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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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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요셉 가족이 이집트 고센 지방의 라암셋에 정착합니다. 고센은 나일강이 만든 기름진 삼각주의 동쪽을 넓게 부르는 이름이고, 라암셋은 그 안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고센 및 라암셋은 고대 이집트의 중심인 나일 삼각주 서쪽의 수도 테베나 멤피스 등과는 200km 이상 떨어졌고, 이집트와 아시아를 잇는 시나이 반도로 가는 길목이기에 외국인의 출입과 정착이 비교적 자유로웠으며, 실제 고고학적으로도 이곳에서 고대 셈족인 힉소스나 유대인들의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 부분을 작성한 이들도 저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니 요셉 신화를 만드는 데 충분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믿거나, 7년의 흉년을 이겨낸 그의 해법 역시 신에게 비롯되었다 볼 정도의 대단한 지혜로 보긴 어렵습니다. 47장의 절반 가량을 할애해 묘사하는 흉년 대비 정책의 진짜 목적도 자영농이던 이집트 백성의 토지를 식량을 주는 대가로 파라오가 모두 사들이게 하려는 데 있음이 밝혀지는데, 이는 윤리나 신앙의 관점으로도 동의하기 어려운 정책임과 동시에, 이집트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무지가 만들어낸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치명적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셉의 이야기는 이집트 중앙 정부의 행정력조차 미치지 않는 고센 지대에, 소규모의 무역이나 흉년을 피하기 위해 이따금 오가던 셈족이 알음알음 모아온 피상적 지식을 모아 빚은 몽상적 성공담으로 봐야 합니다.


창세기에 대한 독후감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제 글의 목적이 성서는 역사적으론 거짓이니 가치가 없다는 주장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싶습니다.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는 훌륭한 기행문이자 역사적 사료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서유기>는 소설입니다. 문제는 <대당서역기>와 <서유기>를 구분하지 않는 맹신에 있습니다. 만약 그런 맹신을 가진 불교 신자가 있다면, 그는 두 책을 읽은 후 종교적 사명감에 빠져 머리엔 금고야를 쓰고 손엔 여의봉을 쥔 채 중국-인도 접경지대를 순례하며 눈에 띄는 이국적 용모의 인간을 요괴라고 확신해 때려 잡으려 할 것입니다. 일상에서도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를 올리면 부처가 근두운을 내려 주시거나 인간으로 둔갑한 요괴인 게 분명한 못된 직장 상사를 일단 때려 잡으면 요괴 시체가 될 거라 확신할 것입니다.


재미없는 농담이 아닙니다. 구약 성서 도입부의 신화적 부분까지 모두 사실로 믿은 기독교인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했고, 십자군 전쟁을 포함해 기독교가 저지른 수없는 만행들의 근본 원인도 위에서 지적한 역사와 신화를 구분하지 않는 태도에 있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이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 및 지향점을 담은 설화를 동일한 태도로 읽어서는 안됩니다. 신 혹은 신을 온전히 섬기며 도덕적이고 의미있는 삶을 살려고 했던 위대한 인간들의 역사와, 이를 후대에 잘 전승하고 오래 보존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이야기를 똑같이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20세기 이후의 이스라엘과 미국, 대한민국의 개신교인들은 너무 오랜 시간동안 대당서역기와 서유기를 똑같은 관점으로 읽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그런 불자가 현장의 고행이 가진 실제적 가치와 종교적 의미를 영원히 깨달을 수 없듯, 여호와 및 예수 신앙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래 전체는 위 주장에 대한 세부적 근거이니, 설화를 설화로 받아들이는 독자라면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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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집트 관직 중 요셉이 맡았다는 파라오 다음 가는 권력의 '총리'와 유사한 것은 파라오가 직접 임명해 행정권을 행사했던 '비지르' 뿐이며, 이는 귀족과 왕자들이 맡았을 정도의 최상위의 직책으로 역대 비지르 중 외국인이 역임한 사례는 거의 없음.

