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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하늘 끝까지,
광대에서 왕까지,
희극에서 비극까지,
영웅에서 물거품까지,
한 줄 요약
그대는 언제까지고 웃으리라!
구차한 독서 배경은 치워두고,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뽑은 자신작, 최고작인 웃는 남자다. 앞으로 자기는 이런 작품을 더 못 쓸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까 그렇더라고. 아, 나쁜 쪽으로 하는 얘기다. 나는 이 작품을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읽는 독법을 찾았는데, 그건 바로 '욕망주의'에 입각해서 읽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욕망을 풀어내기 위한 작품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윈플레인, 데아, 우르수스, 호모, 조시언, 앤, 톰짐잭 데이비드, 그 모든 주조연과 서사의 절대다수와 그보다 더 압도적으로 많은 사설과 TMI가 작가의 욕망을 풀어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작품을 합당하게 설명할 길을 찾지 못하겠다. 열린책들 역자 해설에는 이 작품에 녹아든 철학을 독자들이 찾길 원해 대략적인 배경만 설명해주고 말을 줄였는데, 내 생각엔 그 어떤 철학과 사조, 역사로 이 작품을 규명하고 해설하려고 한들, 작가의 음습하고 음험한 욕망이 그대로 튀어나왔다는 설명보다는 덜 부합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단순히 작가가 그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작가가 지닌 특정 성향과 성벽(性癖) 등을 가리킨다. 그니까 "결국 소설은 작가의 욕망 표출 아님?" 같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아니라, 진짜로 "작가가 원한 건 결국 영국 혐오와 마조암캐를 원하는 성벽과 본인이 지닌 압도적인 양의 지식을 풀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요하게 읽을 수 있는 작가의 사적 욕망은 3가지, 곧 영국 혐오와 마조암캐와 사설 자랑에 있고, 그 외에 서사에 투입된 공적 욕망(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냥 작품의 주제의식쯤 된다)은 프랑스 혁명 정신의 근간인 민중친화적 성향이다. 근데 주제의식은 별로 안 중요하다. 왜냐면 앞선 사적 욕망에 비하면 이건 정말 필요할 때만 튀어나오는 수준이라......
실제로 작품을 읽게 되면 서사의 비중은 상당히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초에 이 작품에서 서사가 가지는 역할은 작가의 사적 욕망 3가지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형태에 불과하기에, 더는 욕망을 풀어낼 수 없다 싶어지면 서사를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특히 3가지 욕망 중에서 초반에 가장 두드러지는 건 사설 자랑인데, 진짜 온갖 타이밍에 사설이 풀리는 것도 모자라 한 챕터 자체가 사설 자랑인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으며, 작품 전체로 따지면 한 챕터 전체가 사설인 게 연속으로 붙어있기까지 한다.
그 사설들이 전부 작품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되느냐고 묻느냐면 no. 대충 훑고 넘어가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말 그대로 진짜 빅토르 위고의 지식 자랑 쇼타임이다. 그것도 수시로 비정기적으로 간헐적으로 산발적으로 열리는 쇼.
파리의 노트르담에 풀린 사설은 그냥 범부 사설이다. 그쪽 사설은 적어도 작품 내에 어떤 위치를 가지거나 특정한 의미가 있거나, 혹은 사설을 통해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이라고 하지만, 웃는 남자에서 사설은 있으나 마나 한, 말 그대로 작가가 사설을 풀기 위해 소설을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결과적으로 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설을 두서없이 쭉 풀어 쓴다.
웃는 남자 상하권 약 1,2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에 사설을 전부 덜어내면 아마 600페이지도 안 될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얘기다. 그만큼 사설이 엄청나게 많고, 그 많은 사설이 활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설들이 믿을 만하냐? 신뢰성이 있느냐? 라고 하면 간혹 역주로 달리는 '나도 이게 무슨 단어인지 모르겠다.' '위고가 만들어낸 단어일 가능성이 있다' 같은 걸 보거나, 콤프라치코스, 앤 여왕을 비롯한 영국 사설 전반을 보면 신뢰도 역시 심히 낮다.
본인이 영국 지리, 역사에 능통한 게 아니라면 그냥 "아 위고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위고는 이런 지식을 자랑하고 싶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것조차 싫다면 서사가 시작할 때까지 눈으로 훑으며 속1독하는 걸 추천한다.
