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라는 책 읽고있음. 알고보니 강연을 타이핑한거였네. 내용 가벼워서 읽기좋은듯.
내용중에 '비겁한 기질은 없다.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은 있다.' 라고 하면서 비겁함을 만드는 것은 비겁한 행위(포기하는 행위, 굴복하는 행위)로 규정된다는 듯한 주장을 했는데,
나는 애초에 '기질'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졌음. 왜냐하면 사르트르도 기본적으로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 소심한 성격, 다혈질적 기질 자체의 존재는 인정하더라고.
그런데 나는 자꾸 이 경계가 모호하다고 느껴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로우며, 또 내가 기초할 수 있는 그 어떤 인간 본성도 없다' 고 주장했는데,
이에따라 일단 기질, 성격이 본성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생각해야 함.
그렇다면 기질, 성격은 자유로운 인간이 마음을 먹고 행위를 선택함에 따라 변경 가능한 무언가가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된다면 애초에 '비겁함'과 구별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낌.
이런 느낌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기질과 성격의 의미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알고싶음.
인간은 자유롭고 인간 본성은 없다는 식의 주장의 근거가 뭔지, 넓혀 철학의 근거가 역사적인 축적 이외 어떠한 게 있는지 항상 궁금함 - dc App
얘 말로는 인간 본성을 구상하기 위한 신이 없기 때문에 인간 본성이 없고, 따라서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 함.
인간 본성은 신이고 조지고 경험적으로도 수없이 목도하자나. 전체적으로는 언어를 가졌고 (이게 인간 의지가 아니라 타고난 바. 개는 말과 글을 사용 못함) 개별적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기질을 사르트르도 체감했을텐데.. - dc App
나도 읽으면서 일단 이 책이 대중들을 위해 가볍게 쓰인거라 그런지 의문점이 많았는데, 뭔가 조잡하고 철학적 엄밀함을 덜어낸 대신 주체, 자유, 행동에 큰 비중을 둬서 그런가 철학서보다는 고상하게 쓰여진 자기계발서로 느껴짐.
무는 아무것도 없는거라면서 사실 의미가 있고, 인간은 지난 나를 무로 만들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면서 무로 만드는거에 뭔 의미가 있다고 하는 개쌉소리 말바꾸기 장인이라서 걍 그러려니 하면됨 ㅇ
그거 해소하려면 존재와 무를 읽는 수밖에 없음
내가 어떠해야 할 당위도 없는 거랑 내가 실제로 그러는 건 다름
혹시 문예출판사꺼 읽고 있으면 18p '지향' 파트 읽어보면될듯 - dc App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쉽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존재론과 반대된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인간은 태어나서 어떠한 특정한 목적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했고, 만약 목적을 지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최소한 사르트르의 자유에 대해서 말할때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생각하면 되요. 아마 사르트르가 비겁과 신경질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비겁이 지니고 있는 속성에 집중해서 이야기한걸로 기억해요. 즉, 기질이라는 존재 자체는 인정하는 것으로요.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기질이라는 것은 본성인가? 인데, 사르트르는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해서 부정적인 답을 내놓겠죠. 아마 비겁함과 또다른 기질들의 차이는 그것이 수동적이냐 - dc App
능동적이냐의 차이로 구분한 것이 아닐까하네요. 아마 이 부분은 사르트르 존재와 무에서 정신 - 심리학 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다루면서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으실거에요 - dc App
그리고 사르트르도 또한 인간이 인지하지 이전에 지니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고, 이들을 본성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바라봐요. 가령, 한국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는 당연하게 한국인이겠죠? 이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도 우리가 당연시하게 말할 수 있는건데, 이것이 본성인가요?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국가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는 것처럼, 비겁함도 이처럼 이해하시면 도움이 되려나요? - dc App
오 흥미롭군. 사르트르가 인간의 본성은 없다고 말한 것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뭐랄까 되게 거시적인, 넓은 범위의 의미에서 본성이라는 것이고,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 소심한 성격, 다혈질적 기질은 미시적인, 유전적인 개체의 특성 정도로 본다는 의미겠구나. 사트르는 책에서 "기질은 결코 행위가 아니다" 라고 했고 비겁함을 만드는 것은 포기하는 행위 또는 굴복하는 행위라고 했으며, 비겁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궁금한 점은 기질은 마음가짐이나 행위를 변경함으로써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인가? 주체, 자유, 행위를 중요시하는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기질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답의 실마리를 이미 말한 것 같긴 한데, "기질은 결코 행위가 아니다."가 중요한 힌트가 될 것 같네. 그리고 비겁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고 했으니, 아마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추측되네. 이것은 예를들어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0세부터 30세까지는 신경질을 자주 냈었지만 30세부터 죽을 때까지 신경질을 한번도 내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기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행위를 억제한 것이라고 해석되네
그런데 이러면 결국 기질은 본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매우 혼란스럽다... 흑흑 너가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로 구분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 그 관점으로 생각해보고 싶네. 그런데 직관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구분되는건지 감이 안 오네
