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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04년, 필립 로스가 70대에 접어들었을 때 집필한 대체역사물이다.

설정부터 살펴보자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년 후인 1940년 민.주당에서는 루스벨트가 3선에 도전 중이었고 미국의 중립적 입장을 완화하여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참여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공화당에서는 갑작스레 영웅적인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그는 대서양을, 즉 뉴욕과 파리를 착륙 없이 단독으로 횡단의 세계 최초의 인물이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그는 루스벨트와는 다르게 미국의 고립주의를 주장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광일 뿐이라며 ,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 국민의 평화를 지키고 무분별한 희생을 막을 것이라 호소한다.
동시에 어느 연설에서 린드버그는 '이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가장 중요한 집단'으로 '유대인'들을 언급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반유대주의적, 더 나아가 친나치적인 성향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보인다.
그리고 현실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진행되어, 린드버그가 당선된다.

그렇게 루스벨트가 아닌 린드버그 대통령이 서게 된 미국에서, 작중 화자 '필립 로스'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험 외판원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알뜰하게 가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니,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형 샌디, 주인공이자 화자인 필립, 그리고 부모님이 안 계셔 같이 살고 있는 사촌형 앨빈.

평범한 가정이었던 곳이 린드버그가 당선된 이후,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크고 작은 결함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 갈등의 빌드업은 중반부까지 이어지는데 다소 지루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나긴 빌드업이 끝난 후반부는 가히 폭발적이다. 

포그롬. 유대인 대박해가 묘사된다. 방화, 강도, 폭동, 살인 등등.
외부에서 비극이 찾아왔다면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가족이 살기 위해 네 가족이 대신 당해야 하고, 내가 당하는 대신 네가 당해야 한다. 그런 비극이 폭발적으로 후반부에 이어지면서 가시지 않는 두려움을 그려낸다.

후반부 대박해 장면은 사건을 대놓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의 비중은 오히려 매우 적은데, 간접적으로 나타내다 보니 그 후의 비극성과 잔혹함이 오히려 가중되는 듯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글도 글이지만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로 직접 구체화된 장면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던…근데 스트리밍해주는 ott가 없네…후반부의 대박해 파트는 진짜…보는 독자가 안절부절해지는 정도였달까요…

아무튼 초반부의 분위기와 중반부의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빌드업과 후반부의 대폭발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자 차이 때문인지 작품 자체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목가나 새버스의 극장, 휴먼 스테인 같은 작품들이랑 비교해보면 밀도가 다소 낮았고 결말도 다소 급하게 끝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전자의 작품들이 작가의 대표작이니…
어쨌든 결국 대체 역사물의 묘미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역사의 if를 가능케하고 그 변화구를 최대한 끌어올림으로써 보여지는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일 텐데 그 자체를 즐기기에는 대문호의 글빨과 어우러져 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