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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시작했는데 분량이 역시 좀 있다보니 읽는데 3주 좀 넘게 썼음. 그나마 읽는 템포가 심각하게 쳐지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앞으로는 노는 날 줄여서라도 좀 더 열심히 읽을 수 있음 좋을듯

어쨌든 소문만 무성했던 마의 산 다 읽었음. 줄거리 어떻냐고 물으면 설명이 영 이해가 안되고 결투만 기억에 남았는데 읽어보니 방대하고 해박하면서도 순수한 관념 소설의 인상이 남았음

독일 관념 소설이자 20세기 인문학의 총본산이라는 평가까지 있는 소설답게, 작가 토마스 만의 해박한 학자적 지식, 소설로서의 적절한 흥미, 복잡한 이론과 이념의 충돌들까지, 처음 접한 작가지만 여러모로 토마스 만과 독일 소설의 최고점이라는 인상을 줌

그래서 다소 안타까운게,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를 천천히 배워간 끝에 마의 산을 읽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음. 그랬으면 좀 더 토마스 만의 고점을 실감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

마의 산의 줄거리는 23세의 공학도 한스가 건강상의 문제로 임관을 미루는 소위 요아힘의 지루한 요양 생활을 도와주기 위해 베르크호프 국제요양소를 찾는 걸로 시작됨.

한스는 세속과 시간으로부터 무관한듯한 요양소의 정경과 분위기에 감탄하며 문인 세템브리니를 비롯한 흥미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요양객인 러시아 태생인 쇼샤 부인에게 반하면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요양 생활을 끝없이 늘려나간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임.

마의 산은 전통적인 독일 관념 소설의 대빵 취급을 받는데, 그거 말고도 수도원과 같은 고요한 요양 생활, 모든 인물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학구적인 주인공 한스, 지식인들의 치열한 토론, 어리석고 추하기도 하다가 관대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온갖 요양객들의 인간군상과 한스의 성장과 사랑 등등 나름 읽을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음

개인적으로 당시 인문학의 총본산과 같은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 vs 학구적 수도사 나프타의 말다툼은 격이 너무 높아서 서양 인문학 배경지식이 거의 전무한 필자로선 아직 따라가긴 역부족이었음

마의 산의 메인 테마는 시간인데, 시간을 고평가하며 하루하루를 분투하는 속세와 달리 시간을 붙잡을 이유가 없는 요양소의 삶을 통해, 시간과 격리된 별세계를 세밀하게 묘사했음. 산 위 요양소 시간의 흐름과 가치가 다르다는 점에서 제목이 마법의 산인 거라고 필자는 판단함

여러모로 아직 본인 실력으로는 소화할 준비가 덜 된 소설이라 참 아쉬운데, 그래도 삶과 죽음의 성격에 대한 성찰, 상대적인 시간의 성격을 묘사하는 명석한 표현 등등, 성찰적 관념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박식한 지식의 조화로 작가의 지적 내공을 엿볼 순 있었음

개인적으로는 당시 지식인들의 인식적 한계도 많이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유럽 지식인 세템브리니의 진보주의자 코스프레나 러시아인 = 미개한 아시아 야만 족속 같은 당시 사람들의 인식도 가감 없이 드러남

특히 독일 소설인 만큼, 이웃한 러시아인의 대표자인 쇼샤 부인의 '아시아가 고향인 러시아의 비합리적 열정과 독일의 이론적인 냉정은 하나될 수 없다' 같은 발언을 통해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시간에 외워왔던 범슬라브주의 vs 범게르만주의의 실제 사례를 보는 듯 해서 신기했음

솔직히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한 토론들도 많았지만,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행보는 꽤 인상깊었음. 학구적인 한스의 즐거운 요양 생활과 대비되는 하루 빨리 사회로 돌아가 복무하고 싶은 요아힘, 우울증에 시달리는 의사 보조 환자인 베렌스 고문관, 격의 없으면서 자유분방한 쇼샤 부인, 수도사라기엔 다소 공격적인 논객 나프타, 폭군다운 면모와 지배자의 권위를 가진 갑부 페퍼코른 등등... 이 소설이 문학인 이유를 제대로 어필해주는 재미있는 인물들 덕분에 나름 읽을만 했음

나중에 독서 취미를 꾸준히 이어가서 중년이 되어서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임. 근데 독일소설답게 모든 게 기승전 관념인 기분도 좀 있는데, 애초에 20세기까지 유럽 정신을 독일 관념 소설 스타일로 옮긴 유럽 인문학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고 읽는 이야기라 나름 이해는 됨.

이건 이제 스포의 영역이긴 한데, 그간 한스가 열심히 쌓아온 경험, 성장과 토론들이 결말에 이르면 1차 세계대전에 동원되면서 아무 의미 없어지는 것도 유럽 인문학의 최후를 참 잘 드러낸 장면이었음

배경이 20세기 초반인만큼, 너나들이를 금기시하는 귀족들의 품위 의식이나 한스의 죽음을 향한 경건한 태도나 정말 작별이 아니면 말을 터놓지 않는 습관도 신기하고 고풍스러웠음. 나름 낭만있는 듯

작중 신사들의 격의없는 반말이 나올 때가 서로의 진짜 감정이 터져나오는 장면들인데, 반말이 나올때마다 긴 대사 필요 없이 서로의 진심이 드러나서 나름 감정적인 호소력이 있었음

독일 소설인거 생각해보면 뭔가 이례적인 연출인데, 결말 부분에 서술자가 한스에게 나름의 경외감을 드러내는 서술은 약간 가슴 먹먹한 구석도 있었음. 독일 소설에서 이렇게 감정적인 감동을 얻을 줄은 몰랐음

다 읽고 나니 경건하고 정갈한 클래식함의 최고봉인 소설이었음. 유럽의 신화, 역사, 인문학에 밝지 않아 못이해한 부분이 많았는데, 다 읽고 나니 세계대전이라는 몰락을 앞둔 유럽 정신의 마지막 결산 정도라는 느낌도 듦.

솔직히 읽는동안 재미 없다는 느낌은 안 들어서 생각보다 읽을만 했음. 소설의 모든 파트가 큰 변동 없이 저점이 높다는 느낌도 있네

좀 덜 이해한 부분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재밌었고, 다음에는 무슨 작품 읽을지 기대됨. 나중엔 만 소설들 독파해서 어떤 작가인지 배워서 마의 산 2회차 달리는 게 목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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