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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가까웠고 그는 그녀에게 오래전 발트 해에서의 발포 훈련 중 따낸 메달을 줬다. 그가 떠날 때가 되선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배웠고 상대방의 언어에서 몇 단어를 배웠다 — 두려워, 행복해, 감자, 사랑해 ⋯⋯. 새로운 언어의 시작, 아마도 이 세상에서 오직 그들만 할 수 있는 혼성어. 

─중력의 무지개




우리는 인간에게 접근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생각에 접근할 수 없다, 존중과 분노를 동시에 품고서만 그럴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신이다.


─프로엠




관객은 영원히 사춘기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해 처음 해보는 행위를 통해 몸을 던졌지만 그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배우는 나이, 그것이 무한히 지속되는 나이이며, 성취할 수 없는, 즉 세계를 균형 잡힌 상태로 만들 수 없는 운명을 체험하는 시기다.


─영화를 보러다니는 평범한 남자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작품의 '세계'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뭔가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작품이라는 [세계의] 드러냄은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게다가 드러냄이란 원전의 드러냄인데, 이때 원전 텍스트는 기타 언어 간적(translinguistiques) 파생물들에 대한 최초 텍스트일 뿐 아니라, 자신의 고유 언어 공간에서도 최초 텍스트인 것이다. () 번역의 윤리적, 시학적, 철학적 지향은 이 새로움의 얼굴을 자신의 언어 안에서 보존하면서 드러내는 데 있다. 또한 괴테가 말한 것처럼, 작품 본래의 언어 공간 속에서 그 새로움의 효과가 소진되었을 때, 심지어 [번역을 통해] 또 다른 새로움을 제공하는 데 있다.


─번역과 문자: 먼 것의 거처




루크레티우스를 두렵게 한 것은 유물론이 아니다. 루크레티우스 자신을 떨게 만든 것은 이러한 부패이다. () 흩어진 언어와 분산된 본래의 물체, 우연히 구름을 이루어 춤추는 문자들과 파열된 세계는 동일한 고통이고 동일한 죽음이다. 이 문장이 곧 끝나리라는 것 또는 이 낱말이 다른 낱말에 이어진다는 것, 이 나무가 나의 눈앞에서 당장 재로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에게 보장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초의 자연학, 본유적인 불안. 의사, 문헌학자. 신들도 이보다는 덜 무서웠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밀에 귀를 기울여라. 방향을 잃은 문장들, 춤추는 낱말들, 해체된 물체들, 구름 상태의 우주에서 이 근본적인 공포, 부패에 대한 이 공포를 다룰 줄 아는 자가 신의 옥좌를 장악했다. 그는 지고의 전략을 찾아낸 철학자로서, 신의 자리에 앉기 위해 신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다.


─헤르메스





올해 독서 기록을 되짚어보니 대략 두세명의 앵글로색슨과 바게트 뭉탱이들이 뇌리에 찐하게 남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