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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값을 치르든, 우린 이 문제를 다음 세대에 떠넘길 수 없습니다! 이번 세대가 우리의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일찍이 헤겔은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여기에 마르크스는 덧붙였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여기에 나도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비극적인 역사는 희극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옐친은 나라를 파탄시키고 입법부는 이꼬라지가 났는데도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될 가능성이 존속한다고 망상한다.
병신의 똘마니는 예외상태를 결정하지도 못하는 자라도 통치행위를 하고싶어!를 외친다.
저 새끼를 그냥 지난번에 파면시켜야헀는데.
과거의 우리들의 이웃 인민들은 반란을 일으킨 국가 권력에 맞서 승리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이기지 못했다.
결국 우리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들은 다행히 미얀마, 홍콩 꼴이 나는걸 면했지만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다.
하기야 지금 이 순간에도 사카르토벨로(그루지야)에서도 싸움이 나고 있는데 침묵하는게 국제사회아닌가.
결국 프로이센 군인의 말대로 평화란 전쟁과 전쟁 사이의 전간기일 것일까.
이 모든 착잡함을 안고 나는 책 이야기를 시작한다. 빌린건 열흘 전이지만 어어하는 사이에 반란이 폭팔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번 더 읽었다. 열 일곱살의 나이로 홍콩 우산혁명을 촉발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징역 4년 7개월을 받고 투옥되어있는 그는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감옥에 나온 뒤에도 홍콩을 위해서 투신할까?
어찌되었든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홍콩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된 홍콩이었지만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했다.
명목상으로는 고도자치였지만 실제로는 천안문 항쟁으로 인한 혼란탓에 실질적인 위치가 정립되지 못한 탓이었다.
여기에 1990년대 본토 자본이 유입되어 경제적 양극화와 불안정화가 가속되어 홍콩 주민의 불만은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이 모든 분노가 폭팔한 것이 2014년 우산혁명이었다.
정치적으로는 홍콩의 위치를 확립하고 사회적으로는 중앙정부의 예속을 막아내는 것이 시위대의 실질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시위대는 패배했다.
(일국양제가 국가보안법으로 붕괴되었다는 개소리가 많은데 중앙정부의 우위가 확립된건 이 시점이다.)
이는 어느 정도는 예정된 일이었다. 관망자들은 물론이고 민주파 내부에서도 중앙정부를 너무 자극하면 곤란하다는 분열이 있었다.
본토파들은 아예 대놓고 홍콩 독립을 주창하면서 중앙정부의 분노를 더욱 키워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7살의 소년은 어떻게 말할까? 우산혁명이 실질적으로 끝난 11월 10일의 글 중 일부분이다.
"만약 제가 현장에 가서 최전선으로 나아간다면, 공공연히 학민사조는 시민들의 점거를 가로챈다는 비판을 받을 겁니다.
아니면 현장에만 가고 최전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모두들 제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보고만 있는다고 비판할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현장에 가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운동에 나 몰라라 관여하지 않는다고 비판 받을 것입니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다. 제국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태업하고 어른들이 방치해서 생긴 문제인데 미성년자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가.
사실 유명인사로 떠오르긴 했지만 조슈아 윙이 소속된 학민사조가 직접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사는 높게 쳐도 천여명이었다.
어디까지나 상징으로 유명해졌을 뿐, 조슈아 윙은 여전히 신체적으로는 어린 아이였다.
그도 속으로는 피로하고 쉬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책임을 떠넘기기를 원하는 헛어른들은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넘길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4일 뒤인 11월 15일의 글을 보자.
청춘이란 운명에 대항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이다.
모든 일은 하늘에 맡기고 운명에 따라야한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이들,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어른 세계의 암묵적 규칙을 무조건 따르기 '싫은' 사람들 말이다.
(중략)
청춘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권세의 그늘 아래 숨을 줄만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청춘을 낭비한다'고 비판한다. 실로 우스운 일이다.
그런 것이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2014년 하반기의 승리가 아니었다.
더 나아가 홍콩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더 나은 세계를 찾기를 원했던 것이다.
스스로도 그것이 막막하고 스스로의 삶을 낭비하는 것임을 알았음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사건의 패배는 그를 좌절시키는 커녕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우산혁명 이전의 글은 온건하고 원리적이었다면 후반부는 급진적이고 정면 대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렇기에 나는 2019년의 패배에도, 2024년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청춘을 간직하기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언젠가 여명이 그에게 밝아오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에게 빛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선한 사람을 위한 인정조차 없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존속할 가치도 없으리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자가 있는 한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홍콩 역시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성급할 것이다.
바라컨데 용기 있는 시민에게 영광이 있기를 빈다.
더 쓸 말은 있지만 ㅅㅂ 집회 시간 다되서 나간다.
청춘은 멋진거야
잘보고감
화이팅입니다
뜨끈한 안방에 누워 있는 샛별이도 응원할 게! 영원 보내기 ㄱ!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류가 있네요. 홍콩 반환은 1997년 7월 1일에 됐습니다. 협정은 1987년에 이루어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