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 살면 앞으로 얼마나 살 거라고...……… 단 하루라도 남들처럼 살아보지 못하고 죽게 되는 건 아닐까 하구. 그리구...... 잘은 모르지만..... 그런 건 .....공산주의 사회가 되기 전엔......"
"바보 같은 소리! 그게 사회보장제도라는 거지 왜 공산주의야?"
"그래요. 전 바보예요. 그러니까 우리 그 얘기 그만둬요. 어쨌든 당신하구 아무 얘기나 주고받고 있는 순간은 즐거워요."
당신하구 아무 얘기나 주고받고 있는 순간은 즐거워요. 살림 살이에 관한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는 아내의 입에서 뜻밖에도 연애중인 처녀의 입에서나 들을 것 같은 말을 듣고 보니 정한은 슬그머니 슬퍼졌다. 소설 쓴답시고 호텔 같은 데 가지 말고 이렇 게 아내와 며칠이고 몇 밤이고 종알종알 얘기나 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남과 같은 이 생활을 포기하면 그 대가로 글을 얻을 수 있다는 듯 허우적거려온 세월이 꿈처럼 뿌옇게 퇴색해 보이는 것이었다. 결국 소설을 쓴다는 것도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었던가?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할 만한 흔해빠진 대학 졸업장 하나 없기 때문에 타고난 예민한 감수성과 어린 시절부터 친척이 경영하는 서점에서 닥치는 대로 읽어낸 책들에서 얻게 된 '진정한 삶'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일한 능력으로 하여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 소설을 써왔단 말인가?
진정한 삶. 그가 책을 통해 갖고 있고 그가 글 속에서 써왔던 진정한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도대체 어디가 비슷하단 말인가? 진정한 삶이란 결국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는 순간에 있는 것인가?
감수성이 폭발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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