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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의 재독이다


스샷은 가라타니 빠돌이 조영일이 쓴 해제 마지막 부분인데 공감되어서 가져왔다


가라타니의 글은 어렵지 않다. 고졸 히키도 제대로 이해한다 이 말입니다


물론 가라타니가 인용하는 놈들은 다 어려운 놈들이 맞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플라톤 데카르트 푸코 모스 레비스트로스 그람시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폴라니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발레리 후설 흄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픈 놈들이다


그런데 가라타니의 글을 읽고 그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 놈들의 이야기를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하게 이해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


가라타니는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전개하기 위해서 저런 사람들의 글을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용의 앞뒤에 가라타니 자신의 문장으로 설명이 들어가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가라타니의 책을 읽고 나서 저 놈들의 주장을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연한 거긴 하지만, 그것만 명심하면 될 것 같다


자 그러면 간략하게 내용 요약을 해보자


우선 트랜스크리틱이 뭔데 씹덕새끼야?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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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도 표지에 적혀있다. 이동하는 비평이라고 한다


그것은 난폭하게 말해서, 지금 자기가 서있는 곳을 부숴버리는 것이다. 철저하게 파악해서 산산조각낸다.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설 곳을 찾아 거기 서야 한다. 표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면 또 자기가 선 곳을 부순다. 그리고 또 다음 설 곳을 찾는다. 멈추지 않는다.


가라타니는 칸트와 마르크스가 바로 그렇게 글을 썼다고 말한다


칸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에 처박혀 살았다. 그러나 당시 쾨니히스베르크는 온갖 문물이 모여드는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칸트가 그 곳을 고집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끝없는 '이동'과 같은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칸트는 학술적 성과로 베를린에 초청받았으나 거절했다. 이 때 베를린에 갔더라면 칸트 또한 헤겔처럼 공동체의 최종 형태로서 국가를 발견했으리라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심이 아닌 변경에서 관념론과 경험론의 사이를 트랜스크리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실제로 전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독일에서 프랑스에 대해 쓰고, 프랑스에서 영국에 대해 쓰고, 영국에서 독일에 대해 쓴다. 마지막 것이 자본론이 된다.


가라타니는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에게서 한가지 주의 주장을 추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마르크스는 여기선 이 말을 하고 저기선 저 말을 했기 때문에 모든 주장에 마르크스의 말을 갖다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트랜스크리틱이다. 지금 서 있는 발판을 부수고 다음 발판으로 넘어갔다는 말이다


칸트에서 마르크스를 읽고 마르크스에서 칸트를 읽는다는 말은


결국 윤리에서 경제를 읽고 경제에서 윤리를 읽는다는 말이다


즉 그 두 가지는 하나다. 그것을 가라타니는 생산 양식 이면에 도사린 진짜 하부 구조인 교환 양식으로 본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자본이 이윤을 만들어내는 곳은 생산이 아니라 유통이다. 상인 자본도 산업 자본도 똑같다


노동자 - 자본 - 소비자 라는 연결 고리에서 사실 노동자와 소비자는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시차 때문에 잉여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자본은 그 잉여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목숨을 건 도약' 을 시도하고 또 반복한다. 그것을 할 수 없게 되면, 미뤄뒀던 빚이 한꺼번에 몰려와 공황이 일어난다. 따라서 공황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필연적이다


그래서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공황이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거라 생각했지만, 국민 국가가 나서 자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뉴딜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건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자본주의는 그 성립 시기부터 국가의 비호 아래 성장했기 때문이다. 절대 왕정은 봉건 귀족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신흥 자본이 필요했다


그렇게 자본과 국가가 결탁하고


일국의 혁명이 시작된 시점에서, 주변에서는 오히려 국가가 대두되면서 기존의 농업 공동체가 무너지는데, 그 자리를 채우듯 '상상의 공동체'가 뚜렷해지고 그것이 네이션이 되어 합류한다


그것이 가라타니가 주장하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삼위일체다


가라타니는 헤겔이야말로 이 삼위일체를 처음으로 예견하고 '역사의 종언'으로 규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헤겔 이전의 칸트와 헤겔 이후의 마르크스는, 헤겔이 예언한 종말을 초월하고자했던 시도가 된다


이 삼위일체를 이겨먹으려면 마르크스나 프루동이 말했던 세계 동시 혁명밖에 없다고 한다


종교적인 믿음에 가까운 '교환양식 D의 도래' 라는 건 그런 얘기겠지


트랜스크리틱에서 가라타니는 노동자와 소비자가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 착안해 노동자 운동과 소비자 운동이 하나로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작업장에 나와서 일은 하되 그 생산된 물건을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물론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라타니는 직접 생산소비협동조합을 만들고 대체화폐를 도입해 운용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들을 하고 있지만 가라타니에겐 어디까지나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가라타니의 현실 인식 자체는 옳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나 그 해결책은 한없이 요원하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는 지금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라고 했다는데


그리고 칸트는 구성적 이념이 아니라 규제적 이념을 따라야한다고 했다는데


즉 트랜스크리틱해야한다는 이야기인데


다시 말해 거대 서사를 만들려 하지 말고 눈 앞의 좆같은 것부터 바꿔나가야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참...


어쨌거나 이번에도 읽는 재미는 탁월했다


책을 방금 다 읽었는데, 읽는데 오래 걸려서 그런지 초반부인 칸트 부분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정말 재미있다. 츄라이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