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에게 응답
2002/04/18 가라타니 고진

아즈마 히로키, 카마다 테츠야, 오스기 시게오, 치바 카즈미키 등이 나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응답하는게 어떻겠냐고들 한다. 그러나 이런 놈들의 저급한 비판에 제대로 응답할 이유는 없다.

이들은 <비평공간>과 <군상> 신인상 출신이다. 세간에선 내가 높게 평가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상대적으로 좋게 평가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후의 일은 또 다른 얘기다. 내 평가는 달라졌다. 다만 그걸 일일히 말하는 건 좀 아니라 생각해 길게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착각해서 이빨을 드러낸다면 한 마디 해 줘야 할 것이다.

이 놈들은 전적으로 내 언설의 영향 하에서 자랐고, 1인분 몫을 해내려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에게 시비를 건다. 하지만 그건 나에 대한 종속성을 더욱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난 이런 스토커들에게 쫓기고 싶지 않다). 애당초 이런 심리는 너무 단순한데, 그걸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만 봐도 이 놈들에겐 가망이 없다. 그들은 트랜스크리틱을 논평할 수 없다. 단적으로 이론적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도 공부하려는 지적인 관심이나 윤리적인 동기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없다. 오직 뭔가 화려하게 유명해지고 싶다는 심리가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문학적 능력이 없다. 처음부터 '비평의 비평'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을 읽을 수 없다. 교양이 없다. 어학 실력도 없다. 이건 치명적인 결함이라 이들이 제대로 된 비평가가 될 리가 없다 (그 점에서 어찌됐든 나는 후쿠다 카즈야를 문예비평가로 인정한다).

<비평공간>이나 웹사이트에 실린 걸 내가 모두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틀린 생각이다. 나는 간행된 이후 읽고나서 생각을 말하는 거지, 미리 읽지 않는다. 그 생각 또한 대부분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나 좀처럼 비판을 공언하지 않는다. 그 결과 글을 쓴 사람이 착각하고 세간이 착각할 때가 있다. 앞으로는 조금 속마음을 드러내야겠다.






대담 공백의 시대 이후 20년
2010, 하스미 시게히코/아사다 아키라

하스미 : 왜 쓰는 것인가. 저는 블랑쇼처럼 '죽기 위해 쓴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발신하지 않기 위해서 써 왔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마네나 세잔은 무언가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회화적 표상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플로베르나 말라르메도 무언가를 쓴 것이 아닌, 글로써 언어적 표상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즉, 그들은 표상의 불가능성을 그리거나 썼는데, 그것은 그들이 상대적으로 '총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들의 후계자를 자칭할 정도로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이 동물적인 '우둔함'의 편에 섬으로써, 무언가를 쓰면 그 의미가 전해진다는, 언어의 표상=대행성representation에 대한 경박한 맹신에는 거역하고 싶습니다.

아사다 : 저는 응답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 쓴다고 하고 싶습니다. 아즈마 히로키 씨나 그 세대의 사람들은, 비평이 자신의 영역을 좁혀 가고 있는 상황이 옳지 않기 때문에, 보다 넓은 사람들에게 응답받기 위해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응답 같은 건 시시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스미 : 시시하죠. 그것은 비평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90년대 논단, 문단 상황 점검!
2000, 아사다 아키라, 다나카 야스오, 나카모리 아키오

아사다 : 가라타니 고진과 내가 같이 운영하는 <비평공간>에서 데뷔한 아즈마 히로키도 우수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군상> 2월호 대담을 읽어보면 과대평가였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그 정도로 능력있는 녀석이 지금처럼 유치한 자의식 과잉 어린애인 채로 있는 것에, 모종의 세대차이를 느껴.

다나카 : 무슨 의미?

아사다 : 항상 '나를 봐 줘, 나를 칭찬해' 식의 히스테리지

그래서 아베 가즈시게가 노마 신인상, 아즈마가 산토리 학예상을 받고 나니, 그 동안의 불화도 잊고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거지. 무관을 벗어나서 경사스럽다고. 그렇지만 그런 시시한 상이 받고 싶나?

만일 받고 싶다고 생각해도, 보통 그런 부끄러운 일은 숨기기 마련인데.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좋아할 정도로 남의 평가에 굶주린 것 같아. 아베는 좋은 의미에서 우등생이라기보단 외톨이 같은 면이 있으니까 몰라도, 아즈마는 그게 너무 보여. 눈꼴사나워.

