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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감상문을 쓴 걸 종종 독갤에 올려볼까 해요 시집 감상문은 거의 처음 써보는데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네요.. 소설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시집엔 죽음이 가득하다. 유령들이 출몰하고 검은 시어들이 등장하고 싸늘한 눈이 내린다. 그렇기에 Lo–fi 라는 시집 제목은 주목할만하다. 의미 그대로 저음질이라는 뜻의,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잡음이나 소음 낀 음악 즉 유령이 내는 모종의 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의미 불명이자 우연의(레코드판과 카세트 테이프의 흠집에서 비롯한) 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우연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우연으로 이루어진 시의 세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그것은 분명 독자가 그 우연의 시에서 어떤 느낌과 감정을 가져가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Ghost」 연작을 보자. 모든 연작 작품은 제목처럼 유령이 중심 소재이다. 유령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젊은 여자, 경비원, 여자의 아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유령들은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있는 양 행동한다. K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Ghost」를 보면 도시는 현재 시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이유로 죽음이 창궐해있다. 신문과 우유 배달부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아무도 없는 도시를 보며 K는 생활을 이어가지만 어디가 꺼림칙하다. 이런 정황은 K가 이미 죽어있다는 즉 이미 유령이라는 점으로 읽힌다. 거기에 더해 꺼림칙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도시를 따듯하고 밝은 빛이 감싼다는 진술은 오히려 시를 더욱 이질적으로 만든다. 시집의 시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이질감을 띄고 있다. 죽은 자가 죽음을 깨닫지 못하고 산 자가 살아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이처럼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가 이미 죽어있는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세계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시의 세계와 시를 읽고 있는 독자는 시를 읽는 동안 죽어있든 살아있든 지금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저지대」 에서는 입 안에 쌓인 말이 자갈이 되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라앉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인물은 자신이 가라앉는 것이 긴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꿈이라는 증거는 시의 어느 부분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3년의 가라앉음 끝에 만나게 된 다른 사람은 마찬가지로 입에 자갈이 가득 차 말을 할 수가 없다. 서로 할 수 있는 것은 눈빛으로 대화하며 가라앉는 것뿐이다. 사실 애초에 그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라앉고 있는 것인지, 방금 막 가라앉기 시작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것은 확실하지 않은 눈빛으로 교환된 의사이기 때문에. 결국 이 시에 존재하는 것은 연고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말없이 가라앉는 장면이 전부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시에 대해 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치 말이 쌓여 자갈이 된 것처럼 그저 시 속으로 가라앉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가라앉는 두 사람은 시인과 독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합창」에서도 죽음이 등장한다. 지휘자 선생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아이들의 울음. 아이들은 버스 안에서 합창 대회를 위해 예쁘게 차려입고 운다. 슬픔은 전염병처럼 퍼져 모든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고 그들은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대회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울음에 이어 토가 나온다. 독자가 대회에서 우승한 것으로 죽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도 전에 그들은 결국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는 알려준다. 그 아이들을 우승시켜줄 법도 한데 시인은 결코 순탄하게 시를 이끌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슬픔을 모르지만 막 슬픔을 배웠다. 배운지 얼마안된 슬픔이 너무 아파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울고 토한다. 그들은 앞으로 울 일이 많을 것이다.
시는 개추
가끔씩 생각나서 읽으러 올 정도로 좋아요!
특히 3문단이 좋네요 원래 시보다도 훨씬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