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지난 10월에도 독서 결산을 하려고 했건만, 10월 안에 작품 하나를 전부 다 끝마치진 못한 탓에 10월에서 11월까지 읽었던 책을 한꺼번에 결산하게 되었다. 9월달과 마찬가지로 독서량은 확실히 줄은 것을 실감했지만 이전부터 버킷리스트에만 넣어두었던 책을 완독하는데 성공하여 내심 보람도 느끼기도 했다. 다음달, 그리고 다음 해에는 더욱 알차고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길 기원하며 지난 두 달동안 읽었던 책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 마의 산 (Der Zauberberg)

“죽음과 삶, 병과 건강, 정신과 자연, 이런 것이 서로 모순된 것일까? (…)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어느 것이 고귀한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죽음의 모험은 삶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모험이 없으면 삶이 아닐지도 몰라. 그리고 인간의 상태가 신비스러운 공동체와 미덥지 못한 개별 존재 사이에 있듯이, 신의 아들인 인간의 본성은 그 한가운데, 모험과 이성의 한가운데 있어.”

- 마의 산 中 -

1875년 독일 뤼베크 태생의 소설가이자 20세기 초반 독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역작인 장편소설 마의 산을 읽어봤다. 토마스 만은 1890년 말엽 단편소설로 등단하며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고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Buddenbrooks)’,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 와 같이 역사에 기리남을 명작을 내놓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다. 그렇게 만은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와중 아내인 카챠 프링스하임이 폐결핵에 걸려 스위스 내 알프스 산맥에 있는 요양원으로 요양을 떠난다. 이때문에 만도 1912년 아내가 있는 요양원에 들러 3주 동안 지냈었다. 짧으면서도 긴 시간동안 그는 요양원의 특이한 분위기에 영감을 얻게 되고, 체류기간 중 그곳에서 인상깊었던 점을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단편소설을 구상하여 1913년 집필에 착수한다. 하지만 1914년 온 유럽을 뒤흔들어 놓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만은 소설 집필을 잠시 멈추고, 조국인 독일의 입장에서 애국심을 호소하고 찬전여론을 주도하는  군국주의적인 칼럼을 여럿 발표하였다. 하지만 전쟁이 4년이 훌쩍 넘게 이어지면서 패색이 짙어지는 전황에다 참혹한 전쟁의 참상에 질린 모양인지, 만의 정치적인 입장은 완전히 바뀌어 그는 전쟁에 반대하는 휴머니스트이자 군주제와 전체주의에 등을 돌리고 민주주의를 예찬하는 자유주의자로 탈바꿈하였다. 

1차대전 종전 후 그는 몇년 전 단편소설용으로 집필했던 원고에 자신이 겪은 사상적 변화를 반영하여 여러가지 살을 붙이면서 몇년동안 개작하였고, 양이 삽시간에 불어나 15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장편소설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마의 산이었다. 집필을 멈춘 기간까지 합하여 11년만인 1924년에 출간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본작은 굉장한 인기몰이를 하며 출간되지 얼마 안되어 거의 유럽 전역에서 번역되었다. 또한 본작은 그간 추구했던 문학관과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유럽의 사상을 모조리 집대성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만의 명성을 더 공고히 해주었다. 이전에 출간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과 더불어 본작이 거둔 문학적 성과를 널리 인정받은 덕인지 이 책이 출간된지 5년만에 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계기를 좀 얘기보자면 이전 독서결산에서도 밝혔듯이 토마스 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조금 조심스럽게 입문했던 작가의 작품에서 예상외의 감동을 얻어 그의 중단편소설집과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어봤다. 이에 다음 수순은 당연히 작가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본작이였던만큼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보는데 도전하였다.

