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앤서니 케니의 철학사에서 칸트에 대한 파트에 있는 내용을 발췌했었던걸로 기억함.
'누군가 자신의 행복을 자연의 진정한 목적으로 여긴다고 가정할 경우
자연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그 존재의 이성을 선택하는 매우 잘못된 조치를 취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그 존재가 이런 목적을 위하여 수행해야 할 모든 행위와 행위의 모든 규칙들은 본능을 통해서 훨씬 더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었으며,
행복이라는 목적 또한 이성보다는 본능을 통해서 훨씬 더 잘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위 문장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내가 스토아 철학자들, 그 중에서도 에픽테토스의 철학에 강한 이끌림을 가지고 있는 상태인데, 저 문장은 스토아 철학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으로 인식했기 때문임.
나는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다음의 절차를 행했음.
1. 누군가 = A, 자연 = B로 치환, 그 존재 = A 라고 생각함
2. 문장구조를 다음과 같이 해석
가정 : A가 자신의 행복을 B의 진정한 목적으로 여김
결론 : B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A의 이성을 선택하는 매우 잘못된 조치를 취한 셈이 된다.
근거1 : 그 존재가 이런 목적을 위하여 수행해야 할 모든 행위와 행위의 모든 규칙들은 본능을 통해서 훨씬 더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었다.
근거2 : 행복이라는 목적 또한 이성보다는 본능을 통해서 훨씬 더 잘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이 두 가지 독립된 구조로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함.
1.
가정 : A가 자신의 행복을 B의 진정한 목적으로 여김
결론 : B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A의 이성을 선택
2.
주장 : '결론 : B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A의 이성을 선택'이 매우 잘못된 조치이다.
근거1 : 그 존재가 이런 목적을 위하여 수행해야 할 모든 행위와 행위의 모든 규칙들은 본능을 통해서 훨씬 더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었다.
근거2 : 행복이라는 목적 또한 이성보다는 본능을 통해서 훨씬 더 잘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2번 문장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음. 왜냐하면 2번의 문장구조는 충분히 납득이 되며,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논의도 아니기 때문임.
내가 궁금한 것은 1번 문장구조에 대해
가정 :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을 자연의 진정한 목적으로 여김
결론 : 자연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그 존재의 이성을 선택함
가정에서 결론으로 이어지는 중간과정이 납득이 안 된다는 점임.
자연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그 존재의 이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차별되는 특징인 '이성'을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인가?
만일 그렇다면, 저 결론은 더 이상 결론이 아니라 어떤 가정을 하더라도 참인 '자명한 진리'가 아닌가? 전제조건으로 들어갈만한 명제가 결론에 있어서 납득이 안됨.
인간: 환경파괴로 지구 멸망해요 ㅠㅠ 지구: Jot 된건 너야. 난 아무상관 없어. 그냥 이런 말이지.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하기로 선택을 하긴 했는데(이성이 있으니까) 그 목적이 인간의 행복이라면 아주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니까 자연은 인간이 행복하든 말든 관심 없다 여기는 게 합당하다 그냥 요 얘기 아닌강...
내가 '결론이 자명한 진리이기 때문에 전제조건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점과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차별되는 특징인 '이성'을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자연이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성을 선택한건가?' 하는 질문이 옳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네. 함수 :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하기로 선택 인풋 :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을 자연의 진정한 목적으로 여김 아웃풋 : '결론 : B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A의 이성을 선택'이 매우 잘못된 조치이다. 으로 접근했구나. '자연은 인간이 행복하든 말든 관심 없다 여기는 게 합당하다' 으로 결론지었구나. 여기서 나의 의문점이 여럿 있지만 가장 먼저 드는것은 1. 본능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이 아닌가? '개인이 본능을 따른다면 행복이라는
목적을 훨씬 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네.
가정 :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을 자연의 진정한 목적으로 여김 결론 : 자연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그 존재의 이성을 선택함 이거 말하는 거면, 가정은 스토아 학파가 행복을 목적시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윤리학의 전제로 자연학을 사용해서 그럼.
결론은 스토아 학파의 존재론은 유물론인데, 이 중에서 능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게 불임. 사물들은 모두 불을 내포하고, 이게 식물에서는 본성, 동물에겐 영혼, 인간에겐 이성으로 드러남
아 이글보니까 감이 올 것 같다. 일단 ㄳㄳ 생각좀해보고
저 가정과 결론은 칸트가 주장한 게 아니라, 스토아 학파가 한 주장을 그대로 가져온 거. 자연의 세계 이성이 인간에겐 이성으로 드러나니, 그 이성을 따라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가정과 결론의 전체체계가 모두 스토아철학의 체계구나. 마르쿠스가 '너 자신의 자연 본성과 보편적 자연을 따르는 것이 좋다. 이 두가지 길은 하나니까.' 라고 말했던 대목이 생각나네. ㄳㄳ
칸트의 스토아 비판에 대해서는 행복에 대한 견해에서 나옴. 칸트는 스토아의 행복이 단지 "주관의 상태에 속하는 것, 덕의 소유 의식일 뿐"이라고 보며, 행복이 "모든 일이 소망과 의지대로 진행되는, 이 세상에서의 이성적 존재자의 상태"로 규정지음
이건 칸트의 감성계와 예지계의 구분에 의해서 나타나는 건데, 복잡하니 넘어가고, 중요한 건 이 둘이 현실에서 딱 갈라지는 게 아님. 대략적으로 인간이 이성 혹은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갈라지는 게 아닌, 두 측면을 다 가졌다는 걸로 보면 됨. 그래서 칸트는 스토아가 추구하는 현자가 거의 신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함. 또한 칸트가 말하는 행복을 제거했다고도 말함
오 흥미롭다. 왜냐하면 에픽테토스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자유에서는 부모님이 눈앞에서 듸지더라도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어야 하는 경지가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납득하긴 했지만(주변환경의 변화 - 가장 소중한 것들의 제거 - 에도 영향(슬픔, 분노) - 제약 - 을 받지 않는 것) 그것은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다고 해야할까, 직관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거든.
당시 시대상황이 전쟁이나 폴리스의 붕괴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던 때라 그럴거임. 그래서 헬레니즘 시기의 스토아, 에피쿠로스, 회의주의 전부 마음의 평안을 행복으로 보고 그걸 추구함
칸트의 경우에도 욕망이나 주관적 감정 같은 이끌림에 벗어나는 것을 자유로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감정과 이성을 모두 소유한 존재로 보아서 그걸 조화시키려고 함. 감정도 완전히 부정하진 않을텐데, 도덕감이 윤리는 아니더라도 도움이 된다고 했나 잘 기억 안 나긴 하는데...
암튼 칸트라면 슬퍼하는 것이 윤리는 아니더라도, (이성적 존재자의 합의에 의거한다면) 장례식을 열거나 이런 건 윤리적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