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곰아.
곰아.
제 발바닥이나 핥는 재주밖에 없는
곰아.
곰아.
쑥 먹고
마늘 먹고
고쉰번 인도환생 해 보아도,
쌍동이를 만들거나,
역적 도모할까 또 등골을 빼 보아도,
초가 집웅에 박꽃,
초가 집웅에 붉은 고추, 고추, 고추,
모조리 몽땅 마스라 먹는대도
시원치 않은 시원치 않은
추석 달이 뜨네요. 추석 달이 뜨네요.
- 『떠돌이의 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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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가 실린 시집에는 「북녘 곰, 남녘 곰」이라는 묘한 시가 실려 있다. 분단 상황을 직접적인 소재로 다룬 시가 주변에 여럿 깔려 있기도 해서 이 시는 마치 7.4 남북공동성명 전후의 남북관계를 풍자하는 작품인 것처럼 읽힌다. 그리고 전거가 많진 않지만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계속 읽고 보니 여기서의 '곰'이 반드시 정치인에 대한 알레고리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을 겨냥한 표현은 맞는 것 같다. 주제가 거의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 위의 시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연에서 '곰'이 '제 발바닥이나 핥는 재주밖에 없'다는 것은 분단 상황에 머물러서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처지를 가리킨 말이리라고 생각된다. 이러고 보면 곰 부르기를 두 번씩 반복한 것도 '북녘 곰'과 '남녘 곰' 둘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2연에서의 '쌍동이'나 '역적' 역시 분단이나 전쟁의 주제와 잘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장이 닫혀 있지 않은 2연은 3연의 문장과 연결될 수도 있지만 1연의 문장과도 붙이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무슨 말이냐면, 2연의 '쌍동이' 만들기와 '역적'짓 하기가 1연과 이어지면 과거형이 되어서 단군신화 이후 계속해서 인간으로 환생했는데도 지금 그 짓으로 미련한 꼴밖에 안 되었다는 뜻이 되고, 3연과 이어지면 미래형이 되어서 또 한 번 그 짓을 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리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조금 과한 해석일 수는 있을 것 같고, 어느 모로 보나 3연이 지금의 상황을 탄식하는 내용일 것임은 분명하다. 화자의 초가지붕에는 박꽃도 있지만 고추가 훨씬 많다. 이것이 부드러운 것보다 맵고도 열 나는 것이 더 많은 분위기를 환기시킴은 명백하다. 그런 상황에서 뜨는 추석 달은 예뻐 보이기는커녕 웬수 같을 것이다. 가령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박완서가 서울 올림픽을 원망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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