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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이 소설의 무대는 흑산이고 유자의 삶을 묘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주 이야기의 배경은 정약전의 흑산이 아니라 내륙에서 일어나는 신유박해가


주된 배경이다. 천예한 마노리와 육손이,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지 못하고 남자들의 검은 몸에 꿰인 상처를 가진 아리, 새로운 세상을 믿으며


자신의 땅에 천주의 마을을 세우기 바라는 많은 이들과, 종묘사직에 목숨을 걸지도 않고 구원을 바라지만 자신은 이 땅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체념하고


실과 득을 따지는 박차돌, 그와는 반대로 조선의 땅의 속박에 벗어나 썩은 세상을 타파하고 새 시대를 만들고 싶은 황사영 등, 이들의 이야기는


얽히고 섥히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에는 역사처럼 형장의 이슬로 매듭지어진다. 이들이 원하던 세상은 끝내 이루지 못했고 한강에는 시체의 핏물이 흘렀으며


걸인들은 토막난 시체를 끌고 거리에서 동냥을 한다. 민초들은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서 고향을 떠나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천주에 의지한다. 조정은 무능하며


썩어서 무너져야 할 권력이 아이러니하게 제일 강하며 자신들이 정의라 믿고 그 정의 아래 단지 풍작을 기원하고 소박한 삶을 원하는 민초들은


천주의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아가페가 왜 사학이라 불리는 영문도 모르는 체 곤장을 맞고 정형을 당한다.



시대는 바뀌지 않으며 이 소설 이후의 조선은 세도 정치의 폐단이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의 소망은 주리가 틀져서 정강이뼈가 살을 뚫고 나오는 것으로 끝났다.


황사영이 꿈꾸던 소가 울고 강물이 흐르던 조화로운 세상은 지금 21세기 한반도에서조차 꿈 꾸기에는 갈 길이 멀어보인다. 이들이 흘린 땀과 피는 김훈의 필력에


의해 허무로 칠해졌으며 끝내 정약전과 다른 살아남은 이들은 주저앉은 길 위에서 삶을 시작하고 체념한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정약전에겐 섬의 삶과 내륙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지도 모른다.


내륙에선 신자들의 시체가 서대문 밖에서 굴러다니지만 섬의 삶 또한 백성들의 피부를 벗기고 살을 발라내고


기름을 짜고 뼈를 부수기에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죄인들은 침엽수가 무성해서 검은 흑산 꼭대기에서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보고 내륙에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 하였을까 아니면 모든게 다 끝나고 체념을 하며


연거푸 술을 마셨을까. 그것도 아닌 길을 선택한 유자들은 섬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정약전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다. 이는 체념이랑 조금은 다른 것 같다


흑(黑)은 부정적이고 깊이가 보이지 않는 수렁이다.


반면 자(玆)는 검고 탁하며 지금, 여기라는 의미도 있기에 어둠 속에 빛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약전은 섬의 수중 생태양식 기록을


흑산어보라 하지 않고 자산어보라 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현재 이 흑산에 있으며 내륙으로도 갈 수도, 섬의 사람도 아니라 방황하였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길 위가 그의 집이고 따라서 자신이 밟고있는 땅 위에서 생을 이어갈 것을 의미한 것이다.


심문에 자백해 맑고 순수한 황사영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을 가진 정약전에게 ,황사영과 본질이 같은 장창대는 일종의 구원이었고 섬의 삶을 이어가게 해준


원동력이었을 수도, 섬의 여인이나 장 풍헌 등 그 밖의 인물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결국 그는 흑산도에서 생을 이었고 생을 마감하였다.




좆까고 애매한건 김훈 작가 양반에게 묻고 싶지만


그 할아버지한테는 글은 밥벌이 그 이상은 아니라, 할배요 돈 버느라 고생하시네요 한 마디만 하고 끝날듯



흑산 하니 홍어에 탁주가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