이 책은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23세의 청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친조부를 차례로 여의고 부유한 외갓집에서 자라며 출세를 위해 공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공부를 끝마치고 조선 기사 자격증도 취득해 외가와 연줄이 닿은 조선사에 취직할 예정이었으나, 그전에 폐결핵에 걸려 스위스 알프스에서 요양중인 사촌 요아힘 침센을 잠시 문병하기로 하였다. 원래는 3주 동안만 사촌이 있는 요양원에서 지낼 예정이었지만, 한스는 아름다운 풍광을 갖추고 무위도식하는 여유로운 요양원 생활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예정했던 시간이 다 되가자 그에게 폐결핵 증상이 나타나면서 3주간의 요양원 생활이 기약없이 길어지고 말았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엉겁결에 요양원에 오랜시간 머물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원래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출세하기 위한 공부만 했던 한스는 요양생활 동안 공상에 잠기게 되면서 온갖 학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뛰어난 학식을 갖췄거나 대단히 특이한 인상을 지닌 요양객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들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그가 겪은 심정적 변화를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주제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시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우리도 불현듯이 느끼는 바와 같이, 분명히 시계에서는 같은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대단히 빠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한다. 주인공 한스 또한 요양원에서 일상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면서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재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는 과연 시간이 자로 잰듯이 알맞게 측량할 수 있는 개념인지 의구심을 품게 되고, 일상이 반복되는 경험을 하면서 이를 영원성이라는 개념과 결부시키며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고차원적인 존재라는 점인지 깨닫게 된다. 더불어 죽음을 바라보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관점도 적잖은 변화를 겪는다. 한스는 어머니, 아버지, 친할아버지를 차례로 여의면서 장례식과 굉장히 친숙해지는데, 그때마다 마주하는 엄숙한 분위기에 젖어 그는 죽음을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신비스러운 존재로 생각하며 대단히 피상적으로만 죽음을 인식한다. 하지만 마치 저승에 온 것처럼 생에 연연하지 않고 방종한 삶을 반복하는 요양원의 분위기에서 그는 삶과 죽음이 뒤섞여있을 수 있다는 걸 체감한다. 이후로도 여러 장고 끝에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한데 뒤엉켜 서로를 보완해주는 대상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본 작품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사상을 총망라해놓은 작품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유럽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듯한 등장인물도 있다. 첫째로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스승을 자처하며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설파하는 이탈리아 문필가인 세템브리니가 있다. 둘째로는 세템브리니와 같은 하숙방을 쓰지만 정작 그의 사상과는 완전히 반대되게 기독교 신정체제와 공산주의 경제를 옹호하는 예수회 수사 나프타가 있다. 이들이 서로 논쟁하는 과정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이념의 전쟁터였던 근대 유럽의 역사를 은유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 각국들의 합리주의 경쟁이 불러온 파국인 제1차 세계대전을 예견하듯이 이들의 논쟁은 점점 더 격렬해지는 걸 넘어 신경질적인 수준으로 번지고, 끝내는 사생결단을 각오하게 되는 수준으로 악화된다. 그 이외에도 유럽의 문화와 교양을 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의 등장인물들이 비유의 대상으로 줄기차게 인용된다. 여러모로 유럽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야망이 가득한 총체적 소설이다. 이렇게 작품이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덕에 독자로서는 읽어나가는 과정이 산을 오르는 것처럼 벅찰지언정 다 읽고나면 산 정상에 오른 듯이 고양된 느낌에 젖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달 남짓한 기간동안 이 책을 다 읽은 소회를 밝히자면, 아마 올해는 물론 여태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난이도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읽는게 어려웠다. 대부분의 문장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묘사하는데 할애되었고, 양도 무식하게 많은 편이라 독해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려서 여느 책들보다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갔다.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총서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몇달 전 읽은 안나 카레니나 이후로 소설이 꽉 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덕에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만족스러운 감정을 안고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난이도와 양이 만만치가 않다보니 사실 독서에 맛들린 분들께도 이 책을 가볍게 추천드리기에는 꽤나 망설여진다. 하지만 스스로 이 책에 흥미를 느껴서 완독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기대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얻어갈 수 있는 걸작이니 용기있게 도전해보는 걸 적극 권장한다.

