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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크리스마스는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서구화의 상징과도 같은 날이다. 야간통행이 금지된 국가에서 유일하게 그것이 허용되는 특별한 날로써의 60년대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향락적인 공휴일이다. 그 이유는 4편에서 탐구한다. 주인공이유럽에 유학을 다녀오면서 서구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의 차이점을 느끼게 된다. 학문이란 관념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이며 논리적 조작이라 생각했던 동방의 이방인에게 있어 학문을 손에 익은 수공업처럼 다루는 서구의 교수들은 모욕적으로 느껴진다. 작품의 후반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유럽의 학우에게 편지를 받는다. 유럽의 청년들이 크리스마스의 본래 정신을 되찾자는 운동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그의 집에선 크리스마스를 명분삼아 향락적인 파티를 준비한다.

서구의 근대는 결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 반면, 한국의 근대화는 그 시간과 역사를 무시한채 서구의 근대를 무조건적으로 따른 결과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까지 쌓아왔던 전통과 역사는 무시되며 그 결과로 한국의 근대화는 무척이나 비틀린 형태로 진행된다. 한국의 기형적인 크리스마스에서는 그 어떠한 기독교 정신이나 서구적인 정신을 발견할 수 없다. 반대로 어떠한 전통도 찾아볼 수 없다. 이를 상징하는 장면이 1편의 마지막이다. 여기서 성가대(서구)와 아버지(전통) 사이에서 여동생(근대 한국)이 배란다에서 트위스트를 춘다. 이 기이한 장면은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 더 나아가 한국의 근대화를 보여준다. 그녀는 분명히 서구적인 행위를 행함에도 그 정신은 서구적이지 않으며 더더욱 전통적이지 않다.

우리는 서구의 것을 무분별하게 받았지만, 그 결과로 그 정신은 무시된 채 겉의 형식만을 받아들였다. 작가의 다른 작품 총독의 소리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서 한국의 선거는 종교의 제사와 같은 형식이며 한국인들은 그 속에는 관심이 없고 형식에만 관심을 가진다 비판한다. 이렇듯 우리는 근대화를 지나며 과거의 전통이 무너졌으며 서구의 것을 겉으로만 배낀채 그 정신은 전통과 서구 어느 쪽도 아닌 무언가로 왜곡되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났다. 이 빈약한 정신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룩했는가. 여전히 겉만 그럴싸하고 속은 그렇지 못할까. 이번 크리스마스때 고민해야할 생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