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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모래 사나이" 제목으로 적은 바 있는 내용임. 다만 그 이후에 민음사에서 임의로 단편집들을 편집해서 그 제목으로 낸 걸 알게 됐음.
그래서 아예 단편집을 전부 읽었으니, 나머지 단편들에 대해서도 감상을 작성해보겠음.
"모래 사나이", "이그나츠 데너"에 대한 부분 및 마무리 부분은 지난번 글의 발췌임을 밝힘.
"밤 풍경"에서는 1부와 2부가 나뉘어 있으므로, 감상은 작품 순서 대로 나열함.

<제 1부>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확실히 모래 사나이가 압권인 것 같음. 모래 사나이는 공포 소설의 효시격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굉장히 강렬했음. 단편인데 이 정도로 강렬한 건 지금까지 시골 의사 제외하면 못 본 것 같다. 짧지만 인상적임. 확실히 19세기 후반부터 유행하던 그 공포 소설의 원형 같다는 생각도 들었음. 뒤의 두 단편들이랑 다르게 구원의 여지도 없는 음습함과 공포를 제대로 보여준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바임.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문학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봄. 난 올해 읽은 것 중 인상적이었던 문학 셋 뽑으면 아마도 첫번째로는 프란츠 카프카의 성, 두번째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고, 세번째가 이 모래 사나이일 것 같다. 물론 이외에도 좋은 작품 많이 읽었지. 근데 나는 확실히 강렬한 인상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듦.

이그나츠 데너는 다소 파우스트가 생각나는 이야기였음. 단편이니까 캔터베리 이야기나 데카메론 등에 실려있는 구원 받는 그리스도교 이야기 같다는 평이 적절할지도. 주인공은 잠시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결국에는 그리스도교로서의 신의를 지키고 구원 받게 됨.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동안 잃은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회개하는 장면이 정말 그리스도교답다고 할 수 있겠음. "결국에는 정의가 이긴다."를 관철하는 문학은 언제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이것도 단편 중에는 인상적인 축에 듦. 다만 모래 사나이보다는 덜함.

G시의 예수회 교회는 기괴함의 플롯을 빌려서 호프만 본인의 예술관을 이야기한 소설이라고 생각함. 결말부에서 화가가 사라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괴이한 부분은 없음. 화가가 미치게 되는 계기에서는 괴이담 같은 부분도 있기는 함. 근데 상기한 두 작품이랑 비교하면 그런 식으로 활용되지도 않음.
작중에서 "자연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진정한 미술은 완성되지 않는다."라는 논조의 이야기가 나옴. 이는 인상주의 예술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견해 같음.
물론 호프만 자신도 기괴함을 표현하기 위해 민담이나 설화를 많이 모방했음. 그런데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재창조를 해낸 점이 위 예술관과 관계 있지 않나 싶음. 그 실례야 뭐 상술한 모래 사나이에서 여실히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상투스는 드물게 완벽히 희극적인 이야기임. 웃기다는 게 아니라 전통적 용례의 결말이 해피 엔딩이라는 뜻임.
이것도 이그나츠 데너처럼 그리스도교의 미덕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움.
근데 솔직히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음. 왜냐하면 그리젤다 이야기 (데카메론과 캔터베리 이야기에 동시에 수록된 민담)라던지 그리스도교의 미덕을 적절히 강조하면서, 그에 더해 보편적 감동까지 거머쥔 이야기들은 많기 때문임. 요컨데 이 단편은 좀 임팩트가 모자라다는 이야기.

<제 2부>

적막한 집은 확실히 훌륭했음. 모래 사나이–이그나츠 데너와 이어지는 을씨년스러운 괴이담임. 이전의 두 작품은 각각 요괴와 악마를 그 소재로 하였는데, 이 작품은 광인이 그 공포의 소재.
언급으로 봐서는 그 대상이 광인이 된 계기에는 어떠한 신화적인 과정이 있는 듯함. 다만 그다지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음. 확실히 여기서 호프만 특유의 기괴함에 대한 표현이 잘 드러나는 것 같음. 모래 사나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듦.
다만 이것도 모래 사나이와 다르게 결말은 희극적인 방향에 가까움. 아무래도 이런 괴이담들은 결말이 비극적인 편이 더 인상적인 것 같다고는 생각함.

장자상속 또한 흔히 있는 민담 구조를 바탕으로 재창조한 이야기임. 소재는 대를 잇는 가문의 저주인 듯. 이 소재야 뭐 한참 전에 소포클레스가 쓴 아가멤논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 성에 대해 황폐하고 괴기하게 묘사한 부분은 약 100년 정도 연대 차이가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성도 좀 떠올랐음. 물론 카프카는 성의 내부는 철저히 비추기를 거부했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앞의 이야기들과 구성이 비슷한 것처럼 느껴짐.
그러나 다른 단편들과 다르게 이중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게 특징임. 아무래도 분량이 단편치고는 긴 편이라 그런가.
전반부는 상술한 대로 공포스러운 묘사가 주를 차지함. 하지만 종조부의 유언부터는 갑자기 위대한 개츠비 같은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변경됨. 그러다가 결말부에 와서는 다시 황폐한 분위기를 환기하며 마무리 됨.
특유의 분열된 구성 때문에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지는 소설인 것 같음.

다음으로는 서원이라는 작품. 이 작품은 호프만이 그의 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했다고 알려져 있음. 이는 역주에 적혀 있었음.
이 작품은 거의 전통적인 비극 서사에 가까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비극의 감상은 무고하고 선량한 주인공이 작은 착란이나 실수를 계기로 항구적 고통을 겪고, 우리가 그것을 동정함으로써 완성된다고 하였음. 위 내용은 그의 저서 중 "시학"에서 언급됨.
이 작품의 내용은 그 설명에 그대로 부합함.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영원히 고통을 겪게 되고, 그것이 절대로 구원될 수 없음을 강조함. 그에 더해 악인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음. 역으로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는 점이 인상적임.

마지막 단편인 돌 심장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함. 비록 기괴함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감동을 잘 녹여낸 작품이라 오히려 호프만이 이렇게도 했나 싶어서.
이 정도면 확실히 그리젤다 이야기랑도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선 그리스도교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 점이 차이임.
다만 타인에 의해서 구원 받고 다시 영광을 찾는다는 구도는 비슷함.
뜬금 없는 이야기긴 한데, 아마도 이 단편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 다른 작품이 생각났음. 문학은 아니고 게임 위쳐 3임. 위쳐 3의 DLC 중에는 직역하면 말 그대로 돌 심장인 것이 있음. 이 단편에서처럼 타인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모두를 불신하는 이가 다른 이의 헌신으로 감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임.
구도도, 소재도, 심지어 제목에서도 비슷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음. 따라서 그 DLC는 확실히 호프만의 돌 심장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것이라고 생각함.

그러고 보면 E.T.A. 호프만 본인이 사후의 자기 명성을 볼 수 있었다면 아이러니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호프만 본인은 작곡가로서 더 활약하고 싶어했는데 정작 잘 알려진 건 소설이라. 소설도 뭐 대충 쓴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에 더 뜻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특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추종해서 자기 성씨까지 아마데우스로 바꿨다는 설을 보면.

여담인데, 난 호프만의 음악도 좋게 들었음. 생각보다 작품을 그리 많이 남기진 않았지만. 그나저나 음악에서는 그다지 괴이함이 드러나지 않는 걸 보면 신기함. 본인이 존경하는 모차르트의 영향이 강해서 그런 것일까? 문학처럼 강렬함에 집중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