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결핍을 느끼는 법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혹은 가졌던 것의 가치가 거대하더라도.
나는 주인공에 대해 일말의 동정도 느낄 수 없다. 무책임한 아버지, 무책임한 남편, 무책임한 아들이자 일평생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이기적인 자이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들과의 관계는 오로지 본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어긋났으나, 되려 내내 그들을 탓하다가 죽음을 목전에 둔 채 정말 진부하고 가식적으로 후회하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역겨웠다.
현명한 부인이었던 피비를 버리고 성적 매력 외에는 무가치한 인간인 메레테와 혼인한 것. 그리고 그녀마저 놓쳐버린 것,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는 순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갔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외적인 매력이 대단한 인물이었고, 예술적 감각도 타고난데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멋진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다. 아트 디렉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쳤고, 말년을 보내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을 재산을 쌓았다.
말년의 쓸쓸함과 덧없음이야 누구나 다 느끼는 것일 테고 그의 가치관으로 빗대어 보아 그가 가정을 지켰다고 해서 그의 말년이 딱히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작가가 이 작품의 결말부에서 노년의 삶을 서술할 때 인생의 이유 없는 잔혹함에 절망했다.
그저 우연히 시작되는 삶,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연히 끝나는 삶.
그가 마지막 심장 수술을 앞두고 다시금 삶의 의지를 불태우지만, 삶은 이를 비웃듯 그에게 끝을 고했다.
설령 그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연명한다 해도, 나는 71세의 그가 여전히 죽을 때까지 삶의 무력함과 공허함 속에서 우월했던 과거를 꿈꾸며, 결국 그가 최후에 그렇게 꿈꾸던 가정의 회복에는 실패한 채, 기껏해야 몇 년 더 의미없는 삶을 살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이 그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더욱 타당한 보상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방식이 아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에브리맨인 이유는 그만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든 그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시작하고 끝날 것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삶, 또는 실패했고 비판받아야 하는 삶 모두를 살아냈다.
그러나 삶은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여운을 남겨주지 않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