나카모리 : 아즈마는 아사다 씨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비평공간> 출신 비평가니까, 좀 더 교육해야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왔는데 쫓아낸거 아니야?(웃음)

아사다 : 아냐, 걔는 오냥코클럽 집까지 쫓아다니던 진짜 오타쿠야. 그리고 나로서는 과보호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살폈다고 생각해. 가라타니는 아버지니까, 재밌으면 쓰라고 할 뿐 쓴 건 읽지 않아. 그건 '아버지'로서는 좋은 태도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말하자면 '형'으로서 의견을 말하고, 데리다는 라캉-지젝 라인에 가깝다고 하길래 반대가 아닐까? 말했더니, 반대라고 말하는 책이 나온 거야(*<존재론적, 우편적>). 그걸 많이 칭찬했으니, 책이 나온 후에 비판할 권리는 있지. 그런데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말을 하면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켜. '이렇게 열심히 하는 나를 왜 칭찬하지 않는거야?'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허약한 애 같은 거지.

나카모리 : 친하게 지내기 어렵겠군.

아사다 : 그래서 그가 우리를 꺼리기 시작했지. 지금까지 연상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쓴 건 실수였다(그렇게 직접 말하는 것도 참 대단한데)면서, 앞으론 연하를 대상으로 쓴다더군.





vs 하스미 시게히코 디스하는 아즈마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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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론 친구의 목소리

2018/03/02


처음 뵙겠습니다. 아즈마 씨에게 질문입니다. 아즈마 씨는 이전 토크 이벤트에서 '시네필은 쓰잘데기 없는 것만 말하니까 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학생때 영화를 공부해서, 시네필까지는 아니지만 영화는 좋아하고, 주위에는 시네필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몇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영화에서 운동의 쾌락 같은 걸 말하는데, 저는 영화에서 표상만 논하는게 아닌, 하스미 시게히코가 부정한 설화론적인 것도 중요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또는 예술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현재 저의 고민인데, 그 점에 대해서도 아즈마 씨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 '쓰잘데기 없다'는 발언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제가 시네필(이라고 누군가를 지칭하고 있는게 아니냐며 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의 언설에 짜증을 내는 건, 구체적인 업계 사정의 나열이라기보다는 (그 쪽의 문제도 있고, 그건 그거대로 싫습니다만) 오히려 그들의 말이나 사고에 자연스럽게 포함된 '영화의 특권화'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시네마의 쾌락' 같은거요. 저는 도쿄대학 표상 문화론이라는 대학원 코스 출신으로, 그곳은 시네필의 아성이었습니다. 재학 당시엔 하스미 시게히코 씨가 아직 현역으로 교편을 잡고 있어 표상문화적으로 세계를 본다는 건 곧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었죠. 한편으로 <비평공간>에선 슬라예보 지젝이 번역돼기 시작했는데, 이쪽도 자기 나름대로 영화를 예로 드는걸 좋아했어요. 즉, 대학원 시절 제 주위에선, 인텔리라면 영화에 대해 논하는 건 당연하고, 시네마의 쾌락이야말로 쾌락의 왕이라고 떠벌리는 패거리가 우글거렸죠. 저는 그런게 기분 나빴습니다. 저는 애니도 보고 있었고 게임도 했고, 그것들은 분명 영화에 가까운 화면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화면의 기쁨은 결코 시네마의 쾌락인지 향락인지에 넣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결코 영화 비평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당시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화 또는 예술을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런 커다란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지나치게 특권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표현은 대게 장르의 혼란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아니, 실제로 모든 표현이 장르의 혼란으로부터 태어나고 있습니다. 영화 자체부터 1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탄생했을 때는, 주위에 다양한 '관련 미디어'가 존재했고 (그 중에 애니메이션이 포함됩니다) 영화의 영화성이란 것도 그런 시행착오 속에서 태어났을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금방 그런 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순수한 영화니 뭐니 하는 말을 꺼내는 겁니다. 그런 언설은 반드시 경계해야 하고, 그런 언설에 속지 않고 창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걸 문학에서도, 미술에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예술 같은 건 없어요. 순수한 영화를 찍는다거나, 순수한 문학을 쓴다거나, 순수한 미술을 만든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그런 수사학을 사용해서 권위와 돈을 획득하려고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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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년대 일본 비평계 아이돌 치바 마사야는 나름 둘 다 하고 사이가 좋은 

하마구치 류스케랑도 도쿄대 동기라서 절친이고 인맥관리를 잘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