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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은 이미 그 자체로 신화가 된 시인 중 하나라 굳이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쓸모없는 짓을 한 번 더 해보련다.


미국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인들이 있지만, 사실 월트 휘트먼과 에밀리 디킨슨, 이렇게 두 사람만 남고 전부 사라진다고 하여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추가하자면 포 정도? 이들은 동시대에 활동했으며 말 그대로 오늘날 미국시와 세계 시를 만든 이들이다. 

휘트먼은 그 중에서도 미국의 윌리엄 블레이크 같은 인물이다. 그가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에도 있겠지만, 그는 블레이크처럼 자신만의 신화체계를 만든 희대의 '미치광이'이며 자신의 굳은 신념과 오만함, 그리고 광신까지 모든 걸 그대로 블레이크를 연상케 한다. 


블레이크가 기독교적 세계관과 이단, 영국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었다면 휘트먼은 철저하게 미국, 아메리카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는 어떤 의미론 굉장히 아이러니컬하다. 그는 자신을 노래하는 개인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미국을 만들고, 미국을 숭상하려는 '국수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그의 미국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가 찬양하는 것은 현재의 미국이 아닌, 자신의 세계체계 하에서의 이상적인 미국과 민주주의고 그는 시인 특유의 오만함으로 그걸 자신이 이끌고 만들 것을 의심치 않았다.



외국에게

-월트 휘트먼


나는 그대가 이 신세계의 수수께끼를 풀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걸 들었다,

미국과 건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그러니 난 그대에게 내 시를 보내니 그대는 거기에서 원하는 걸 보게 되리라.



이 얼마나 오만하며 포부 넘치는 선언인가? 그러나 휘트먼에겐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었고 오늘날 미국을 노래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의 그림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있기에 존재할 수밖에 없고, 미국은 그러한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다. 마치 멜빌의 피쿼드 호가 여러 인종이 존재하는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듯, 휘트먼은 이러한 수많은 개인들을 노래하며 자신의 이상의 미국과 민주정을 만들고자 한다.


나는 나 자신을 기리며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러니 내가 믿는 건 그대도 믿게 되리라.

내게 속한 모든 원자는 그대에게도 속하니까.

- <나 자신의 노래> 中


그의 최고 걸작이자 그를 상징하는 그 자체인 작품은 역시나 <나 자신의 노래>일 거다. 이 방대한 작품은 말 그대로 시인 자아의 오만함을 그대로 상징한다. 서사시인들이 영웅을 찬미하며 조심스럽게(혹은 오만하게) 그걸 찬양하는 자신을 끼워넣는 대신, 미국적인 시인은 자신에 관해 노래하며, 자신을 기린다.


(나 자신의 노래 자체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있으나 사실 그 경계는 무의미하다. 애당초 초판의 경우엔 그러한 구분마저 없었으니 그냥 통째로 한 작품으로 봐도 된다)


모든 사람들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보리알 한 알만큼 더도 덜도 말고

선하든 악하든 나를 향해 말하는 걸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나는 내가 튼튼하며 건강하단 걸 안다

내게 우주의 모여드는 사물은 언제나 흐른다

만물은 나를 위해 쓰였으니 나는 그 의미를 찾아야한다


나는 내가 불멸임을 안다

- <나 자신의 노래> 中


그의 포부는 단순히 자신만을 노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히 광인에 가까울 정도로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고, 미국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에 대해 노래한다. 단순히 미국을 구성하는 백인 이민자 뿐만 아니라, 흑인이나 인디언들까지. 아직 흑인 노예 논쟁이 활발하던 시기, 그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로서 이러한 점을 눈감지 않고 묘사하며 비판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유시의 선구자이다. 번역으론 안타깝게도 느껴지기 힘들지만, 휘트먼을 읽다보면 마치 서투르고 투박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겨운 그런 인상을 준다. 물론 그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때론 어설프게 외국어를 사용하거나 등의 모습도 보여주지만, 오히려 그런 점마저 그의 시체계를 완성시켜준다.


나는 육신의 시인이며 나는 영혼의 시인이다.

천국의 기쁨이 나와 함께 하며 지옥의 고통이 나와 함께한다,

전자를 난 내게 접목시켜 늘리고, 후자를 난 새로운 말로 변환한다.

-<나 자신의 노래> 中


그는 실로 모든 걸 새로운 말, 자신의 말로 변환한 자다. 물론 그가 노래하는 미국과 민주주의는 (안타깝게도) 이상 그 자체다. 현실과는 자연스레 괴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길을 제시한 자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자아를 노래한 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성적 성향마저 포함된다. 그는 자신이 게이임을 딱히 숨기지 않는다. 당대엔 미처 알아채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되었던 면들은 오늘날 무엇보다 활발히 연구되기도 한다. 그가 노래하는 미국과 민주주의는 결국 자신과 같은 자유로운 개인들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휘트먼은 가장 미국적인 시인으로서 누구보다도 가장 범우주적인 시인이 된다.


자연스럽게 휘트먼을 읽고 노래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는 것처럼 된다. 그는 분명 멋진 시인이다.


그에 관한 미사여구를 찬양하는 것은 이미 그에게 영향을 크게 받은 이들 중 하나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멋지게 끝냈음으로 인용하는 걸로 마치겠다.




포르투갈, 무한에서 - 1914년 6월 11일..

이야아아아아아!


이곳 포르투갈에서, 내 두뇌 속 모든 역사적 시대와 함께,

나는 너에게 인사를 건넨다, 월트, 너에게 인사를 건네, 내 범우주적인 형제여,

언제나 현대적이고 영원하지, 견고한 절대들의 가수여,

흩어진 우주의 열정적인 정부여,

사물의 다양성에 몸을 비비는 위대한 동성애자여,

돌과 나무와 사람들과 일꾼들을 향한 욕정으로 가득하구나,

만물의 물질적 실체의 챔피언이여,

깡충깡충 뛰며 죽음에게 다가가고

함성과 외침과 꽥꽥 비명으로 신을 맞이하는 내 영광스러운 영웅이여!

- 페르난두 페소아, <월트 휘트먼을 향한 인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