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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 작가의 말에 적혀 있듯, 청소년 교양소설Bildung1sroman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SF소설로 끝난 글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여기까지 오면 슬슬 저자의 심리분석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단요의 글에서 매번 등장하는 유사한 병적인 정신과 갈등, 그리고 이런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이 교양소설의 형태로 인해서 훨씬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골조는 냉소적이고 의심 가득한 1호,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2호, 차분하고 도덕적인 3호로 구성된 다중인격자 소년 주인공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회에 맞추되 스스로를 긍정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인데, 1호와 3호는 둘 다 2호를 어떻게든 붙잡아놓으려 하며, 1호와 2호 둘 다 3호가 2호의 사고 이후 삽입된 기계 인격일 거라고 의심하되, 3호는 그런 1, 2호의 의심을 가볍게 무시하며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고 여긴다. 그리고 1호가 의심하던 정황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주본격인 1호는 3호의 도움 없이 2호를 수용해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그러나 물론, <목소리의 증명>이 정상적인 성장소설이었다면 이 감상문이 이렇게 당혹스러운 논조로 시작하지는 않았을 테다. 이 성장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2호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 사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인격 그 자체가 사회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1호와 3호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1호는 자신이 2호를 품고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걸 이해받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그걸 정말로 보여준다면 돌아올 것은 경악과 공포, 그리고 거리두기 뿐일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단요의 다른 글에서도 나오듯, 재미로 친구를 난간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충동은 여기서도 등장한다. 1호는 3호를 의심하면서도, 3호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자신보다 훨씬 더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지는 인격이라는 것을 늘 질투하며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2호는 그런 1호에게 자신의 방식을 따르기를 계속 권유하며, 소설의 논조 역시 2호의 삶이 '다른' 세상에서는 충분히 긍정받을 것임을 살며시 밝힌다. 그 정상성은 사회 맥락에 따른 것이라며.
이런 2호의 가치관은 <목소리의 증명>보다는 다른 저작에서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웹소설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에서 명시적인 도덕 없이 서로에 대한 은원으로 구성되는 엘프의 잔혹한 사회에서조차 경악스러운 사이코패스로 취급받는 심문관, <개의 설계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의로 자해하는 주인공, <케이크 손>에서 이번에는 여자의 몸으로 등장하는 컨트롤 프릭 친구, 그리고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에서는, 그냥 모든 작품에서 매우 뚜렷한 이인증적 서술까지. 이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라는 질문은 마지막 단편집에 실린 에세이에서 살짝 드러나는 편인데, <계약직>의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는 좀 더 솔직한 마음이 나온다. 이미 죽은 상태로 살아가는 도시, 다른 그 누가 봐도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형태일지라도, 그 삶의 끝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셈이다.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만, 그런 자신이라도 그냥 잘 살고 싶다는 것. 반면, 가치관과 별개로 2호의 목소리가 가장 노골적이고 절절하게 나온 건 <목소리의 증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 <목소리의 증명>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우려되는 게 있기는 한데, 최근작으로 가면 갈수록 자신의 병적인 자아를 굳이 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정말로 다른 독자에게 좋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목소리의 증명>은 이런 병적인 자신을 안심하고 가까이 대해도 좋다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정신병의 목줄을 붙잡았는지를 서술하는 소설에 가깝다. 그러니까, 사실은 성장소설은 성장소설이되 SF의 탈을 쓴 사소설에 더 가깝다. 외부에서 삽입되었다가 충분히 준비만 된다면 "스스로 나를 불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도덕 인격의 말과, 소설 서술 시점 이전에 발생한 급발진 사고를 함께 겹쳐보면 조금 더 오싹해진다. (읽는 게 즐겁기는 하지만, 그건 사실 말했듯 <계약직>에서 이 모든 편린을 충분히 엿봤기 때문이고, 어쨌든 나도 그리 정상적이진 않은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반사회적"이라고까지 평가 받는 병적인 증세를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확실히 일반적 통념과 어긋나 통념이 대체 뭘까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목소리의 증명>은 확실히 성장소설이 될 수 있겠거니 싶다. 개인과 자유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회 맥락에 맞춰서 고무줄처럼 변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우울증과 여타 정신병에 대한 사회의 기준을 불신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2호의 반사회성이 천재성의 어두운 면이든, 아니면 별개인데 우연히 한데 붙어있든 간에, 반사회성을 통제하면서 천재성만 취하려는 사회를 다룬다기엔 너무나 집착적인 유사 심리학 설정놀음을 하면서도 동시에 과학으로는 해결 불가능하고 무조건 불가분한 것처럼 묘사하니까,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너무 음모론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마치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쓴 법이라는 말을 가져다 아무튼 입에 쓸수록 좋은 약이라고 항변하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