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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편을 안 읽었으면 먼저 읽고 와 줘- 3. 크리스틴 헤이스, 『구약 읽기』 - 요약 위주의 후기. (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685683&exception_mode=recommend&page=1)





5. 구약성경 비평 연구

구약성경의 비평 연구는 17세기 스피노자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19세기 말에 율리우스 벨하우젠이야. 왜냐면 벨하우젠이 아마 성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J문서니 P문서니 하는 4개의 기록물 가설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라서 그럼. 


*벨하우젠의 기록물 가설: 구약성경의 역사 이야기(창세기~열왕기하)가 네 개의 구별 가능한 출처 문서로 구성되어 있고 이 문서들이 서로 다른 역사적 시대에 속하며 따라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반영한다는 주장.


J문서: J는 야훼(여호와)의 약자로 J문서는 고유명사인 야훼를 사용하고, 생생하고 구체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음. 야훼가 의인화되어서 서술됨. 이스라엘 남부 유다 왕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어서 기원전 10세기 남왕국에서 작성되었다고 추측.


E문서: E문서는 이스라엘의 신을 가리킬 때 엘로힘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J문서보다 신이 더 추상적이고 덜 생생하게 표현됨. 신의 계시는 전달자와 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짐. E문서는 일차적으로 북부 족속들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기원전 9세기 북왕국에서 작성되었다고 가정됨.


D문서: D는 신명기Deuteronomy의 약자로 D문서는 정착 농경 생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음. 또 D문서의 특징은 중앙에 있는 하나의 성소만이 야훼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인데 이러한 제사의 중앙화는 기원전622년 요시야왕이 수행한 종교개혁의 핵심 요소임으로, 이 문서는 그 이후에 쓰여졌다고 추측됨. D문서는 북부의 전승또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문서 비평가들은 대체로 D문서가 원래 기원전 8세기 북부에서 작성되어서 북왕국 멸망 후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7세기 말쯤 남왕국에서 완성되었다고 봄.


P문서: 제사장Priestly 문서로, 레위기와 민수기의 많은 부분에서 발견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 제도, 제사 체계, 안식일과 절기, 음식 제약, 유월절, 할례, 정결과 부정의 체계, 도덕적 거룩함과 제사의 거룩함 등이 주된 관심임. 벨하우젠은 P문서의 연대를 기원전 6세기, 즉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 이후로 봄.




기록물 가설. 전통적인 기록물 가설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JE와 D로부터 P로 향하며 진화, 또는 퇴보했다는 식의 도식을 가지고 있다.




원래 책에서는 근현대의 구약성경 비평 연구에 대한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이 길게 나오는데, 사실 벨하우젠의 기록물 가설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함. 왜냐하면 벨하우젠이라는 학자가 가지고 있던 당대의 편견 때문에(기독교의 유대교에 대한 우월적인 믿음) 오늘날에는 벨하우젠의 기록물 가설을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임. 예를들어 벨하우젠은 P문서의 제사와 의식에 대한 집착을 바빌론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 종교의 타락하고 죄가 만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P문서의 연대를 잘못 추정함. 따라서 오늘날의 학자들은 벨하우젠 이론의 일부 견해는 인정하지만 특정 측면들은 거의 의심한다고 보면 됨.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물 가설을 대체한 새로운 연구 방법들도 벨하우젠의 개념정의와 네 가지 문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전제하기 때문에 기록물 가설의 개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야 함. 그래서 좀 지루하지만 기록물 가설의 개념에 대해 약간이나마 자세히 설명해봤어 ㅎㅎ


문서의 출처를 확인하고 구별하는 문서 비평과 상대적 연대를 찾아내고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역사 비평에 집중했던 벨하우젠의 방법론 이후, 독일에서는 최초의 출처 문서가 기반하고 있는 더 이전의 구전 자료나 구약간의 변형을 연구하는 양식비평이나 역사-전승 비평이 발달함(헤르만 군켈). 반면 미국에서는 구약의 내용의 실제 증거를 찾으려는 고고학적 방법론이 발달함(올브라이트 학파).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평과 연구가 발전함에 따라,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기록물 가설의 진화/퇴보 도식은 사라졌다고 보면 됨. 요즘의 견해는 고대 이스라엘 전승을 이루는 별개의, 그러나 대체로 같은 시대에 형성된 각각의 문서가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고 전달되다가 각각의 시점에 최종 형태로 결정되었다고 보는 쪽임.