그러나 그 많은 사설을 덜어내더라도 작가의 두 사적 욕망을 피하기란 어렵다. 특히 영국 혐오는 작품의 주 무대가 영국인 만큼 그냥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고 보는 편이 좋다. 콤프라치코스와 앤 여왕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해(앤 여왕은 작품 내내 까인다), 영국 귀족들에 대한 엄청난 증오를 볼 수 있고, 영국에 대한 고증 역시 사설와 연결된 지리와 역사 외엔 작중 인물들은 단 한 명조차 영국인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 빌어먹을 톰짐잭 영수철수민수 같은 작명부터 시작해 모든 주조연 영국인은 영국인이 아니다. 그냥 프랑스 배우들을 데려다 놓은 격이다. 배역 설정만 영국인인 수준. 프랑스 작가가 썼으니 당연히 영국인도 프랑스인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고, 그건 두 도시 이야기에서 찰스 디킨스가 쓴 프랑스인들만 봐도 참작 가능한 부분이긴 하다.
근데 작품 전반에 깔린 영국 혐오를 함께 마주하고 있자니 영국인을 고증을 할 생각이 있긴 한 건가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배경만 영국일 뿐, 전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어디에도 영국인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혐오와 관련된 건 본인이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으니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갈 건 없긴 하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봐도 앤 여왕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묘사가 엄청 박하긴 하다. 그에 비해 조시언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마지막 사적 욕망인 마조암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사설을 풀어내는 거? 내가 그냥 넘기면 된다. 영국 혐오? 작가가 골수 프랑스인이니까 영국 왕정이 엄청 고까울 테고 장미혁명도 병신 같다고 깔 수 있다. 영국인스럽지 않은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정말 견디기 힘든 건 마조암캐다...... 마조는 내가 그냥 갖다 붙인 거지만 암캐는 실제 작중 표현 중 극히 일부다......
위고가 이걸 2030의 젊은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 썼다면 역시 일불일체구나 하면서 프랑스의 씹덕력은 굉장하다고 칭찬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래도 좀 음습하고 음험해서 소름끼친다고 했을지도...... 하지만 문제는 이걸 위고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조시언 묘사를 그렇게 쓰고 대사를 그렇게 썼다는 것이다.
환갑을 넘어서도 아주 정정한 위고의 정력과 성욕에 치얼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위고가 가진 그 필력을 가지고 조시언이 얼마나 야한 몸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열성적으로 묘사하는데 그게 몇 페이지에 걸쳐서 조시언의 몸을 묘사할 때마다 그렇게 나오고, 나중에 그윈플레인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할 땐 십여 페이지에 걸쳐서 자기를 범해달라고 외치는데 그 광기 어린 대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그 뒤에 있는 작가를 인식할 수밖에 없어진다.
근데 그 뒤에는 혈기왕성한 청년이 있는 게 아니라 60 먹은 할배(심지어 서양인이라 수염도 풍성하고 일찍 늙었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뒤에 있는 작가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기엔 이 음습하고 음험한 마조암캐에 대한 욕망을 수 페이지에 걸쳐서 읽고 있으면 현타가 안 오고 싶어도 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 와중에 필력이 좋아...... 프랑스 최강의 필력으로 묘사하는 마조암캐 묘사는 정말 대단하긴 한데, 여러의미로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내가 웃는 남자를 욕망주의로 읽게 된 까닭 역시 이 조시언을 둘러싼 묘사와 대사 때문이다. 데아에 대한 묘사는 사실 조시언에 비하면 그냥 범부다. 그냥 조시언의 반대급부로 잠깐 그렇게 묘사해준 것에 가깝다.(결말 데아 취급을 보면 확실하다)
서사는 욕망발사대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허술하게 짜인 건 아니다. 주제의식과 관련해서도 그윈플레인의 서사는 충분히 영웅적이었으나, 결국 귀족 사회는 민중의 대변인을 쫓아내버렸고, 절망한 영웅은 사랑하는 여인마저 잃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귀족 사회와 민중을 향한 억압에 엄청난 비판을 가하면서도 희망적으로 전개를 끌고 가지 않은 건 결국 배경이 영국이기 때문이다. 위고는 영국을 무지막지하게 싫어하니까! 농담이 아니라 실제 역사가 어쨌든 이 소설에서 위고의 욕망은 매우 자유분방하게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비판적인 스탠스 자체도 우르수스가 그윈플레인에게 잠깐 교육할 때 한 번 나오고, 그 이후에 거의 나오지도 않다가 그윈플레인이 클랜찰리 경이 되어 귀족 회의에 참석했을 때 갑자기 급발진 밟아서 주제의식을 열심히 설파(하지만 이 부분이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얘기를 3번이나 반복해 위고 필력의 저점을 보여준다)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결국 그윈플레인의 의견은 무시당하고 그윈플레인은 쫓겨나가듯 나가고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 귀족에서 다시 그윈플레인으로 돌아갔으나 데아의 사망으로 본인도 자살로 생을 마감. 서사적으로 보면 영국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위고 성향을 생각하면 진짜 맞을지도?
