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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그리 땡기지 않아 감상을 안 쓰는 편이 나을지 밍기적거리고 있던 책들과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지운 감상
<듄> 최신 영화를 보며 과연 다음편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다시 펼쳐본 듄 2권은, 기억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글이었다. 1권을 보면서 들었던 숙명적인 전개 및 서술 방식은 2권에서는 그리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데, 대신 2권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유목민 프레멘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폴과 옛 동료들의 문제다. 듄을 처음 읽던 어릴 적에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보니 2권의 내용은 너무나 이븐 칼둔의 <무깟디마>의 도식에 충실하다. 유목민 집단 1세대가 서로 뚜렷한 동질감-혹은 '아싸비아'-을 가지고 어디에도 정주하지 않은 채 달려나가다가 점차 기세를 얻어 흥해 어딘가에 정주하게 되면 2세대부터는 서서히 파편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며 본래 집단의 결속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망하게 된다는 이야기. 중앙집권 체제를 불신하는 부족 국가가 겹쳐 보이는 감이 있는데(예를 들어, 결국 소련도 미국도 현대적인 중앙정부를 세우는 데에 실패한 아프가니스탄이라든가) 핵심은 어쨌든 척박한 땅일수록 강인한 것이 자라나며 풍요에 절여지면 뿌리부터 썩어버린다는, 약간은 뻔한 역사철학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고.
창작물에서 이런 구도는 꽤나 빈번한 편인데, 특히 애니메이션 <코드 기아스>는 여러 측면에서 듄을 연상시키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권력을 쥐게 되자 타락해버린 흑의 기사단이나 듄 2권의 결말을 암시하는 희생적 제왕 주인공이 그 예시겠다. (물론, 애초에 임의의 사람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기아스' 설정부터가 실제 켈트 신화의 기아스보다는 베네 게세리트의 '목소리'에 더 가깝다) 듄에서부터 코드 기아스까지의 거리는 시공간적으로 너무나 먼 것이라 시간축에서 가까운 <스타워즈>, <워해머 40,000>나 공간축에서 가까운 <왕좌의 게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비교하면 그 놀라운 유사성에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감이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너무 멀어져 그 생각이 잘 나지 않기에 비로소 유사해질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테다. (더 냉소적으로 말하면, 그대로 베껴와도 걸릴 게 없으니)
헌데 정작 그 때문에 듄 2권을 읽으며 영화의 이미지보다는 그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더 떠오른다면 그것도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책에서의 챠니의 이미지와 영화 <듄>에서의 이미지가 도저히 겹쳐지지 않는데, 눈을 잃어 두려움의 상징이 된 황제 폴과 <코드 기아스> 후반부의 제로가 겹쳐보이는 건 어찌나 손쉬운 일인지. (사실 영화 속 챠니는 오히려 폴의 여동생과 더 잘 맞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가, 1권을 읽을 때보다 약간 조금 실망한 감이 없잖게 있다. 더군다나 듄 시리즈의 이후 이야기가 이와 비슷한 구도를 사용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입장에서 과연 듄을 다시 읽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살짝 된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마 읽지 않을까 싶다. 나름대로 재밌기는 하니까.
<한국 요괴 도감>을 비롯해서 여러 동아시아 요괴, 기담을 수집하는 분이 낸 책인데, 기대했던 것만큼 괜찮지는 않았다. 한반도 북부 지역의 이름 없는 부적을 포함해 다양한 부적을 수집해놓았지만, 일제 시절 민간 무속 신앙 수집 과정 중에서 다소 열화된 것들을 열거해놓았던 탓일지 <한국의 부적>에 실려 있던 것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단순 수집에 가까운 책인지 설명도 아무래도 거의 없는데, 그나마 이름 있는 부적으로 실려 있는 부적은 두세 줄로나마 설명이라도 있다만 무명의 부적을 모아놓은 앞부분은 발견 지역 외에는 아무 내용도 없다. (설명 아래에 영역으로 다시 써둔 것까지 있어 사실 박물관 카탈로그를 보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도 민간 부적의 내용을 잠시 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것들이 간간히 있는데, 특히 관운장(관우)이 적혀 있는 부적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당시 조선에서도 관우 숭배가 어느 정도 있었구나 싶어서 묘하다고나 할까. 그 외에는 그냥저냥이었다.
