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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작품인데, 작가의 기구한 삶 만큼이나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가 숨막힌다.


자식이 죽어가는데 돈 아끼고 땅 사는 아버지 제임스, 마약 중독자 어머니 메리, 알코올 중독자 제이미, 폐병에 걸려 하루 종일 기침하는 에드먼드.. 평범한 가족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이들이 그려나가는 하루 동안의 드라마는 어머니 메리가 중심이 되어 분위기를 전환한다.


오닐은 메리를 마치 모르핀처럼 사용하는데, 메리가 퇴장하자마자 싸우던 제임스와 제이미가 그녀가 돌아오자 싸운적 없다는듯 과장스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억지로 유쾌하게 만드는 모습이 그 예시다. 극 내의 등장인물인 그들과 달리 서사를 따라가는 독자 입장에선 약이라도 맞은듯 한순간에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이들을 보며 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의 전환은 메리의 마약중독이 밝혀지고 나선 비극의 비중이 더 강해지게 된다. 유년시절 빈곤하게 살아 누구보다 돈을 모으고 싶었던 제임스의 사연이나 제임스의 인색함으로 인해 변변한 집 한채 가져본적 없었던 매리, 큰 동생 유진을 어린 시절 홍역을 옮겨 죽게 만들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제이미, 제이미의 악영향으로 알코올 중독자로서 방탕한 삶을 살게된 에드먼드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희극적인 분위기로의 전환은 불가능해진다.


이는 후반부에 몽롱한 상태로 드레스를 입은채 과거를 회상하는 메리가 등장하자 작품 내내 그녀를 반겼었던 아들 제이미가 그녀가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에 실망한 채 '정신나간 장면! 오필리아 등장!' 라고 비웃는 모습에서 그 섬뜩함을 가중시킨다.


그 후 피아노를 치며 추억을 회상하던 메리의 독백과 그를 말 없이 바라보는 가족들, 어두운 밤을 진동시키는 안개고동 소리를 끝으로 작품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럼에도 이 비극은 오닐의 가족에 대한 연민과 화해가 담긴 메세지로 느껴진다. 오닐의 모습이 제일 잘 나타난 에드먼드의 변화가 그 예시로, 아버지의 구두쇠 짓을 비난했지만 사연을 듣고선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거나, 제이미가 질투를 드러내면서도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주는 모습을 보자 그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며 기꺼이 화해하려한다.


결국 결말까지 바뀐 일은 없다. 제임스는 앞으로도 인색하게 굴것이고, 메리는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제이미는 알코올 중독으로 급사하거나 창녀와 놀아나며 현실을 비관할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들이 밤으로의 긴 여로에 올랐다는 것에 있다. 이들은 가식으로 점철된 환한 빛 아래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일부러 외면해오던 과거의 단절을 끊어가며 고통스럽고 어두컴컴한 밤으로의 여행길에 오를 것을 택했다. 마치 에드먼드가 가족을 이해하려 결심한 것처럼 오닐 또한 눈물 흘리면서도 어두웠던 안개를 들춰 스스로 이 긴 여로를 만들며 연민을 표현한다. 비로소 이 밤으로의 긴 여로가 오닐이 택한 화해의 방식이자 타이론 일가가 걸어나갈 길임을 알게된 독자에게 메리의 독백 이후 이어지던 안개고동이 더 이상 소름 끼치는 소리처럼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타이론 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고 밤을 채우는 이 소리는 이들이 걸어나갈 그 긴 여로를 축복하는 유진의 마음을 담아 밤을 깊게 침잠시키며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