- 총리 등용이 사실이라 해도 설득력은 오히려 더 떨어짐. 그렇다면 파라오는 국가와 대륙을 구한 총리 요셉의 가문 '70명'을 이집트 수도에 수용하지 않고 변방으로 보낸 것. 개국 공신 이상의 업적을 세운 이의 가문에게 수도나 그 인근의 토지와 특권적 신분을 내리지 않고, 여전히 유목민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변방에 살게 하는 조치는 상식적이지 않음. 심지어 성서 속 파라오는 총리 요셉의 형제들에게 이집트인이 혐오한다는 가축을 기르게 했고, 요셉은 이집트 수도와 최소 2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정착한 아버지 야곱에게 '먹을 것을 주어 부양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음. 이는 당대 이집트의 환경을 제대로 알고 있던 저자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임.

-47장 중반에서 요셉의 업적으로 처리된 이집트 내 농토를 모두 왕이 갖게 되는 변화 역시 절대왕정 중 일어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 절대왕정의 성립 조건임. 창세기 기준 요셉 시대보다 짧아도 2000년 전에 지어진 피라미드 하나도 자작농이 다수인 경제 체계에선 지어질 수 없음. '모든 토지는 왕의 것'이라는 전제는 절대 다수의 고대 왕정 국가부터 무려 근대의 프랑스 혁명이나 농지개혁 등의 왕정과 신분제를 혁파한 개혁 직전까지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것이고, 특히 고대 이집트는 백성을 관개 공사라는 대규모 국가 사업에 동원할 강력한 왕권 위에 성립한 전제왕정의 가장 오래되고 교과서적인 사례임. 당연히 기록에 따르면 요셉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3000년부터 이집트의 모든 토지는 파라오의 소유였고 귀족과 성직자에게만 제한적으로 분배될 뿐이었음. 요셉이 제안한 토산물의 1/5를 세금으로 바치는 제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 오히려 요셉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볼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집트의 핵심을 경험한 자가 아닌 변방의 외부인적 시각으로 관찰한 이들이 상상한 이야기라는 인상입니다.


요셉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명은 이집트의 중심부가 아닌 고센 등 변방 지대의 지명과 생태 뿐이며,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 역시 전체 관직이나 신분과 사회 구조에 대한 디테일은 없이, 파라오와 비지르 등 최고위 관직과 성직자처럼 변방의 거류민들도 쉽게 알 수 있을 피상적 정보 뿐입니다.


한 가지 더. 만약 당대의 외국인이 파라오가 살던 멤피스와 테베까지 접근했다면 기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 이집트를 실제로 방문한 그리스의 위대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그의 명저 <역사>에 피라미드의 위용과 건설 과정에 대한 정확한 견문을 담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지엽적인 문제 제기지만, 출애굽기까지 이어지는 이집트를 무대로 한 구약 성서 도입부의 서사에서 이 부분은 충분히 따지고 넘어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에도 다른 국가를 실제로 방문하고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기록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 신빙성의 기준은 상식적입니다. 실제 그 지역을 체험해야만 알 수 있는 디테일과 특성에 대한 서술.


7세기 현장의 <대당서역기>, 마르코 폴로나 구한말에 고종에 의해 미국에 보내진 대한제국 '보빙사'의 기록 중 많은 부분이 사실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시기에 그 장소를 체험하지 않고는 기록할 수 없는 문화, 지리, 사회적 디테일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이 남긴 중국 및 인도 접경 지대와 인도에 대한 상세한 묘사, 마르코 폴로가 남긴 기록 속 원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킨 후 폐허로 만든 만리장성에 대한 묘사와 보빙사들이 남긴 워싱턴 국회의사당과 기념탑에 대한 서술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수도에서 파라오의 호위대장의 종으로, 총리로 살았던 요셉과 '파라오의 딸의 아들' 즉 왕자로 성장했다고 명시된 모세에 관한 기록에도, 이 압도적 건축물이나 현지 문물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전혀 없고, 파라오-총리-마술사(출애굽기에 등장)-백성으로 이어지는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엉성한 사회 구조에 대한 묘사만이 등장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