Ex) 매우 오래된 단편들을 가지고 있는 JE 문서는 기원전 622년에 제사 중앙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그 최종 형태에 도달함. D문서는 기원전 722년 이전의 북왕국 전승이 기원전 7세기 말 유대에서 기록되었다가 유배 시대에 그 최종 편집 형태에 도달함. 마찬가지로 P도 그 이전의 전승들을 유배 시대 또는 유배 이후 시대에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편집함.


 그리고 이러한 구약성경 출처 문서들의 다양성은 최종 편집자에 의해 왜곡되거나 지나친 통일성을 갖도록 편집되지 않았고, 성찰과 논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보존됨. 






6. 신명기적 학파


바로 전 문장에서 내가 구약성경이 지나친 통일성을 갖도록 편집되지 않았다고 했지? 그리고 이러한 편집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상충과 중복이 구약성경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말도 이미 여러 번 말했고. 그런데 동시에 구약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인 유일신 신앙을 핵심 주제로 담고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잖아? 따라서 신명기를 편찬하고 창세기~민수기의 내용을 최종적으로 편집하고 재구성함으로써 토라(모세오경)에 유일신 신앙을 강하게 반영시킨 후대의 편집자 그룹은 매우 중요한데 이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신명기적 학파야. 이 ‘신명기적’이라는 말은 이 그룹이 편찬한 신명기와 D계 문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들이 편집한 모세오경뿐 아니라 여호수와에서 열왕기하까지 이어지는 역사서(전기 선지서)들도 이들의 사관을 공유하므로(이른바 ‘신명기적 역사’) 사실상 구약의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 있어.(물론 율법 위주로 많은 영향을 끼친 제사장계 P문서도 중요함) 그렇다면 이 신명기적 학파의 사고방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1) 왜 ‘오직 야훼’인가?


신명기를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모세는 결국 약속의 가나안 땅에 닿지 못하고 죽게 돼. 물론 그 이유는 바위를 지팡이로 내리쳐 야훼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지만, 성서비평학에서는 신명기 편찬 당시의 환경(바빌론 유수)을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어. 그렇다면 나라를 잃고 떠돌던 유대인들에게 제일 의문인 것은 유일신과 언약을 맺은 우리 선택받은 민족이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느냐겠지. 신명기적 학파의 사람들은 그 답으로 유대인들이 오직 야훼만 섬기지 못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주장해. 이게 바로 신명기적 역사철학의 핵심이라고 보면 됨. 결국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우상숭배이고 그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민족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멸하게 하였다는게 신명기적 학파의 논리이기 때문에, 판관기라던가 사무엘기, 열왕기같은 신명기적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 역사서들은 대부분 야훼에 대한 신앙심을 잃고 이교나 우상숭배가 번성하면 왕이나 판관들이 몰락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이 번영하는 식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남. 신명기계 문서에서 강조하는 제사의 중앙화도 종교혼합을 반대하고 ‘오직 야훼’를 강조하는 신명기계 편집자들의 의도로 볼 수 있겠지. 중요한 건 다른 나라에게 정복된 후 정복자의 신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동화되었던 대부분의 고대 다신교 국가들과 달리, 이런 식의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에게 덮친 비극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독창적인 방식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정복자의 신과 동화되지 않고 그들의 신 야훼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게 만들었다는 점임. 이게 가장 중요함!


