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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다는 건 언제나 인간을 들뜨고 설레게 만듭니다. 새로운 학교, 모임, 사람. 이 모든 신선함은 인간에게 적당한 윤활유가 되고 자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새로움이란 보다 큰 벅차고 거룩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기존에 없던 가치가 창조될 때 새로움의 신화 역시 창조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 신화에 흠뻑 빠져 노닐고 싶어 하죠.
그러나 환경이 점점 익숙해지게 되면, 슬슬 지루해지고 염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인간이 가장 큰 장점인 적응력은 도리어 새로움의 신화를 내던집니다. 신화는 산산이 조각나죠.
<부처스 크로싱>의 배경이 되는 서부개척이란 역사 역시, 과거에는 없던 새로움의 역사였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표류하는 인간은 의문을 가지게 되죠. 인간이 새로움을 정복함으로써 역사를 만드는가? 곧 권태의 역사로 변질된 역사가 인간을 깔아뭉개고 지나가는가?
주인공 앤드루스는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동부에서 자란 앤드루스는 익숙함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권태였죠.
그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새로운 서부개척을 선택합니다. 그가 바란 건 변치 않는 자연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였고, 자연과 공명할 변치 않는 절대적인 자아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앤드루스는 들소 사냥대에 참여하면서 새 희망과 즐거움은 곧 구역질나는 현실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연 역시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파괴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요. 자연의 파괴와 함께 결코 파괴되지 않을 자아와 진리를 찾던 앤드루스의 희망마저 파괴되고 맙니다.
더불어 서부개척이란 새로운 역사의 흐름 속 무기력한 개개인의 공허와, 공허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공포, 역사와 대비되는 유한한 인간사의 씁쓸함을 맛보죠.
폭락한 가죽뭉치와 함께 새로움의 신화는 삶과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인간의 무기력함이란 재만 남긴 채 활활 타버리고 맙니다.
새로움의 신화는 인간을 덮치고, 인간은 신화가 깨지고 남은 파편인 권태란 날카로움에 찔려 피를 뚝뚝 흘립니다.
우리가 낯선 것에서 발견하는 건 결국 지독하게 익숙한 무언가 입니다. 이내 곧 썩은 고깃덩이처럼 변질될 내면의 무언가요.
새로움이란 즐거움을 붙잡으려하지만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 형상. 곧 변질되어 구역질을 선사하는 현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
<부처스 크로싱>은 <노인과 바다>와 유사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강조하는 헤밍웨이와 달리 희망과 삶이 상실되는 부정적인 현실을 형상화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새로움을 창조하는 역사와 적응에 따라 권태로 무너지는 역사, 인간에게 어떤 역사가 진짜 역사일까요?
<부처스 크로싱>은 홀연히 사라지는 삶의 신선함을 잡아내려 하지만 결국 잡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역사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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