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붕(酒朋) 야청 박기원」


  야청(也靑) 박기원(朴琦遠)이는 박제해논 학같이 늘 움씩도 않고 앉아 있는 모양이 내겐 좋아 보였다. 몇 되의 술이 그 속으로 들어가봐도 여전히 별다른 기척도 없이 그저 '하하하핫' 그런 가짜만 같은 4음절의 웃음소리나 겨우 찌끔씩만 목에서 내놓고 지내는 게 맘에 들었다. 주로, 서울 명동의 다방 '갈채'나 '코키리' 같은 데에서, 오전 열한시경부터 밤 열한시경까지, 별로 기대리는 사람도 없이 꼿꼿이 그러고 버티고 있는 게, 맘에 들었다. 왕대폿집 쐬주나 막걸리 값도 별로 없이, 1년이건 2년이건 5년이건 10년이건 매양 그렇게 앉아 있는 게, 맘에 들었다.
  나이는 나보다 5년인가 위이지만 문단엔 나보다 뒤에 알려져서, 그걸로 서로 상쇄해 "여보게" 서로 부르고 지냈었는데, 어느 해던가, 꼭 송아지 목메이는 눈물만 같은 가을날 황혼에 '코키리'란 다방으로 오랜만에 그를 추적해 갔더니, "여보게 미당. 자네 아리랑의 신일선(申一仙) 양이나 한번 만나보러 가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그야 물론 좋은 일이었지. 중학 1학년 때 내가 보고 반했던, 그 "아리랑"이란 영화의 주인공 나운규(羅雲奎)의 애인 신일선이를 인제사 50대에 와서 처음으로 한번 만나러 가본다는 건……
  다동(茶洞) 옆 서린동(瑞麟洞)의 어느 골목이던가. 그 신일선 양의 왕대폿집을 찾아가서 그녀를 요리조리 여러모로 뜯어보아하니, 양은 이미 예순이 가까운 나이로, 가는 명주주름투성이였는데, 그 눈웃음 하나가 허서그푸게 곱기는 옛 스크린에서나 지금이나 매일반인 듯 싶기는 했다.
  "자네도 그 손등이라도 한번 만져보란 말이야." 야청이가 부하를 특별히 아끼는 왕초처럼 실력있게 말하기에, 나도 권에 못이기는 양 고로코롬 한번 해보았더니, 아닌게아니라 그래보는 것도 괜찮긴 괜찮었었다.


- 『안 잊히는 일들』(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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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 중에서는 그의 삶의 주변에서 만났던 평범한 인물들을 소묘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비교적 거론이 안 되는 작품 중에서 꼽아 보자면 시인 변영로의 일화를 옮긴 「절벽의 소나무 그루터기」나 구순이 된 어머니와의 일화를 그린 「진갑의 박사학위와 노모」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또 좀 소박하긴 하지만 「북간도의 청년 영어교사 김진수 옹」을 위시해서 서정주 주변의 동년배 문인들을 다룬 작품들도 재미있는 구석이 없지 않다. 위의 시에서 언급된 박기원 역시 그와 동년배에 활동했으나 지금은 거의 잊혀 있는 것 같은 문인의 한 명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름을 여기서 처음 들어보았다.

박기원에 대한 묘사가 전반부의 얘기고 그와 함께 왕년의 유명 배우였던 신일선의 술집에 놀러 간 것이 후반부의 얘기다. 전반부에서 시인은 박기원에게 좋게 느껴진 점을 늘어놓고 있다. 시쳇말로 바위 같은 모습이 지조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그저 마냥 좋은 것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 마냥 좋다는 점이 이 시집의 어떤 정체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시집의 제목에서 이미 내건 것이지만 안 잊힌다는 건 어떤 윤리적 가치평가와는 별개의 영역에 해당한다. 반복해서 하는 주장이지만 동시대의 적지 않은 문인들이 윤리적인 것을 안 잊혀야 할 것과 동치시키고 있었을 때 서정주는 윤리와는 별개로 안 잊히는 것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신일선을 만난 일이 기억에 남는 것 역시 단순히 유명인을 만났다는 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가 시로서 종종 다루었던 명창 이화중선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성적으로 소위 계명된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근래에 사회학 쪽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인 상대에 대한 타자화의 냄새까지 느끼게 된다. 시인은 다른 산문에서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미안하게 느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