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필사한 문장을 쭉 둘러보는데 뜻밖에도 베스트는 만화에서 뽑게 되었다.

하나만 적고 말 생각이었다만 너무 짧아서 좀 심심해 보여 3개를 꼽아보았다.


무례하긴, 순애야. (아쿠타미 게게, 주술회전)

첫 타자는 얼마 전에 완결나서 뒤늦게 보고 있는 주술회전이다.

작가는 좀 충동적으로 극적 장면에서 개그를 그려내버리는 성질이 있는데

그게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만 일단 최고 아웃풋은 이 대사인 듯하다.

아주 개드립은 아니면서 절묘한 의외성이 있는 대사로, 쉽게 보이지만 천재적인 센스가 느껴지는 대사다.

덕분에 노잼 구간에 한순간에 활기가 샘솟았다.


안락과 편안을 희구하는 여성 문학과 방랑과 모험을 추구하는 남성문학의 대립은 풍속과 이념이 괴뢰되는 과도기에는 언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부르조아지의 대두를 알'리는 17세기 이후의 문학 부르조아지의 몰락을 알'리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문학 등이 그렇다. 어떻게 사느냐라는 기준이 확립되어 있는 시대에 사랑의 이야기처럼 매혹적인 것은 없다. 오스틴의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밥 먹는 방식, 구혼하는 방식, 옷 입는 방법 등이 명백하게 결정되어 있고, 그것들을 지탱해주는 이념이 확실할 때 인간 관계는 절도와 예절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이 연애의 경위다. 첫 대면의 충격, 말하는 방식, 결혼까지 이르르는 기간의 의식.. 인간 의식의 극치이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확실하지 않을 때가 있다. 문제는 그때에 생겨난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합당할 것인가? 아니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그때에 문제되는 것은 인간 관계의 재조정이다.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시에서,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낸 신문 기자에게 다가온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혼자만 행복하기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김현, 문학 단평 모음)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는데,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독갤러 올려준 짤에서 본 문장이다.

이런 관점도 있구나 조용히 감탄했다.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왔다고 가정해보죠. 왼쪽으로 갈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 수도 있어요. 어떤 길을 선택할까요?'
"당신이 원하는 길이겠죠!" 프랑코가 소리쳤다.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요." 로이드가 말했다. "다세계해석으로 볼 때, 나는 다른 세계의 제가 선택하지 않은 길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죠. 다른 세계의 내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야 해요. 다른 세계의 내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오만한 인간들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기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죠. 다른 선택은 순전히 다른 우주에서 이루어진 선택이라는 거고요. 다세계해석은 선택이라는 환상을 주지만, 사실 완벽히 결정론적인 것입니다."
(로버트 J. 소여, 플래쉬포워드)

평행세계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절대적 증거라니

생각지도 못 했던 발상에 무릎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