2. 라틴어 수업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 라틴어 수업 中 -

1970년 서울 태생의 전직 가톨릭 사제이자 법학자인 한동일 교수의 강의록이자 베스트셀러인  라틴어 수업을 읽어봤다. 그는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한국인으로서는 많이 생소한 분야인 교회법에 대해 심도높게 공부하고자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힘겨운 공부 끝에 그는 교회법 박사 학위와 교회법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한국인 최초로 바티칸 시국 공인 교회법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한 후 2010년부터 서강대학교에서 초급 및 중급 라틴어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한 교수는 재능기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흔쾌히 승락한다. 이미 사어가 된지 오래된 라틴어를 가르치는 수업이다보니 한 교수는 길어야 1-2년 정도만 강의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가 짐작했지만, 그의 강의가 예상외의 인기를 끌며 2016년까지 강의가 지속되었다. 이번에 읽어본 책은 6년간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강의록으로 2017년에 출간되었는데, 책 또한 인기가 많아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다.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계기는 사소하면서 특별한데, 바로 최근에 가입하게 된 독서모임 덕분이었다. 모임 회원들의 투표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 책 중에 하나를 택하기로 했는데 본작이 최고 득표를 얻어, 나에게는 꽤 생소했던 분야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본책은 작가가 서강대학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초중급 라틴어 수업 내용을 갈무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책에 수록된 내용은 본격적으로 라틴어 어휘나 문법을 가르치는 내용보다는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학습태도와 인생에 대해 조언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수업시간에 썰푸는 내용으로만 꽉꽉 채운 책이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본책의 내용은 작가가 생각하는 교육관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저자는 책 초입에서 언어학습은 암기보다도 반복 숙달을 통해 체득하는 습관이자 생각의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그런 맥락에서 강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라틴어의 고상함에 대해 설명하며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학자였던 라우렌티우스 발라(Laurentius Valla)가 쇠퇴해가던 라틴어를 부흥시키고자 저술했던 ‘라틴어의 고상함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정확하게 라틴어를 구사함으로써 모든 표현의 기초가 되고, 그것이 참다운 지적 체계를 형성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언어를 정확히 다듬으면서 얻는 고상함을 통해 참다운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주창하였다. 한동일 교수는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정확한 구사법에 대해 고찰하기 보다 빨리빨리 배우고 시험 점수를 올리는데만 급급한 한국의 언어 교육방식을 향해 준열한 비판을 가한다. 

책의 내용은 단순히 언어를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내용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한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문화와 집단적인 경험이 깃들어 있듯이 필자 또한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던 로마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이를 통해 고대 로마인들 사상이 담긴 문장은 이들의 후예인 현대 서구인들의 사상에도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청강생들에게 주지시킨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필자는 라틴어를 매개체로 하여 서양 문화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삶에 대하여 고찰한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bi, Cras tibi) 라는 문장을 통해 이전에 사별한 사람을 따라 자신이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라는 경구를 통해서도 희망이 얼마나 인생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희망이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도 고찰해본다. 라틴어가 무지하게 어려운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강의가 많은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바로 그의 강의가 단순 언어 교습을 넘어서 전인적인 교육의 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남기자면, 이 책에서 다루는 분야는 생각보다도 다양했었고 라틴어 강의에 얽혀 있는 작가의 생각과 경험에 지식인으로서의 경륜이 묻어 나는 것 같아 꽤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비롯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써준 덕에, 책이 다루는 주제가 마냥 쉽지 않음에도 술술 읽혔다. 다만 어디까지나 대중들을 대상으로한 가벼운 교양서인 만큼, 인생살이에 관한 고민을 넘어서 보다 더 심원한 가치를 찾고자 하시는 독자에게는 그닥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작가가 학자이니 만큼 주장에는 반드시 합당한 논거와 인용자료가 있다보니 강의 내용은 일리가 있고 수긍할 만한 구석이 있다. 다독가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제법 눈에 밟힐 수 있겠지만, 독서에 이제 막 재미를 붙이려는 독자들에게는 제법 괜찮은 인문학 입문서가 될 수 있으니 독서 입문자들이 있다면 기회가 있을 때 한 번 정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3. 앨저넌에게 꽃을 (Flowers for Algernon)

