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린이 최근에 책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이방인 읽었어.
첫 감상부터 말하자면 우선 더럽게 재미없었어. 배신감까지 듦.
읽으면서 주인공의 무심함과 철저히 제한된 시점에서만
쓰이면서 그의 편에 서게끔 유도되는 것에서 나는 약간의
역겨움까지도 느낌.
그럼에도 카뮈씨가 무언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테고 그걸 알아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솔직히 감이 안잡히던
때에, 책 뒷부분 옮긴이 김화영씨의 해설을 읽고 약간 윤곽이
잡힌 느낌이라 한번 내가 느낀 바를 써볼게.
(김화영씨 글 말고는 다른 해석은 거의 보지 않아서 내 해석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은 독린이니까 감안하고 봐줘 지적도 좋아)
나는 주인공의 살인이 너무 이해가 안되서 처음엔 그저
싸이코패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건 작가의 의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게 해설에선 주인공이 계속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을 작품 내에서 흘리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난 이 부분은 읽으면서도 느꼈었어.
그럼 싸이코패스라는 것과는 모순되니까 다른 생각을 해봤어.
여기서부터는 내 생각인데,
이 작품에서 살인의 이유라던가 정당성 따위를 찾는것은 마치
중식당에서 초밥을 찾는 격인거야.
살인은 철저히 수단을 위해 사용되어졌다고 느꼈거든.
작중에서 주인공은 본인이 살인범이라는 지각은 있으나,
그것(사람의 죽음)에 대한 뉘우침이나 걱정, 실감은 하지 않아.
난 이걸 보고 인간이 태어나서 모두 죽는다는 지각은 있으나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사는 모습이 오버랩 됐어.
그러다 본인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말이 많아지면서
좀 더 인간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인간은 죽음에 무감각하지만,결국 죽고, 죽음 앞에서 나약해진다. 라는걸 표현한 것 같아. 그런데 여기서 뫼르소가 다시
비인간적으로 변한다고 느낀 부분이 다시 죽음 앞에서 세상에
마음을 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분인데, 여기서부터 카뮈씨가
죽음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였을까..? 싶었어.
결국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니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마음의 문을 여는..? 그런 거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 내용 자체가 너무 납득되지 않음의 연속이라 자꾸 글자가 아니라 카뮈의 머릿 속을 읽으려 한 것 같기도 한데 난 아직 카뮈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 보기도 했고 그래서 독서 많이 해본 친구들이 자기 생각 달아줘도 좋아. 끝!
첫 감상부터 말하자면 우선 더럽게 재미없었어. 배신감까지 듦.
읽으면서 주인공의 무심함과 철저히 제한된 시점에서만
쓰이면서 그의 편에 서게끔 유도되는 것에서 나는 약간의
역겨움까지도 느낌.
그럼에도 카뮈씨가 무언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테고 그걸 알아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솔직히 감이 안잡히던
때에, 책 뒷부분 옮긴이 김화영씨의 해설을 읽고 약간 윤곽이
잡힌 느낌이라 한번 내가 느낀 바를 써볼게.
(김화영씨 글 말고는 다른 해석은 거의 보지 않아서 내 해석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은 독린이니까 감안하고 봐줘 지적도 좋아)
나는 주인공의 살인이 너무 이해가 안되서 처음엔 그저
싸이코패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건 작가의 의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게 해설에선 주인공이 계속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을 작품 내에서 흘리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난 이 부분은 읽으면서도 느꼈었어.
그럼 싸이코패스라는 것과는 모순되니까 다른 생각을 해봤어.
여기서부터는 내 생각인데,
이 작품에서 살인의 이유라던가 정당성 따위를 찾는것은 마치
중식당에서 초밥을 찾는 격인거야.
살인은 철저히 수단을 위해 사용되어졌다고 느꼈거든.
작중에서 주인공은 본인이 살인범이라는 지각은 있으나,
그것(사람의 죽음)에 대한 뉘우침이나 걱정, 실감은 하지 않아.
난 이걸 보고 인간이 태어나서 모두 죽는다는 지각은 있으나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사는 모습이 오버랩 됐어.
그러다 본인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말이 많아지면서
좀 더 인간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인간은 죽음에 무감각하지만,결국 죽고, 죽음 앞에서 나약해진다. 라는걸 표현한 것 같아. 그런데 여기서 뫼르소가 다시
비인간적으로 변한다고 느낀 부분이 다시 죽음 앞에서 세상에
마음을 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분인데, 여기서부터 카뮈씨가
죽음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였을까..? 싶었어.