예전에 읽은 바 있는 소설이지만, 다시 읽으니 감상이 조금 달라졌다.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은 핵전쟁 이후 몰락한 인류가 중세 암흑기를 재차 거친 뒤 과거의 기술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수도원을 중심으로 다시 문명을 재건하는 이야기다. 다시 몰락할 문명을. 요는, 인류의 몰락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의 시점에서 어떻게 새로운 중세의 암흑기를 보고 웃다가, 재건된 문명이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것을 보며 웃음을 멈추느냐에 있을 테다. 실제 역사에서 교회와 수도원이 그랬듯, 기독교는 기술이 피난할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그곳에서 기술은 거의 성장을 멈춘 채 고요히 보존되었다. 이들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것을 사용할 수 없는데다,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망칠 것이다.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수도원의 학자와 제국의 학자 사이의 대립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기술의 중립성은 대체로 허상에 가깝다. (어떤 것이 안 그렇겠냐마는...)
기존에는 이 글을 읽으며 1부의 이야기와 설정에 주목했다. 익숙한 미국의 지명은 그대로 남은 채 수도원이 세워져 중세적인 생활을 하며, 우리에게는 미래의 일처럼 보이는 것을 먼 과거의 위대하고도 사이한 유적처럼 바라보고 근현대 과학 문서를 성서처럼 섬기며 기적의 증거로 모시는 우스꽝스러운 촌극. 이런 배경 자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에서 꽤나 흔한 일이며, 한국 판타지 웹소설에서도 <망겜의 성기사>처럼 기묘한 한국-중세 판타지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지금 다시 보자니, 저자의 순환적 역사관에 담겨 있는 답답한 숙명론이 더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우리는 다시 멸망할 것이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할 것이라는 담담한 절망감.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당시의 경험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기어이 말년에는 자살했다는 걸 생각해보자니 그게 꼭 이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정작 기독교의 역사철학은 순환적이라기보다는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형태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지만.
그리고 번역. 번역 상태가 정말 좋지 못하다. 대놓고 문단 내에서 서로 상반되는 문장이 있어 원문을 참조하지 않아도 오역인 게 눈에 선한 게 있는 수준이라-사실 늘 궁금한 거지만, 이런 번역은 원어를 잘 못하더라도 한국어를 읽으며 자연스레 밟히는 게 아닌가? 하다못해 어색해서라도 역주를 달아야 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어를 잘 못하는 것인가?-<높은 성의 사내>가 재번역된 것처럼 이쪽도 하루 빨리 재번역되어서 새로 SF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으면 한다. 한국에서 SF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는데 정작 읽어볼 만한 글이 너무 소개되지 않는 것 같다. 한국 SF 붐이 매우 P1C적인 맥락에서만 수용되고 소비되기 때문일까? (옥타비아 버틀러의 글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 책이나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전쟁> 같은 흥미로운 소설이 재간되지 않는 반면 아직 저작권도 팔팔한 글들이 이렇게나 꾸준히 번역되는 건 역시 독자 및 역자의 관심사가 이쪽이라서라고 밖에는......)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파프리카>가 한국에서도 워낙 유명한 데에 비해 소설 원작은 그리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다행일지도 모르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로 유명한 이 츠츠이 야스타카가 일전 위1안부 관련 망언으로 한국 언론에서도 몰매를 맞은 적이 있어 괜히 언급되었다간 혼자 맞을 매를 함께 맞기나 더하겠던가. 다만 왜 덜 유명한지는 알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영화와 소설이 완전히 다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파프리카> 역시 소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그리고 영화보다 별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읽었다면 나름 참신한 이야기 소재 덕분에 재밌게 읽었겠지만, 이미 DC 미니와 꿈-현실 사이의 융해를 소설보다 훨씬 훌륭하게 다룬 영화가 머릿속에 박힌 탓에 부족한 글솜씨가 오히려 눈에 밟혔다고나 할까. 내가 일본 SF를 굳이 글로 읽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몇 번이고 드는 걸 보면 정말 잘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현실과 꿈이 분간 불가능해지는 2권에서는 글이 훨씬 볼만해지지만, 정작 연구소 내의 알력다툼과 인간관계를 다루는 1권이 너무 유치하다. (이게 내가 일본 서브컬쳐에 워낙 익숙하다보니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으면 바로 유치하다는 평을 내리는 탓인 걸지, 아니면 이 시기 일본 대중문학의 어조가 원래 이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잘라버리고 곧장 꿈 침식에 휩싸인 시마 원장 등의 사건으로 돌입한 게 상당히 좋은 선택이었구나 싶은데, 정신분석과 밀교의 성적인 측면 탓에 유사 성교에 가까운 묘사가 자주 나오는 것도 솔직히 굳이 싶다. (내 기억으로는 츠츠이의 단편에서도 이런 변태성이 꽤나 드러나던 것 같은데, 솔직히 그리 취향은 아니다) 엔딩 역시 사회로부터 괴리된 기술 및 기술자라는 측면에 주목해 도키타를 좀 더 중요하게 다루는 영화판이, 그저 사회의 명예욕에 휩싸여 이를 명분으로만 쓰는 이누이의 최후의 발작보다는 낫기도 하고.
