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신곡, 팡세, 실락원 등을 유의미하게 읽으려면 적어도 (넓은 의미에서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일정한 공감은 할 수 있어야 함. 기독교적 세계관이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다고 인식을 하고, 나아가 자기자신이 그런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인간과 세계가 어떻게 보일지 같은 걸 막연하게나마 상상은 할 수 있어야 함.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은 그럴 능력이나 태도가 없기 때문에 굳이 시간 내서 읽을 필요가 없음.
그리고 이게 단순히 마음을 열자~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님. 일반적인 교양과 교육의 범위 내에서는 서양문명에서의 기독교의 비중과 성격과 역할 같은 것을 단순 캐리커처 이상으로 알 수 있게 해줄 자원 자체가 없으니까 생기는 문제임. 따라서 본인한테 아주 특별한 의지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해결될 수 없음.
기독교를 초월하는, 인류보편적인 요소들만을 추출해낸다는 식으로 읽는 건 이론적으론 가능하겠지만 솔직히 인생이 아까움. (그런 마인드로 읽는 게 애초에 바람직한지는 차치하더라도)
미술, 음악 등의 경우에도 기독교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이 불가능하다면 많은 걸 놓치고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림과 건물과 조각들이야 책들처럼 시간을 잡아먹는 건 아니니까 봐도 됨. 기독교적 요소가 중요하지만 완전히 지배적이지는 않은 고전들도 (놓치는 게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봐도 됨.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은 그럴 능력이나 태도가 없기 때문에 굳이 시간 내서 읽을 필요가 없음.
그리고 이게 단순히 마음을 열자~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님. 일반적인 교양과 교육의 범위 내에서는 서양문명에서의 기독교의 비중과 성격과 역할 같은 것을 단순 캐리커처 이상으로 알 수 있게 해줄 자원 자체가 없으니까 생기는 문제임. 따라서 본인한테 아주 특별한 의지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해결될 수 없음.
기독교를 초월하는, 인류보편적인 요소들만을 추출해낸다는 식으로 읽는 건 이론적으론 가능하겠지만 솔직히 인생이 아까움. (그런 마인드로 읽는 게 애초에 바람직한지는 차치하더라도)
미술, 음악 등의 경우에도 기독교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이 불가능하다면 많은 걸 놓치고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림과 건물과 조각들이야 책들처럼 시간을 잡아먹는 건 아니니까 봐도 됨. 기독교적 요소가 중요하지만 완전히 지배적이지는 않은 고전들도 (놓치는 게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봐도 됨.
팡세가 그렇게 유명하다길래 읽어봤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단 한순간에 예수쟁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책 덮을때까지 했습니다.
팡세의 저자는 여동생도 수녀고 본인도 독실한 신자. 그냥 시시껄렁한 신자가 아니라 성인 saints 의 호칭을 획득한 수준임. 천주교 신자라면 팡세 저자의 이름을 자기 세례명으로 정하는 게 가능할 지경
그래서 아시아권 대학과 서양 대학 권장도서가 꽤 관점의 차이가 있지
일단 대다수의 한국인은 성경의 피상적인 스토리조차 모르니 본문의 고전 같은 게 더더욱 무감흥. 이집트 왕자 같은 애니가 절대로 한국이나 일본에선 안 나오는 이유지.
실낙원이나 신곡도 20개 이상의 대학, 거의 15개 정도의 대학 권장도서에 포함된 경우가 많지만 한국으로 한정하면 고작 3, 4개 대학으로 돌변함. 희한하게도 스카이를 제외하면 늘 서강대나 성균관대. 서강대야 기독교 학교라서 그렇다 치고 성균관대가 이름이 주는 어감과는 달리 꽤나 기독교 친화적인 듯.
기독교 친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걸. 선교사 대학과 선비 대학이 같을 리가...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가 원동력 아니겠냐.
음 컴플렉스라. 허면 그 컴플렉스는 왜 다른 대학엔 없는지?
학벌 콤플렉스, 패배주의, 시스템의 부재 등등 이유야 많지. 별로 좋은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서 이 경우는 숙명론보다는 독학을 통해 극복하고 시스템 자체를 변혁하는 개인이 중요. 기독교도라면 그런 개인 양성에 기독교가 기여하는 것이 좋다고 믿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