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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상을 받으면 갑자기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느껴진다고 했다. 2년 전에 채식주의자를 겨우 읽고나서는 한강 작가님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노벨상이라니. 안 보이던 의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 읽었던 채식주의자는 재미가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책을 읽는게 조금 버거웠고 지쳤다. 도저히 일을 끝내고 읽고 싶어지지가 않았다. 예술 작품을 보고 재미를 논할 수는 없는 것처럼, 잘 짜여진 소재와 인물들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인물 간의 서사, 대사들이 폭력적이고 날카롭게 날이 잘 벼려져 있는 칼 같았다. 그런데 그 의도적인 장치들이 주제를 위해서 극단적으로 상황을 조성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의도대로 굉장히 읽기 힘들었다. 또 그때도 문학 해석을 잘 못해서 ‘주인공이 감수성이 참 예민하구나, 그런 주인공을 주변에서 어지간히 가만히 안두는구나.’ 정도의 감상 뿐이었다.
대조적으로, 희랍어 시간은 재미있다. 말을 잃어버려 희랍어를 공부하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희랍어 강사인 남자의 더블 주인공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편지의 형식을 통해 아주 조금씩 주인공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들을 수 있게 된다. 두 주인공의 삶을 각자의 방향으로 이야기하다가 희랍어 수업을 통해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마무리 방식도 좋았고 중의성 같은 희랍어의 특성이나 희랍어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통해서 상처를 드러내는 부분도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었다. 언어학적인 부분을 이렇게 차용할 수 있다니 참신했다.
묘사도 좋았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여자가 희랍어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까지 향할 때의 풍경이다. 불꺼지는 상가의 풍경과 거기서 보이는 사람들, 고속버스의 차가운 에어컨 등 서울에서 외곽으로 나오는 고속버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묘사라고 생각한다.
두 주인공의 성장과정에서 등장하는 외국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이국적인 풍경과 외국인으로서의 시선이 환상적이고도 현실적인 외국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리게 한다.
한 작가의 두 소설에 이렇게 다른 감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성공한 가수가 잘써온 성공 공식을 쓰지 않고 스타일을 바꾸는 모험을 하는 것처럼 다른 스타일의 글을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참 다재다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품도 더 읽어봐야겠다.
여담인데 희랍어란 단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봤다.
다른 책들도 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