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기간이라서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잡다한 생각을 할 시간이 늘었다.
말과사물의 내용을 일일이 늘어놓는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내용 언급은 거의 쓰지 않을 것이다.
푸코의 에피스테메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선하게 느꼇던 것은 에피스테메의 내용이였다. 르네상스, 고전시대를 사고방식으로 구분한것이 놀라웠다.
사물의 본질은 언어에 있다는 생각은 근대철학에서 처음들었다. 그런데 르네상스시대때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물론 르네상스에서 말하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는 미신에 가까운 것이였다. 고전시대로 넘어오면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나타내는것과 나타내어지는것으로 변한다.
누군가에게는 진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세상이 바뀔정도로 놀라운 사실이였다.
진리에 대한 입장이 바뀌는것은 충분히 있음직했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고등학생때 플라톤주의였다가 교생을 하는 지금은 구성주의를 따르고 있다.
플라톤은 진리가 사람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구성주의는 진리는 허구이고 사람이 가지고있는 생각이 전부라고 한다.
진리에 대한 입장과 달리 사물과 언어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것은 믿기 힘든 일이였다. 책을 절반정도 읽은 지금은 납득을 한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당연한것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있을뿐. 다른이름으로 이성이라 부르고 있다.
과학의 폭팔적인 발전을 생각하면 더이상 이성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과학은 우리앞에 팩트 그리고 예측된 결과를 갖다 줄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역할은 그 정도면 차고도 넘친다.
나에게 또하나의 충격을 준것은 체계에 관한 것이였다.
계(Kingdom)-문(Phylum (식물의 경우Division))-강(Class)-목(Order)-과(Family)-속(Genus)-종(Species)
위 나열은 생물을 분류하는 수단이고 이를 체계라 부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이 분류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체계라는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였다. 시대가 변하고(르네상스에서 고전시대로 변하고)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탄생한 도구였다.
푸코는 두 생물이 같다 또는 다르다 라는 개념은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첫번째는 두 생물을 나란히 놓은뒤 차이점을 나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생물들의 특징을 서술할 수 있게 된다.
두번째는 기준을 먼저 정한뒤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두번째가 바로 계로 시작해서 종으로 끝나는 나열법이다.
생각해보면 사물을 나눈다는 것이 르네상스시대때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르네상스때는 사물의 특징이 눈에보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물과 관련된 모든 이미지가 사물의 본질이 되었다. 사물에 관한 전설조차 사물의 본질이 되는것이다.
식물을 기준에 따라 나눈다는것은 식물의 본질이 몇가지 속성의 합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입장은 고전시대에 와서야 탄생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때는 사물의 본질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었다. 르네상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기준을 정하는 이야기로 돌아오자. 내가 신기하게 여긴것은 현미경이였다. 현미경의 역할은 안보이는것은 보는수단정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안보이는것을 보는게 목적이겠지만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식물을 분류하는 기준을 세울때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이다.
암술과 수술, 뿌리, 잎 같은것들이 현미경이 아니라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일 것이다. 분류가 아니라 그냥 모아놓은것이나 다름없다.
눈에 보이는것을 기준으로 정한다면 더 잘보기 위한 수단이 필수였다. 현미경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체계처럼 기준을 정해서 나누지 않고, 그저 사물들의 차이를 나열하는 식으로 생물도감을 만들었다면 작업이 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것이 있다. 바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물의 차이를 나열하면 위계가 잡히지 않는다. 모든것이 질적인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체계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기준은 양적인 개념이다. 잎사귀 갯수라던가 꽃잎 갯수라던가 뿌리의 길이라던가 그런 식으로 사물들을 분류할 수 있다.
자연계의 양 개념을 연속으로 가정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두 대상 사이에 위치한 또하나의 대상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꽃잎이 10개인 꽃과 꽃잎이 12개인 꽃이 존재한다면 꽃잎이 11개인 꽃도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이다. 식물을 잘 몰라서 비유를 이렇게 들었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 정규분포곡선과 무관하지 않다. 책을 끝까지 읽진 못했지만 정규분포곡선을 언급한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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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반이 열개 이상이었다. 그래서 학년,반,번호를 적을때 만약 내가 2학년 6반 12번이였다면 20612라고 써야했었다.
오늘 교생을 하면서 놀란것은 3604라는 네자리 숫자였다. 어떤 아이의 쪽지시험이 바닥에 놓여있길래 찬찬히 들여다 봤다.
시험지에 3604라 써져있는것은 3학년 6반 4번이라는 뜻일텐데 왜 30604라고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곧 이 학교는 모든 학년에서 반이 10개가 넘어가지 않았다는걸 생각해낼 수 있었다. 학급당 학생수가 10명을 넘기지 못한다면 세자리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아주 단순하고 당연하면서도 얕은 예시지만(사실 올바른 예시가 아닐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변하면서 언어가 바뀐다는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마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5자리를 적는다는 사고방식은 상상도 못할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5자리 숫자가 적힌 옛날 시험지를 봤을때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멋지네. 나도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