결국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니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마음의 문을 여는..? 그런 거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 내용 자체가 너무 납득되지 않음의 연속이라 자꾸 글자가 아니라 카뮈의 머릿 속을 읽으려 한 것 같기도 한데 난 아직 카뮈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 보기도 했고 그래서 독서 많이 해본 친구들이 자기 생각 달아줘도 좋아. 끝!
독후감은 언제나 개추야 - dc App
뫼르소는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임. 그 대표적인 예로 얘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면 표현이 과할정도로 감성적임. 하지만 인생을 사랑할수록 삶이 무의미하다는 부조리한 진실은 더욱 크고 절망적으로 다가옴. 이 상황에서 뫼르소는 인간의 모든 일들에 회의감과 무관심함을 보임. 그리고 오직 지금 내가 느끼는것에 집중하려함. 사랑에 솔직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돈과 명예보다 사랑하는 사람인거지. 그에게 살인은 또 하나의 부조리임. 그저 태양이 뜨거웠고, 난 정신이 아득해 그저 방아쇄를 당긴것뿐. 출퇴근과 다를게 없는 행위일 뿐인데 그걸 사법체계라는 인간이 발명한 가상의 가치로 처벌하려니까 얼탱이가 털려버린거임. - dc App
긴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 무슨말 인지는 알겠고 좋은 해석인 것 같아. 그런데 내가 궁금한건.. 그럼 그 아랍인은? 그가 착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아도 사랑하는 것이 있었을 거잖아. 가족이 있었을 거잖아. 여기서 부터 나는 모든 몰입이 깨져버렸어. 그저 뜨거운 태양 아래 속 불행의 문을 여는 노크로만 취급하는 게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그게 우리사회의 가치판단으론 이기적인게 맞는데, 뫼르소는 그 가치판단에서 벗어난 존재임. 얜 걍 사람이 죽으면 ‘조의를 표한다’가 아니라 ’사람이 죽었다‘딱 이것만 인식하고 마는애임. 그래서 싸패처럼 보이기도 하는거임. 그 대신 본인한텐 ㅈㄴ 진심이잖아. - dc App
그럼 뫼르소에게 우리사회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런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고 그가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읽는게 맞겠네. 아랍인은 그저 부조리를 표현하는 장치이고.
ㅇㅇ 이방인은 뫼르소에 이입해서 읽는게 맞는 소설임. 논문보면 아랍인은 왜 죽였는지 카뮈도 모른다는게 정설임. 애초에 걍 죽은거거든. 그게 부조리고 - dc App
그것이 부조리야
오....
아랍인은 그냥 부조리의 화신이라고 생각하면 편함
어느 채널에서 봤는데 살인자가 살인 저지르기 2년전에 '내 안의 통제할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서 난 살인하고 자살할거같다고 했는데' 미리 용서를 구하고 유서 남기고 진짜 그렇게 죽이고 자살햇다고 함. 나중에 해부해보니 폭력을 제어하는 뇌의 부분에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ㄷㄷ 기능적 뇌 이상을 문학으로 구현할거아닐까(참고로 이방인 안읽음)
죽음이 두려워 살고싶어졌고 살아있음을 실감하자 죽음이 너무 두려워 죽으러갔다
난 ㅈㄴ 재밌게 읽었는데 - dc App
뫼르소는 사이코패스 보단 소시오패스에 가까움
이방인의 후반부에 이르면 독자는 두 종류로 갈린다. 뫼르소 혹은 사형을 부르짖는 재판 참관자들. 대부분은 뫼르소의 사형을 바라는 참관자가 된다. 바로 그때 뫼르소는 진짜 이방인으로 변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무대장치가 절연된, 무대에서 혼자만 다른 극의 대본을 읊는 배우. 독자의 날 선 분노와 짜증에도 뫼르소는 주관을 굽히지 않고
그가 독자의 환호와 동시세 사형대로 향하며, 그 또한 사형대에서의 박수갈채를 기대하는 순간, 그의 실존이 작품 밖과 안에서 동시에 달성된다. 독자는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장치다. 재판에 참석했던 이름 없는 관중, 검사, 판사와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