아니다. 내가 댓글을 잘못 이해했네. 기질과 비겁함의 차이는 능동과 수동의 차이고 비겁함이 본성이 아닌 이유가 유전의 비유구나. 아무튼 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존재와 무를 읽어봐야겠네. ㄳㄳ
본성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변화하기 않는 어떠한 근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한다면, 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르트르의 말로서는 기질 또한 변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만일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결국 다층적인 기질들의 중첩으로 이해하는 되기 때문에 그런 제약 속에서의 삶을 오히려 그는 거부했을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 dc App
그리고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예방적인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에도 행위를 함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없앤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이는 어찌보면 행위로서 신중한 기질을 만들어나간다라는 식으로 이해함이 가능해보이네요. 말씀해주신바에 따르면 비겁한 기질이라고 불리는 것은 비겁한 행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차이가 나는거 같아서 신경질과 다르다고 이야기한거 였어요. 비겁함에 대한 것은, 순전히 그자신이 비겁한 행위를 함에서 인데 반해, 신경질 같은 경우는 신경을 돋구우는 대상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죠. - dc App
그래서 기질이라는 것은 변화함이 가능하죠. 대댓글에서도 이미 비겁한 사람에게는 비겁하지 않을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고 이야기하신것 또한 일맥상통하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 dc App
제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었다면 도움이 되었을거 같은데, 그걸 건너뛰고 바로 존재와 무로 넘어가서;;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게 온전히 옳다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 dc App
'비겁함에 대한 것은, 순전히 그자신이 비겁한 행위를 함에서 인데 반해, 신경질 같은 경우는 신경을 돋구우는 대상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죠.' 라는 말이 흥미롭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생각해봐야겠다. 그런데 본문에서 비겁한 기질은 없다고 했는데, 대화가 길어짐에 따라 착각이 발생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직접 말한 내용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비겁한 기질은 없다.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은 있다' '비겁함을 만드는 것은 포기하는 행위 또는 굴복하는 행위' '기질은 결코 행위가 아니다' '비겁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
그리고 '비겁합' 과 유사한 개념으로 '영웅' 을 들더라. 영웅은 다소 두루뭉술한 추상적인 개념으로 느껴져서 내가 언급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것은 사람이란 원래가 비겁하게 태어나거나 또는 영웅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것은 비겁한 사람은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든다는 것, 영웅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비겁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으며, 영웅에게는 영웅이기를 그만둘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법이다." 라고 했음
여기서 문제는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 소심한 성격, 다혈질적 기질' 과 '비겁함, 영웅' 의 차이겠지. 이것들은 전부 '본성'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 대전제인데 둘 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둘의 차이가 대체 뭐길래 '기질은 결코 행위가 아니다' 라고 했을까?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의 독트린은 오로지 행동 속에만 실재가 있다고 선언한다' 라고 했기 때문에 기질이 더 모호한 개념이 되어버렸고, '기질'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 해당 책에서는 내용이 부실해보이더라.
사르트르가 말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기질은 행의가 아님과 동시에, 비겁한 사람은 비겁한 행동을 함으로서 스스로를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죠? 그렇다는 것은, 비겁함이나 또는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그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일종의 타이틀과도 같은 것이고, 기질같은 경우는 행동이 수반됨에 따라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특성으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가령, 싸이코패스와 영웅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영웅이 영웅인 이유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영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영웅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이고, 그가 영웅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영웅 이었던 자로 불리는 것이 가능하겠죠. 싸이코패스의 경우에는 그가 비록 싸이코패스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 dc App
싸이코패스라고 부를 수 있잖아요? 행위 양상 말고도 충분히 확인가능한 방법들이 존재하니까요. 그렇기레 기질과 비겁함의 차이는 결국 행위가 원인으로서 작용하느냐 아니냐의 유무인것 같네요. 실존주의에서의 실재라는 개념은 어느 실재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될거 같네요. 그것이 자아를 가리키는지 타자를 가리키는지 세계를 가리키는지에 따라서 답이 갈릴거 같아서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