“지성은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재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식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사랑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몰아내는 일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납니다. (...) 애정을 주고받을 수 없는 지성은 정신적, 도덕적 붕괴를 초래하고 신경증에다 심지어는 정신병으로까지 이어지죠. Intelligence is one of the greatest human gifts. But all too often a search for knowledge drives out the search for love. (…) Intelligence wiithout ability to give and receive affection leads to mental and moral breakdown, to neurosis, and poaaibly even psychosis.”

- 앨저넌에게 꽃을 中 -

1927년 미국 뉴욕 태생의 소설가인 대니얼 키스(Daniel Keyes)의 대표작인 앨저넌에게 꽃을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그는 소설가로서 활동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문학을 가르치던 강사이기도 했고, 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타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1957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영문학 강의를 진행했던 일은 작품을 구상하는데 좋은 소재 거리를 주었다. 그런 경험이 쌓인 가운데 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두 저작에서 비극의 원형을 다진 키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살을 붙여 작품을 만들기로 했고, 1958년 단편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을 완성하여  SF 판타지 소설 전문 잡지에 기고하였다. 본 작품은 비평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얻었고, 작가는 이를 통해 미국 SF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휴고상(Hugo Award) 최우수 단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작가는 단편소설로써도 성공적인 이야기의 확장성을 본 모양인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미 선보인 작품을 장편소설로 개작하여 1968년에 출간하였고, 널리 퍼진 판본이자 내가 이번에 읽어본 책도 바로 장편이었다. 확장된 작품 또한 열광적인 비평적 찬사와 함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였고, SF계에 또다른 권위 있는 시상식인 네뷸러상(Nebular Award)에서 최우수 장편을 수상하면서, 한 작품으로 두개의 다른 상을 받는 기염을 토한다. 저도 작품의 명성을 이전에도 익히 들어왔던 터라 거의 1년전에 서점에서 이 책을 팔고 있는 걸 보고 불현듯이 집어와서 구매를 했었지만, 정말 1년동안 책장에만 고이 모셔놓았었다. 이 정도면 너무 오랫동안 읽는 걸 미뤄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회에 호기롭게 집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IQ가 68인 지적장애인이자 빵집에서 청소와 밀가루 포대를 나르는 일을 하는 찰리 고든이 뇌 수술을 받아 한달도 채 안되어 고지능을 갖춘 천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도 찰리가 수술을 받은 전후로 직접 써가는 경과보고서를 토대로 전개된다. 찰리는 지능이 모자랄지언정 항상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하고 활달한 성격을 지녔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주위 사람들 만큼 똑똑해져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 비크먼 대학에서 실시하는 지능 향상 수술을 받는데 동의한다. 그는 수술을 앞두고 몇가지 테스트를 거치면서 자기와 같은 운명에 처한 존재를 알게 되는데, 바로 그가 받을 수술을 먼저 받았던 실험쥐인 앨저넌이었다. 앨저넌은 다른 실험쥐들보다 훨씬 더 똑똑해 어떤 복잡한 미로도 손쉽게 빠져나왔고 심지어는 수술을 받기 전 찰리보다도 미로를 훨씬 빨리 통과하였다. 마침내 수술을 받은 찰리는 한달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극적으로 지능이 향상되는데, 앨저넌보다 빠른 시간안에 미로를 통과하는 것이 물론이요, 맞춤법도 못맞추던 경과보고서도 유려한 문체로 멋들어지게 쓰기도 하고, 20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천재가 된 찰리에게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았으나, 그는 여태까지 백치로 살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냉엄한 현실을 목도한다. 한때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줄로만 알았던 빵집 직원들이 사실은 멍청했던 자신을 놀려먹고 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도 부쩍 똑똑해진 자신을 경계하고 따돌리는 바람에 예나 지금이나 외로운 처지가 된 상황에 큰 충격을 받는다. 또 찰리는 수술을 권하고 시행했던 비크먼 대학의 교수들도 자신을 사람이 아닌 그들의 치적이자 실험체 정도로만 치부하는 태도도 그에게 분노를 안겨주었다. 이를 통해 찰리는 여지껏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앨저넌과 다를 바 없는 ‘실험체’로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본책은 찰리가 자신의 실존적 문제에 관한 고뇌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극단적인 소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이었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지키지 못했던 백치가 수술을 받고 단숨에 20개 국어에 통달하는 천재가 된다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찰리가 극적인 지능 향상을 통해 인식하게 되는 조금이라도 열등해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조롱과 차별, 자신보다 우월함을 입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기와 경계의식은 우리의 마음에 매우 와닿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상술하였듯이 찰리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것은 다름이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대상화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곱씹어보와도 주위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하기 보다는 마냥 불쾌한 감정만을 품은 채로 조롱의 과녁으로 삼을 때가 종종 있어왔다. 또 우리와 완전히 다른 특징을 지닌 인종이나 특정 국적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인격으로 보지 않고 편견에 기반하여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대상화하고 멸시하는 일도 동서고금을 하고 벌어지고 있는데 대니얼 키스는 찰리의 생각을 빌어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꽤나 소름끼치게 묘파하였다.

