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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톨로지

사랑을 빙자한 철학얘기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잠시 얼이 나갔다는 작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했지만, 생각해 본적도 없는 주제여서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이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며, 먼저 사랑이 왜 당혹스러운 주제인지 설명하는데
여기엔 철학적 배경이 깔려있다며 플라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철학얘기를 풀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철학적 개념과 비유들.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이 때까지는 몰랐다.
작가가 철학얘기 하고 싶어서 이 책 쓴 것 같다는 걸. 사랑은 거들었을 뿐.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은 바로 이 철학이야기에 있다.
이해가 되면 철학사를 한번 정리하면서 작가의 사유를 따라 즐길 수 있으나,
이해가 안되면 철학적 개념과 비유 속에서 고통 받다 길을 잃을 것이다.
반복되는 비트겐슈타인, 침묵 타령, 위선과 허영 혐오에 진절머리 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남녀의 사랑 파트만으로도 얻을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사랑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며 비트겐슈타인 분석철학을 꺼낸다.

실재하지 않고 실증할 수 없는 것은 침묵 속에서 지나쳐야 하는 것이다.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일컬어지는 애정, 친밀감, 배려, 자기희생, 모성애 등은 모두 사랑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의 위선과 허영을 까는데에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지적 허영,
지성과 예술을 중시한다며 고상한 인간인 척 하는 심리적 허영.
이 작가는 이것을 참지 못한다.
혐오를 넘어서 극혐한다.

이를 설명하기위해 플라톤에서 이어져내려온 지성 중시의 사상과 소피스트를 기원으로 하는 감각 중시의 사상을 철학사로 푼다.
철학사에서 인간의 지성은 신을 닮은 완벽한 요소에서, 한계가 있고 불완전한 것으로 격하된다.
인간과 동물, 지성과 본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고,
그제야 지성과 본능을 둘러싼 위선과 허영을 깔 수 있다.

육체적 본능은 지성에 비해 상스럽다고 느끼는 것,
지성과 교양을 추구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등
모두 위선과 허영이다.
지성이든, 물질이든, 본능이든, 교양이든 간에 우열은 없으므로.

이 빌드업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사랑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남녀간의 애정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쳤다면 이 파트만 봐도 상관 없다.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일부 현실이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후손의 양육까지 고려된 여자의 사랑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는 것에 초점을 둔 남자의 사랑
이러한 생물학적 설계를 바탕으로 각자만의 가치관을 지닌 남녀의 만남은
현실에서 다양한 비극을 탄생시킨다.

사랑(애정)과 섹스, 결혼을 바라보는 남녀의 관점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이후는 다시 조금 어려운 철학 얘기다.
실증할 수 없는 것의 포착, 내용과 형식과 예술, 논리와 형식 등 
알듯 말듯한 내용을 지나 갑분 동양철학스러운 결론에 이른다.

지성의 한계로 필연은 소멸되고 우연만 남은 세상에서
사랑에 대한 운명이니, 숭고한 것이니 하는 말들은 다 기만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온 세상이 나이기에 나를 사랑하듯이,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인간에게 이는 불가능하지만
이런 노력 가운데에 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녀의 사랑인 애정에 관심이 있고 철학까지 좋아한다면 강력 추천하나
책 전반에 드러난 작가의 가치관은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