서사만 놓고 봤을 때 그윈플레인을 둘러싼 아이러니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사실 주조연들도 단편적인 캐릭터들이야 있지만, 그런 캐릭터들마저 다 매력이 넘치는 건 사실이다. 심술 그 자체였던 바킬페드로나, 종잡을 수 없는 프랑스인 그 자체인 톰짐잭 데이비드 경이나, 마조암캐 조시언, 츤데레의 화신 우르수스, 요즘에 나왔으면 "작가님 그런 여자 현실에 없어요;;"라는 소리 들을 법한 데아, 그리고 그 어느 때나 웃을 수밖에 없으나 신분은 누구보다 고귀했던 그윈플레인까지.
하지만 이 주조연들이 적절하게 활용됐냐고 하면 사실 서사 자체가 욕망발사대였던 만큼 어이없게 소모되고 끝나는 게 상당수다. 바킬페드로도 그윈플레인을 클랜찰리 경으로 만들고 비중 소멸, 데이비드도 그윈플레인이 클랜찰리 경이 됐을 때 비중 소멸됐다가 뜬금없이 막판에 등장해서 그윈플레인의 멘탈 부수기 막타 치고, 데아는 참피였다.
우르수스, 조시언, 그윈플레인 정도만 분량과 비중, 캐릭터성을 모두 알뜰살뜰히 챙긴 진정한 승리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중에 승리자는 아무도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그나마 욕망 실현이 좌초됐을 뿐인 조시언이 제일 낫긴 하다)
이런 욕망들을 분출하는 걸 60년 묵은 필력으로 풀어내니 죽일 듯이 밉다가도 새삼 감탄하고 마는...... 그런 것의 반복도 한두 번이지 마지막엔 다 내려놓고 봤다. 사실 마지막쯤 가면 작가도 욕망발사대로 쓴 서사가 한계를 맞이했고, 본인도 욕망은 분출할 대로 다 분출해서 그런지(그윈플레인이 주제의식 설파하던 시점) 훅훅 진도를 빼버려서 수월하게 읽은 것도 있다.
특히 결말과 관련해서는 분명 누가 "에이 그래도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내야죠"해서 그렇게 쓰던 중 갑자기 심술보 터져서 확 다 틀어버린 게 분명할 정도다. 위고의 평소 묘사 경향을 생각하면 굉장히 성의없고 빠르게 비극으로 끝냈다. 그냥 본인도 작품에 대한 정이 떨어진 게 보였다. 그냥 19세기 웹소, 결말은 샤이닝로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근데 기성작가가 지 마음대로 쓰고 싶은 대로 써재꼈을 뿐......
그냥 읽어보면 위고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욕망을 여기에 때려박은 건 아닐까? 싶어진다. 그 이상의 감동과 교훈은 못 찾겠다. 나는 빅토르 위고의 영국 혐오와 마조암캐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얘기할 수도 없다. 아니 애초에 이 작품에서 제일 형편없이 조형된 게 주제의식이다. 사설의 완성도(?), 영국 혐오의 개진상(...), 마조암캐의 어필력(!!!)을 전부 따져봐도 주제의식이 제일 못 썼다.
마치...... 순간순간의 구도는 훌륭하지만 전체적인 미감은 조악한...... 아니 사실 순간순간도 사설의 분량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지. 여러모로 해괴한 작품이긴 하다. 못 썼냐고 하면 못 썼다고 할 거고, 잘 썼냐고 하면 잘 썼다고 할 거다. 둘 다 해당되기 때문.
물론 추천은 안 할 거다. 파리의 노트르담과 레 미제라블을 읽었으면 모를까, 그것도 없이 무턱대고 이걸 읽는 건 나는 빅토르 위고와 영원히 손절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
나에게 빌어먹을 독서 슬럼프를 안겨줬지만 미우나 고우나 위고는 위고인지라 디지털 필사도 꽤 많이 했다. 대단한 양반이다. 이딴 걸 당당하게 출판시키고 걸작이라 말할 수 있는 부분'만' 존경함.
어쨌든 이걸로 빅토르 위고에게 내상을 엄청 크게 입었기 때문에 빅토르 위고는 물론이고 불문학은 한동안 쳐다도 보지 않을 것 같다.
나랑 비슷하게 읽었네ㅋㅋ 사설 너무 많은데 줄거리 진행할때는 너무 입체적이라서 이게 별로인 작품인지 좋은 작품인지 애매했음
내가 읽은 첫 고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