반면 영화판과는 달리 소설판에서는 DC 미니의 설정에 대한 것이 좀 더 흥미롭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져서 꿈의 존재가 현실로 넘어온다는 것만을 다루는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석으로서 DC 미니를 다룬다. 현실에서 꿈의 존재를 끌고 올 수 있고 꿈에서 현실의 존재를 끌고 올 수 있어 구분이 의미 없어 보이는 데에 반해, DC 미니만큼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 꿈을 여럿 꾼다고 DC 미니가 복제되는 일은 없다.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컴퓨터공학의 정적 메모리 및 변수와 상당히 흡사해보이는 설정인데, 실제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게임 <Rec1ursed>과 함께 보면 그 유사성이 잘 보인다. 누군가의 꿈은 그 사람이 부른 프로세스와 가상 메모리의 영역에 있고 이를 서로 다른 프로세스가 덮어씌우거나 공유할 수도 있고 심지어 여러 번의 꿈/프로세스로 그곳의 물건을 꺼내와 복제할 수 있지만, 정적 변수와 메모리는 고정되어 있어 현실에서든 꿈에서든 DC 미니는 늘 그대로다. 90년대 이후의 다른 SF에서도 곧잘 느끼는 것이지만, 컴퓨터라는 존재가 SF에 미친 영향이 상당한 것이리라.
00년대의 한국 도시괴담을 다루는 짧은 책이다. 빨간 마스크 유행과 초중고교의 학교 괴담, 대학교의 학교 괴담, 그리고 일본과의 비교를 다루는 서로 다른 논문을 엮은 듯하고, 기대한 것에 비해 얻을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 시기의 괴담이 대체로 일본 괴담의 직수입에 가까운 것은 익히 알려진 바고 그나마도 아동용 오락서적 및 영화의 영향이 컸다. 실제로 지금 아이들이 소비하는 괴담은 일본 괴담과는 거리가 먼데, <무서운 게 딱 좋아> 만화나 문방구의 자그마한 괴담 책의 자리를 지금 차지하는 것은 SCP와 백룸에 대한 만화/쇼츠다. 비슷한 내용의 일본 괴담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게 흥미롭다면 흥미롭겠지만, 1등을 질투해서 죽인 2등에게 1등이 찾아온다는 괴담에서 1등을 죽은 "친구"라고 부르기 때문에 성적보다는 우정을 신경 쓰는 학급 중간층의 정서가 엿보인다는 분석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는데, 학교에 대한 적대감이 일본보다 한국에서 월등히 크고 야간 자율학습의 존재가 학교 괴담의 일상성을 만든다는 점이나, 어떻게 전혀 어둡지도 않고 비일상적이지도 않은 도시에서 괴담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점, 빨간마스크 유행 이전의 입이 찢어진 여자 괴담이 본토 일본에서부터 학생의 빠른 귀가를 원하는 학부모의 마음-학원/보습소를 보내지 못해 이를 질투해서거나, 정말 단순히 집에서 학교까지의 아이에게는 꽤나 먼 거리 사이에서 벌어질 일을 걱정해서거나-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점, 모든 학교괴담을 알게 되면 죽어야 한다는 괴담이 일본에서는 매우 손쉽게 알게 되는 7개인 반면 한국에서는 개인이 결코 알기 힘들 100개라는 점 등이 나름대로 그럴싸한 이유와 함께 소개되었다. 그리고 읽으며 역시 느꼈지만, 한국은 자극적인 괴담을 별로 안 좋아한다. 한국의 괴담 수용은 대체로 일본의 불길함을 중화시키는 방식이라, 소위 '군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괴담이 한국 괴담의 마지노선이긴 하구나 싶다. (재미없다는 말이다)
이런 감상 좋다
쓰쓰이는 원래 단편이든 장편이든 유치한 묘사와 빈약한 설정을 풍자 희화화 블랙유머 슬랩스틱 변태적 성묘사 스킨 덮어씌우고 팔아먹는 짓을 데뷔할 때부터 계속 해왔어서, 파프리카 1권 정도면 그래도 진지한 sf에 가까운 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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