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바인랜드는 행복했던 60년대 미국을, 모든 것을 잃고 난 80년대 시점에서 조망하고, 다시 되찾으려는 개인의 노력이다. 주인공은 마약중독자이자 늙어버린 히피인 조이드 휠러다. 이로 인해 독자는 마약과 텔레비전으로 중독된 ‘바인랜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최근 읽은 책에서 모더니즘 문학은 ‘불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어떨까? 무수한 정보들이 쏟아지는 현대 사회, 정확한 정보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진다. 맥시멀리즘, 즉 과잉 정보를 주입하는 스타일은 포모 문학에서 자주 사용된다. 포모가 불확실성에 초석을 세우지 않고 ’확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세계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이 불완전 속에서 확실성을 추구하려면 오직 정보들을 산개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정보나 사실을 기술하기란 불가능하다. 확실성은 결국 불확실성으로 변화되고 존재론적 역설로서 남는다. 사실 바인랜드는 핀천의 이전 작품 “중력의 무지개”와 비교되면서 저평가를 당한다. 중력의 무지개가 2차 대전과 로켓의 알레고리로 만든 거대하고, 좋은 의미에서 괴작이라면 바인랜드는 평온한 분위기의 과거를 회상하는, 향수적 모티프로 이루어진 핀천 자신의 옛 시절을 돌아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정확성을 요구하는 리얼리즘 문학에서 부정확한 모더니즘으로의 이행은 하나의 혁신이었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시 불확실성에서 확실성으로 환원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변해버렸다. 더 이상 정확하고 확실한 것은 없다. 과거 모더니즘은 의도적으로 안개를 씌웠다면 현재 포모는 넘쳐나는 사실들로 인해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실재와 부재를 구분할 수 없게 된 혼돈의 시기이다. 여기서 포모 문학의 특징이자 장점이 드러난다. 모든 정보를 소설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럼에도 최대한의 정보 (맥시멀리즘)을 이용해 먼저 흩뿌려놓고 다시 주워남는 과정에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해체와 재구성의 미학.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는 이미 지나갔거나, 아니면 죽어가는 상태에 놓였다. 2000년대를 기준으로 봐도 포모는 사실 시대에 뒤쳐진 수준이다. 이제 우리는 현재, 그리고 다음 세대를 대표할 새 상징이자 사조를 찾아야한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더 발전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보다 과거로의 재이행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바인랜드는 과거, 현재, 미래를 그려내는 핀천식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관념적 공간으로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