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피투된 개인이 선택으로 기투하여야 하는데
카프카 소설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느낌이 듦. 어떤 선택을 했어도 결말이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악몽 같이 현실을 비추어주지만, 그게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듯.
그냥 계란에 밥 비벼서 먹는데 생각나서 적어봄..
카프카 소설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느낌이 듦. 어떤 선택을 했어도 결말이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악몽 같이 현실을 비추어주지만, 그게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듯.
그냥 계란에 밥 비벼서 먹는데 생각나서 적어봄..
계란에 밥 비벼서 (x) 계란이 밥속으로 뛰어든거 (o) 계란 무시하지 마라.
와 님 천재?????
제가 사실 계란프라이 부르크 대학에서 계란마리틴 하이데거의 형이상해 주제로 박사땄습니다.
실존주의의 아버지지
이건 맞다고 생각함.
사실 실존주의에서 미래로 기투한다 이거는 난 낭만적이고 좀 철부지 사상 같음
추천하거나 선호하시는 철학 사조가 있으신지? 공부에 도움이 될까 여쭙사
실존주의와 실존철학은 엄밀하게 다른 의미임 애초에 니가 설명한 부분은 학문적인 현상학의 갈래로서 존재의 현상학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카프카나 카뮈 같은 경우는 실존주의, 문학 사조를 말하는거임
그리고 피투적으로 기투하는 현존재라는 개념은 하이데거에 의해서 처음으로 개념화되는데, 이 논문이 <존재와 시간>이고 발표가 1919년임, 카프카의 변신은 최초 공개가 1915이고 문학사조가 내면의 고백으로 치중되었던 낭만주의를 지나 삶의 문제, 살아있음 자체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던 시절이기 때문에 실존주의라고 부르는것
ㅇㅎ
니 말이 맞다
조금 더 엄밀한 논증을 하자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라는 주장을 하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라는 에세이를 발표하는데, 하이데거가 이 에세이에 대한 질문을 하도 많이 받으니까 <휴머니즘 서간>에서 제발 개소리 하지말라며 사르트르를 대놓고 비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음. 즉 사르트르는 살아있음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본질을 추구해서는 안되는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하이데거는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존재의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주체적은 행위자로서 역할을 되게 강조함. (후기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이게 완전히 전복되지만) 즉 피투적으로 기투하는 행위가 왜 필요하냐? 그것은 죽음과 양심을 통해 현존재 즉 살아있는것에 대한 물음을 본질적으로 던질 수 있고, 그 물음이야말로 존재에 대한
의 단초가 되는 시발점으로 본 것임. 그럼 과격하게 주장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라는 사르트르의 논증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게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라는 것임 왜냐하면 하이데거는 존재의 물음을 던지는 것이 현존재의 목적이자 본질로 보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고, 살아있음은 살아있는 것 자체라는 실존주의와 피투된 세계에서 기투하며 존재의 물음을 찾아가는 현존재를 놓고 봤을때, 카프카나 까뮈는 전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잖음.
인상적이네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어요.. 정성글 감사합니다.
카프카는 어차피 이러저러한 식으로 많은 해석이 되어서... 실존주의도 개중 하나인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