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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비韓非는 기원전 230년경에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신불해申不害와

마찬가지로 형명법술刑名法術의 학설을 쫒고, 황로사상을 근본으로 삼았다.


2.유생과 협객이 나라를 망치고, 갑옷입고 투구 쓴 무사가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3. 한비는 특히 `세난說難'편에서 유세의 어려움을 설파했지만, 진秦나라에서

죽어 스스로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세난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용이라는 동물은 길들여 탈 수 있으나, 목덜미 아래의 비늘인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목숨을 일게된다. 군주 또한 역린逆鱗이 있으니 유세

하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할 수 있다.


5. 진왕秦王의 요구로 한비韓非는 진나라로 왔으나, 이사李斯등의 질시로 임용

되지 못하고, 투옥된 후 친구인 이사가 보낸 독약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6. 태사공은 말한다.


노자는 도道로 허무虛無를 추구하고 무위無爲로 세상의 일체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장자 또한 노자가 추구한 자연에 귀결된다.

신불해는 스스로 부지런히 힘쓰며 실제 내용을 고찰하고 명실상부를 요구하는 이론을 실천했다.

한비는 법률조문으로 시비를 명백히 했으나 그 방법이 가혹했으며 은혜가 부족했다

법가의 이론은 도가의 도덕 학설에서 발전한 것이다.







송도진의 사기열전 원전번역 읽기 (매주 화ㆍ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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