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빗소리 속에도 바람이 부는지

풀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가지들이 흔들리고

이 악물고 그대가 흔들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풀들이 흔들린다.

뿌리뽑힌 것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 「김수영 무덤」『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2

"(...) 저는 나리의 아랫사람일 뿐 노예는 아닙니다. 나리의 혈통이 귀족이라 해서 저의 비천함을 업신여기고 욕보일 권리는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됩니다. 나리께서 신분이 높은 신사라고 자만하시는 것만큼 저도 농사꾼으로서의 그만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나리의 권력은 제게 아무런 힘도 못 쓸 것이고, 나리의 재산도 제게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나리의 말씀 또한 저를 속일 수 없으며, 나리의 한숨과 눈물 역시 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

— 『돈키호테』미겔  세르반테스



3

독일인, 좋은 민족이지. 나도 아직은 공식적으로 독일인의 한 사람이고! 그런데 히틀러 덕분에 우리가 이처럼 나라 없는 신세로 전락했어. 지금 이 세상에서 독일인과 유대인처럼 서로 적대적인 사이는 어디에도 없을 거야.

—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



4

그 어떤 경우에도 비열해지지 마라. 거짓되지 마라. 잔인해지지 마라.

나는 언제나 네게 희망을 품을 수 있다.

—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바버라 킹솔버



5

더욱 놀랍게도 칭기스칸 군대의 호환성은 전쟁에서 이긴 뒤 포로들을 흡수 편입시키는 데까지 나아 갔다. 칭기스칸의 마인드에 ‘적과 나(我)'라는 적대적이고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칭기스칸은 적이든 아니든 쓸모 있는 모든 사람을 확보하려 했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기술자들을 따로 골라내고 부족한 군사들을 현지에서 충원하는 방식으로 항상 인력 풀을 운용하는 놀라운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CEO 칭기스칸』, 김종래



6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 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 『소년이 온다』한강



7

그래도 우리는 대대로 '희망'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것은 망각이 주는 선물.

너는 보게 되리라.

폐허 속에서도 끊임없이 태어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 「성공하지 못한 히말라야 원정에 대한 기록」『끝과 시작』비스와바 쉼보르스카



8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마일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 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 『슈독』 나이트



9

모든 지인이 여러분의 내적 고통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이다.

— 『나는  불안한가』트레이시 마크스



10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해고는 살인이다.

— 『철도원 삼대』황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