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 된 버전이 표지가 맘에 들어서 그걸 읽으려 했는데
이미 누가 빌려가고 없었다.
그래서 그냥 상실의 시대를 빌려왔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읽게 된 계기는 그냥 단순히 게임을 끊고 시간이 많이 비어서
책과 친해져보자 하는 마음에서 빌렸다.
1년전 쯤에 잠깐 만나던 여자가 좋아하는 책을 물어봤을때
나는 군대에서 대충 읽었던 노르웨이 숲이라는 제목을 나도 모르게 댔었던 적이 있다.
그 여자가 "아, 상실의 시대?" 하고 답했는데, 나는 두가지 버전의 제목이 있는 줄 그 때 처음 알았다.
아무튼 그때 생각이 나서 읽어보게 되었다.
읽고 난 소감은
내 기억 이상으로 야한 책이었다. 이정도면 거의 야설이 아닌가 할 정도로
스토리의 흐름이 주인공과 여자와의 만남, 급격한 호감, 섹스 순으로 예외없이 전개됐으며
설마 했던 레이코와도 잠자리를 가지는 장면이 나올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레이코의 나이차이는 무려 19살이다)
적나라한 성적묘사가 외설적으로 느껴져
처음엔 재밌지만 약간 의아함이 들었다. 굳이?
그러나 읽을수록 싱겁지 않은 디테일한 묘사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된건데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은
섹스를 통해 내면세계의 상직적인 의미를
문학적 장치로 이용하는것을 좋아하는 작가라고 한다.
일부 독자는 의미없고 소비적인 클리셰로 받아들여서
호불호가 갈린단다.
★인상깊었던 부분 :
기즈키가 죽었을때 조차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어떤 욕망도, 열정도, 적극성도 없던 무색무취의 인간이던 와타나베가
상실을 겪어가면서 감정선이 동요되고 마지막에 미도리를 애타게 찾는 엔딩은
나오코가 기즈키의 대체자로 와타나베를 대했듯이
와타나베 또한 죽은 나오코의 대체자로 미도리를 갈구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상실의 아픔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써.
나오코는 상실을 끝내 극복 못한 케이스,
와타나베는 상실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살아간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내 멋대로 해본 해석 :
나오코와 와타나베 둘 다 두번의 상실을 경험했다.
(나오코는 언니와 기즈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나오코)
작가는 두 사람의 두번의 상실에 대한 상반된 스토리(체념<->극복)를 전개한다.
특히 나오코가 죽은시점부터 선택과 행동이 연쇄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양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조차 결국 둘이 잘 될 수 없는 운명임을 다시 한번 암시하는
흥미로운 대조적 그림을 연출하려 했던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만약 내가 와타나베라면 어떻게 했을까? :
나오코가 죽었더라도 미도리를 방치하지 않고
나오코가 죽은 사실을 말하고 위로를 받으며 이겨냈을 것 같다. 미도리라면 그래 줄 것 같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코와 자지 않았을것 같다.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
사실 나오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와타나베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기즈키의 대체제로써 와타나베가 아니라 누구여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나오코는 기즈키와의 유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기즈키가 죽은 그 순간부터 자신도 포기하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