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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크리스천이 아니건만, 왜 전세계가 크리스마스를 챙길까? 심지어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났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크리스마스만 되면 예수의 생일을 빌미로 선물을 주고받는 풍경이 훈훈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도 훈훈한 풍습에 동참하여 마음을 전하는 행복을 느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현상의 배경이 무지 궁금했다.

오늘 크리스마스를 맞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다. 펭귄클래식 판본으로 읽었는데, 나는 스크루지의 이야기만 읽을 작정이었는데 막상 책을 펴니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다. 찰스 디킨스가 유독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호기심이 크게 일었다. 연인은 없고 친구는 적은 나에게 그 반대급부로 시간은 많이 있으니 모든 이야기들을 읽어보기로 했다.

디킨스의 작품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꿨다. 이 소설들에 예수의 정신을 본받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디킨스는 크리스마스를 예수의 생일로서 기리지는 않는다. 예수를 믿건 믿지 않건, 크리스마스가 정말 예수의 생일이건, 세계가 12월 25일 하루를 특별한 날로 기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의 생일은 어찌 보면 구실이다. 전세계인이 합의한 이 하루를 빌미로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고 소원해졌던 친구들이 재회하는 기회가 생긴다. 부족했던 사랑을 채우며 마음을 데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유래와 관계없이 소중하다.

개과천선한 스크루지처럼 사는 일은 일생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나를 돌보는 일 하나만 해도 벅차다. 생업에 쫓기다 보면 어느새 공존의 가치를 잊고 자신밖에 모르는 삶을 살게 된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나날들과는 구분되는 단 하루의 날이다. 신성한 취지로 생겨난 날인만큼, 신성한 일을 내 손으로 이룰 수 있는 날이다. "전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마다, 그 성스러운 이름과 유래에서 느껴지는 경외심이라든지 그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 다 제쳐두고라도, 참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친절과 용서와 자비가 가득한 좋은 때죠. 일 년이라는 많은 날들 중에 남녀 할 것 없이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자기와는 다른 길을 가는 별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무덤으로 함께 가는 길동무인 양 생각하는 때가 유일하게 크리스마스거든요." 매일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적어도 크리스마스 하루라도 이렇게 살아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찰스 디킨스가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에게 배웠지만 일상 속에서 내내 제쳐두었던 '사랑과 친절, 자비와 연민의 법칙'을 기념하고 '아무 의심 없이 오직 희망으로' 보낼 수 있는 하루다.

내가 보낸 모든 크리스마스들을 생각해 본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물론 보람찬 일이기는 했지만, 그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의 피상적인 의미, 즉 예수의 생일이라는 의미에 얽매여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다. 잠시 제쳐두었던 사랑을 큰맘 먹고 실천하는 날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면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선물 교환을 때때로 상술 내지는 귀찮은 의무라고 여기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책을 다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벌써 21시다. 크리스마스가 이미 다 지나버렸다. 책을 읽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기쁨을 나누기야 했지만, 디킨스의 생각을 늦게 접해서 아쉬움이 남는 하루다. 만일 「크리스마스 캐럴」을 전야에 읽었더라면 오늘을 더욱 값지게 기념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내게는 내년이 있으리라 믿는다.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면 오늘 배운 내용을 기억하며 더 따뜻한 크리스마스로 만들 것이다. 그렇게 내후년도, 앞으로 맞는 모든 크리스마스도,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