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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꼼꼼히 읽기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니다. 그건 대부분의 문학이 그런 방식으로 읽기엔 딱히 거창한 무언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꼼꼼한 읽기의 대상이 되는 소위 고전이라는 것이 대체로 낡아빠졌기 때문이다. 소수의 고전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여러 다른 해석의 대상이 되는데, 이것이 어떤 고정된 연구대상으로서 학술장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위치를 이해하면서도 비-학술인으로서 여기에 시간을 쓸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글은 옛날보다는 지금 이 시대에 더 가까우며, 많은 글은 그저 가볍게 읽으며 흥미를 느끼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퍼즐 같은 글이 있다. 모더니즘의 정전에는 거의 패스츄리에 가까울 정도로 상징을 무수히 많은 층으로 겹쳐놓은 글이 가득하며, 그 뒤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조이스라면 몰라, 보수적인 고전의 수호자를 자1청하는 나보코프가 정작 내가 보았을 때에는 가장 비-고전스러운 퍼즐 같은 글을 써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모레티의 글은 늘 읽을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데, 도저히 하나의 글만을 통해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단언을 듣다가 조금이라도 근거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천재 개인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목소리로 말하든, 낭만주의의 목소리로 말하든 참 납득하기 어려운 낡은 말이고, 많은 글-특히 소설-은 어쨌든, 사소하다. 문학의 강점과 영향력은 글 내부의, 천재적인 소수 작가의 필체 속에 깃들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서사와 형식, 한 글만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전체 문학장에서의 위치에 있으리라 믿는다. 조심스럽게 단어장에서 골라낸 하나의 어휘가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 어휘가 위치하고 있는 구조야말로 참으로 가치 있으리라고. 또한 이 소수의 정전에 대해서도 역시, 그 주변에 가득했던 수많은 글의 존재를 무시한 채 외딴 섬을 보듯 분석하는 것보다는 전체 속에서 이 글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고.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조금 더 통속적인 어조로 이를 논하는 괜찮은 책이다)


<멀리서 읽기>는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을 몇 가지의 도식과 관찰, 수량적 분석 등으로 바라본 여러 글들을 담고 있다. 단일한 유럽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부터 시작해서, 민족문학을 중심부로부터 온 서사 형식과 주변부에 고유한 문체가 서로 갈등하다가 타협에 이른 결과로 보는 시각, 각 문학의 분포를 통해 문학과 지역성을 실제 나라별 공간에 따라 분리해보거나, 소설의 제목 길이가 어떻게 시대에 따라 점차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화되어 왔는가, 추리 소설의 '실마리' 요소가 소설의 적자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등의 통계적 접근을 선보이거나, <햄릿>과 <홍루몽> 등의 소설을 등장인물의 상호작용에 따른 그래프로 만들어 특정 인물이 어떤 네트워크에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보여주는 등 신기하면서도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을 여럿 늘어놓는다. 아마 <그래프, 지도, 나무>에서 처음 선보인 방법론을 좀 더 구체적인 연구로 실현에 옮긴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모레티의 연구는 어떤 의미에서 글을 무언가 무상한 것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감이 있다. 《문학의 도살장》 챕터에서 다루는 '실마리' 관련 소설의 적자생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글은, 99% 이상이 순식간에 잊혀진다. 당대에 유명했던 글조차 얼마 가지 않아 세월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시장과도 비평과도 분리될 수 없지만 그 어느 쪽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이 기이한 도살장 속에서 참 신기하게도 소수는 살아남는다. 이미 현재라는 미래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추리 소설의 실마리 요소를 보면 어째서 코난 도일의 글이, 그리고 이후의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살아남았는지를 알 수 있지만 그게 과연 정말로 아는 것일까? 문학의 진화론을 다루는 연구는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고생물학자의 글을 연상시키는 감이 있으며(실제로 <풀하우스> 같은 책을 인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좋은 글의 조건으로 살아남은 이들을 깊게 분석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 되묻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는 반대로, 우리가 문학의 다양성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알려주기도 한다. 근대소설의 발전사는 양식의 통일성보다는 통일성을 지키지 않아도 될 공간 분리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물론, 다른 연구에서도 언급하듯, 소설이 근본적으로 '대충 읽어도 될' 글로서 서서히 자리잡은 탓이기도 하다) 수많은 지역과 민족에서 여러 문학 형식이 분기되던 나무는 동시에 전세계가 연결되며 어떤 우세 형식에 맞춰지는 물결에 휩쓸렸다. 비단 문학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세계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가며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처럼 되새김질하고 모든 이국적인 것이 동질적이게 되는 기이한 예술을 만들고 있다. (여기서 나는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마니아>를, 강덕구의 <힙스터리즘>을 염두하고 있다) 모레티가 제시한 수량적 방법론을 현시대에 적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우리 시대의 기술이 기본적으로 기존의 수많은 사례를 가져다가 통계적으로 분석해 새롭게 조합하는 응용통계-인공지능-라는 것이 함의하는 바가 있다.


P. S. 상당히 흥미로운 학자라 이 이후에 나온 책들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같은 시기에 나온 <부르주아>가 최근에야 나온 것을 보면 최근작은 그냥 원서로 보는 게 속편하겠거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