들도 보아야한다.
그들은 빠른 유속에 편승하지 못한다.
이들은 밑바닥에 들러붙은 먹이를 찾기위해
매일매일 돌틈사이를 뒤져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변화무쌍하고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회에 살고있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강물의 흐름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