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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장편 난이도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성>>소송>실종자 순인 것 같음.

가장 먼저 읽은 건 소송이었음.
사실 소송은 읽은 지가 좀 됐음. 글 쓰기 전에 기억 안 나는 부분은 다시 봤다. 성 읽기 전까지는 카프카 소설 중에 소송 제일 좋아했었음.
이것도 기본적으로 카프카 작품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세상의 거대한 알력 앞에 무력한 인간'을 묘사해놓은 작품. 특히 관료제나 비전공자 입장에서 보는 법적 절차의 복잡함 등을 많이 느낄 수 있음. 물론 카프카답게 그 재판이라는 것도 굉장히 비현실적인 조건들을 덧붙여서 만들었지만.
사실 배경 자체야 뭐 설정하기 나름이고 소설은 픽션이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도 이상하지 않음. 다만 주인공 K가 "자신이 현재 무엇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가?", "왜 형을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집행하지 않는가?"와 같은 자기 안위에 중요할 법한 요소들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음. 근데 후술할 성에서도 그렇고,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일정 이상의 의심은 표출하지 않는 경향이 하나의 장치이기도 하다고 추정됨. 그러니까 실은 이것까지도 부조리인 거지.
그래도 현대인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관료제의 폐해', '법적 절차의 난해함' 등이 소재라는 점 때문에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함. 카프카의 작품에는 부조리가 동반되기 때문에 너무 답답한 거 싫어하는 사람은 안 되겠지만.
나머지 2개와는 다르게 결말 부분까지 집필 되었기 때문에 완성도로 따지면 가장 높음.
마지막에 K가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냥 죽는 부분에서는 1984도 살짝 생각났음. 둘다 참 결말이 불쾌함.
그래도 난 단편들보다 좋아했음. 일상 속에 아무렇지 않게 비일상을 끼워넣고 자연스러운 척 해서 괴리감을 불러오는 그 특유의 기법도 성공적이었고.

두번째로 읽은 작품은 실종자임.
읽기 전에는 왜 부제가 아메리카지 싶었음. 근데 막상 읽어보니까 어이없게도 그냥 배경이 미국 사회이기 때문이더라. 사실 카프카 작품에서 미국이 이렇게 상세하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음.
배경을 제외하고 봐도 다른 카프카 작품들이랑은 중대한 부분에서 다름. 카프카 작품 전개의 주된 특징은 상술한 대로 '비현실적인' 부조리 앞에서 무력한 인간상을 부각하는 것. 이 작품에도 분명히 부조리라고 할 수 있는 상황들이 등장함. 주인공이 그것을 계기로 중대한 피해를 입는다는 점도 같음. 다만 다른 작품들이랑 다르게 별로 비현실적이지는 않음. 의외로 현실에도 있었을 법한 고난들임.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가?"의 대답도 생각보다 명쾌하고. 다른 장편 2가지나 변신, 시골의사 등은 발생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들이 닥치니 공포스러운 거라고 생각함. 근데 실종자의 고난은 그런 판타지적인 것이 아니라 공포스러움이나 의아함 같은 건 덜 했음. 아무래도 카프카의 그런 특징을 싫어했던 사람은 이걸로 입문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다른 작품들이랑 다르게 꽤 유머스러운 느낌도 듦. 여러모로 소위 '카프카스러운' 거랑은 좀 거리가 있는 작품.

마지막으로 읽은 작품이 갤에서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은 성.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기묘한 모습만 보여줌. 성의 주민들은 이상할 정도로 냉랭하고 건조한 태도로 일관하며, 성으로 가려는 K의 시도는 계속해서 허무하게 단념됨. 게다가 낮과 밤 같은 시간성의 표지들도 비현실적이고 불규칙적임. 하루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도착한 조수들을 두고 '옛' 조수들이라고 부르는 대목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
흔히들 카프카의 작품은 꿈 같다고 보는 경우가 많음. 난 카프카의 작품은 단순히 꿈이라기보다도 악몽에 가깝다고 생각함. 이해할 수도 없고, 규명될 수도 없으며 피할 수도 없는 좌절이 갑자기 덮쳐오는 데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답답함. 그게 이 작품을 내가 악몽에 빗대는 이유임. 카프카의 다른 작품 중에는 시골의사를 읽고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음.
사실 우리는 이렇듯 계속해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야기를 하나 더 알고 있음. 바로 그 유명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임. 실은 망망대해에서 괴수들도 만나고 동료들도 숱하게 죽어나가니 더 무서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음. 그 이유는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떠돌고 있으나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갈 운명이다."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일 수도, 호메로스의 감정을 절제한 표현 때문일 수도 있음. 다만 난 전자라고 생각함. 오디세이아에 대하여 우리는 결말도 과정도 이미 알고 있음.
반면 성은 계속해서 무의미한 시도와 실패를 비추기만 할 뿐 그것이 누구의 의중이라던가 전혀 제시하지 않음.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발생하는, 말 그대로 부조리한 상황극일 뿐인 거지.
그렇기 때문에 성이 더 환상적인 오디세이아보다 비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낸다는 게 나의 추론임.
여하튼 읽고 나니 역자 말마따나 이 소설은
"산에 가까이 다가가긴 했지만 길은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옆으로 휘었으며, 성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았다."라는 문장이 핵심인 듯함. 이 문장 대로 K는 성에 가까워지다가도 끝내 도달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