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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책은 [ ], 게임은 < >, 음반은 { }로 표기했다.

0.서론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현재, 21세기는 편협하게 뽑은 현대 청년들의 표본을 가져다 현대인의 정신을 그들의 시선으로 전유시켜 똥멍청이로 살아온 책임을 현대인들에게 넘기는 뉴스들로 가득차있다. 내가 이 시를 인용한 이유는 나와 내가 지금부터 써내려갈 독후감의 주인공인 이 책이 인용한 시와 꽤 적절한 교집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책 읽을 때 내가 듣는 노래는 고전 포스트락 또는 프리재즈, 읽고 있는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된 서평가 금정연의 고전을 설명하는-이유는 후술하겠지만 어쩌면 헛소리하는-21세기의 책, 그러면 내가 하는 생각은?

'<블루 아카이브> 안에서 오니카타 카요코는 메탈을 좋아하므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Burzum}-이오치 마리의 교회가 걱정된다-또한 코제키 우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책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혹평했다. 고로, 그녀가 자리를 비울 때 종이류 분리수거함에 넣겠다.'

...이런 생각을 주로 한다. 아마 나는 금정연이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핵심에 비켜 서 있을 것이다... 어쩌면 뉴스가 말하는 현대 청년들의 집중력 저하의 표본들 중 하나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주로 읽는 책이 참여문학이나 자계서가 아님을 고려하면, 내가 어떻게 독서하든 그 누구도 참견할 바가 아니며, 좀 저속한 말로는 "맛만 좋으면 그만"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서론이 너무 길다! 이제 막을 올려, 서평가의 책에 서평으로 떠나갈려는 독갤러들을 붙잡아 보도록 하자!

1.독서를 하는 이유는 유희? 실용?
그런데, 막상 내 서론을 듣고 남은 이들은 아마 순수 문학을 지향하는 독자들 뿐일 것 같아 공정하지 못한 질문인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묻는다면, 적어도 [난폭한 독서] 속에서의 금정연과 나는 당연히 독서를 하는 이유를 유희라 볼 것이다.
증거는 금정연이 서평을 쓴 책들의 제목이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1.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2.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3.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4.볼테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5.로렌스 스턴,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6.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방랑아 이야기]
7.니콜라이 고골, [코], [외투]
8.귀스타브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9.프란츠 카프카, [소송], [성]

공통점이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전부 바보라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조금 비켜 서 있는, 그러면 금정연은 어떨까?

'라블레는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걸 집요하게 반대한다. 설령 그 안에 자신의 신념이 녹아 있을지라도 그것만을 주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작품은 단순한 신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이다.'
-금정연 [난폭한 독서, 54p]

진정 실용적인, 너무나도 실용적인 것들은 원하는 이는 고지식하게 중심, 그러니까. 음식을 예로 들면 염통꼬치 같은, 그런 것 밖에 추구하지 않는 다는 점에 장점이자 단점을 갖는다.
그러나,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목이나 다리, 가슴 같은 부위도 존재한다. 이런 자유분방한 금정연의 서평은 유희를 발산한다. 설령 그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한 마디로, 그는-라블레의 표현을 이용해 보면-닭 항1문 부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으려 한다. 못 믿겠는가? 밑에 인용문을 보아라!

'-팻말 이야기, 팻말 이야기를 해달라고.-그냥 어느 곳에나 있는 팻말일 뿐이다.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팻말 이야기를 해달란 말이다.-싫소-아무래도 이 책을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겠군.-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좋아,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지. 대신 화는 내지 않기요.-화는 내지 않겠소.'
-금정연 [난폭한 독서, 181p]

팻말에 적힌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나는 말하지 않겠다. 아무튼, 이게 금정연이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 대해 작성한 서평이다. 이게 디드로의 저작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당연히 관련있다! 이는 저작에 등장하는 교수대 바로 옆에 있는 팻말이기 때문이다. 그럼 적힌 내용은 저작과 관련이 있는가? 전혀 없다.

2.의미 없는 막춤, 그러나 멋진
당신은 혹시 밴드 펄프(Pulp)의 프론트맨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의 막춤을 아는가? 애초에 막춤인지라 특징을 꼽기 힘들지만, 표독스러운 표정과 그의 빈티지 수트, 세련된 말-이는 그가 프랑스에 거주했던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이 그의 막춤을 더욱 멋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금정연의 서평 또한 그러하다. 비록 막춤처럼 두서없다고, 혹평을 날릴 수도있다. 그러나, 아래의 인용문을 보면 잠시 혹평을 거두고 싶어질 것이다.

'▪+이성(특히 여성)의 신체 사이즈에 대한 집착=해부학적•생리학적 측면에서 본 인간의 육체 시리즈
  ▪+옆 테이블에 앉은 남녀의 옷차림에 대한 품평=의복의 시리즈
  ▪+배가 슬슬 고파질 때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전 세계의 음식 사진=음식의 시리즈
  ▪+다음 날이면 지워지는 술 취한 밤의 욕설=음주와 취태의 시리즈
  ▪+화장실에서 일어난 황당하고 기이한 에피소드들= 배설의 시리즈
  ▪+죽고 싶다는 푸넘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죽음의 시리즈'
-금정연, [난폭한 독서, 38-39p]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의 서평 속, 라블레가 제시하는 새로운 결합에 대해 소개할 때 쓴 문장들로, 이는 현실의 우리와 16세기 저자를 서로 병치 시키면서, 일반적인 독자와 저자의 무도에 발칙하게 발을 놀리며 막춤의 전조를 알린다.
가장 절정에 이르는 부분은 역시 그가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 대한 서평을 쓸 때다. 그는 이 부분에서 아래 인용구에 따라, 꽤 도발적인 서평을 작성한다.

'[운명론자 바크]에서 각각의 인물-서술자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과정은 두 순간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진다. 하나는 인물-서술자가 시작할 채비를 하는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중단된 이야기를 재개하거나 이어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두 순간 사이의 부분, 곧 진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은 텅 비어 있어서 시작은 실어증에라도 걸린 듯 사라진다.'
-금정연, [난폭한 독서, 191-192p]

클라이맥스, 그는 이에 따라 책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독자-서평가 혹은 서평가-편집자의 대화를 집어넣고 맥락을 끊는다. 또한 그들의 대화 또한 책의 줄거리 소개나 작품 해설에 맥락이 끊어진다. 놀랍다. 이는 자비스 코커의 막춤을 거의 따라잡았다. 다만, 잠깐 삐뚤어진 평론가처럼 행동하자면,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의 [방랑아 이야기]의 서평에서는 너무 급하게 막을 내린 감이 없지 않아-아무리 저조한 시청률이라 해도-있으며, 그런 와중에 더 스미스(The Smiths)의 가사 인용들은 억지스럽고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의 서평에 비하면 상당한 실망감을 주며,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의 서평도 그의 일기장과 같이 진행되는 줄거리 소개만으로 끝나는게 너무 아쉽다. 아마 이 두 부분은 강철(책) 속 진흙(약한 부분)일 것이다.

3.결론
비록 대한민국 서평계의 한 획을 그었다 같은 평가나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는 없는 책이지만, 국문학의 진지함에 지쳤거나, 딱히 복잡한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읽고 싶을 때, 추천할 만한 책이다. 현대인들의 비판에 지친 이들은 더욱이 추천할 만하다.
평점:3/5

P.S.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최고의 작가다. 비슷하게 쓰는 작가있으면 추천 좀(보르헤스나 존 밴빌, 제임스 조이스 제외)

노원역 알라딘 입구, 찍을 땐 몰랐는데 헤밍웨이랑 피츠제럴드만 모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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