또 한가지 눈여겨 볼 것으로는 이 작품이 지성을 다루는 방식이 있다. 지성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가장 특출나게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이자 문명을 꾸려나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다. 작중 앨저넌과 찰리을 대상으로한 수술의 기획자인 니머 교수는 지성을 한 사람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으로 숭상하고 그러기에 찰리의 지능을 높여줌으로써 그에게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자부한다. 어쩌면 작품 내에서 지성은 인간사에서의 이성을 은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본작은 지성을 항상 좋은 결과만을 도출하는 만능도구로 묘사하지 않는다. 당장 찰리는 고지능을 얻게 되면서 자신을 향했던 냉대와 조소를 인식하게 되면서 당초의 포부와 달리 고독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리고 찰리는 다른 사람이라면 평생 얻지 못할 방대한 지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실존적인 문제와 사회와의 단절은 쉬이 해결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렇게 또 작가는 찰리의 입을 빌어 지성이 항상 행복한 삶을 담보하지 않으며 감성적인 문제를 이성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다. 도리어 감성적인 성숙이 없는 이성은 파멸을 불러온다는 점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바를 얘기하자면, 본작은 꽤나 담백한 문체로 씌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서정적이다. 주인공인 찰리는 저지능자였을 때나 고지능자였을 때나 본인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담담하면서도 매우 솔직하게 경과보고서에 적어내는데, 그덕에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것보다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어 훨씬 더 가슴에 와닿고 독자들에게 감정을 고조시킨다. 나만 하더라도 수술 전 찰리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수술 후 찰리만큼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의 비극적인 인간사에 빠져들어서, 책장을 덮고 나서 감정에 북받쳐 흐느끼기도 하였다. 조금 더 감상을 덧붙이자면 이 책은 원서 기준으로도 문장이 복잡하지 않고 어휘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보니, 영어에 그닥 능통하지 않은 저도 꽤나 쉽게 읽었다. 이처럼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도 상당히 직관적이지만, 이야기의 깊이는 절대 얕지 않은 명작이기에, 독서에 재미를 붙이려는 사람과 독서에 이미 재미를 붙인 사람 모두에게 일독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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