(2) 야훼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1)을 통해 신명기적 역사가의 또 다른 기본 생각을 알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의 계획을 변경시킬 수 있고 따라서 신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거지. 이건 1편에서 말한 창세기의 에덴 동산 이야기와도 연동되는 이야기임. 즉, 우리는 구약에서의 야훼가 사실 신약에서의 ‘하나님’ 이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러한 모습들은 구약에서 여러 번 나타나는데, 아브라함의 거듭된 요청에 용서를 위한 의인의 숫자를 계속 줄이는 야훼라던가 자꾸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분노하여 이들을 멸하고 새로운 민족과 다시 시작하려는 야훼를 모세가 말리고 진정시키는 장면이라던가 등등. 이 때문에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기독교 신자들 중 일부가 구약에서의 신인 야훼를 심술궂고 질투하는 엉터리 신이라고 까면서 배척하기도 하고 그럼 ㅋㅋ



플라톤의 책 티마이오스에서 언급되는 최고 신을 본따 세계를 창조한 초자연적 존재 데미우르고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의 신 야훼를 신약에서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불완전한 하위의 신으로 여겼다.






7. 후기 선지서(기독교의 예언서)


후기 선지서들은 쉽게 말해 유대의 큰 역사적 사건들(크게 아시리아 위기/신바빌로니아 위기/바빌론 유수/귀환 후 성전 복구 기간으로 나뉨)에 대한 선지자들의 반응과 예언을 써 놓은 책들임. 선지서들은 기본적으로 ‘오직 야훼’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신명기적 학파와 비슷하지만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우상숭배보다 이스라엘의 윤리와 도덕적 타락에 더 원인을 둔다는 차이점이 있음(물론 호세아, 예레미야같이 우상숭배 비난이 더 강한 선지서도 있음). 심지어는 야훼에 대한 제사보다도 도덕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아모스 5:21~24, 이사야 1:10~17))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도덕과 윤리를 최우선시하는 신의 존재가 별로 낯설지 않을테지만, 고대에는 이런 식으로 신의 본질을 도덕적 속성 그 자체로 보는 종교는 흔한 게 아니었음(그리스 로마 신화나 인도의 베다 신앙같은 것을 생각해보자). 


또한 신명기적 역사가들이 야훼가 이스라엘에게 행한 징벌의 원인과 정당성에 그 관심을 대부분 집중하는 것에 반해, 후기 선지서들의 선지자들은 징벌 이후의 미래의 회복의 시기도 노래하고 묘사함으로써 심판과 더불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하고자 했어. 이런 사고방식은 이스라엘의 종말론이나 이후의 묵시 문학에도 영향을 끼치게 돼.



8. 욥기


욥기는 다른 구약이 그렇듯 근동의 민간설화(바빌로니아 욥기)를 가져다가 변용시킨 이야기임. 욥기에선 일단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개념이 있는데, 첫째로 욥기에서의 사탄은 야훼의 적대자가 아니라 야훼의 부하라는 것임. 즉, 악의 존재를 야훼의 책임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후대의 사탄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악의 문제(절대선인 유일신이 존재하는데 왜 악이 존재하는가?)는 여전히 상존하고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 둘째론 욥의 친구들의 주장이나 몇몇 욥기에 대한 해석들과는 달리 이야기의 시작에서 욥은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이 변경할 수 없는 사실로 확정된다는 것이 크리스틴 헤이스의 견해임. 따라서 욥기는 지금까지 쭉 설명했던 신명기적 학파의 사고방식- 유일신이자 선신인 야훼가 징벌을 내린다면 그건 마땅한 죄와 악에 대한 댓가이고 야훼는 항상 의로운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겐 벌을 준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어. 욥의 죄없음은 이후에 야훼가 욥의 친구들을 꾸짖는 장면에서도 반복적으로 증명되고, 이렇게 죄없는 욥의 고난이 계속되는 욥기의 세계관에선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와 같은 말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주장과 믿음이 되는 거지.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관을 설정해 놓고 욥기의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크리스틴 헤이스는 에드윈 굿과 그린버그의 욥기 분석을 인용하면서 그 답을 설명하는데, 그건 바로 사심 없는 순수한 ‘의로움’ 에 대한 추구임.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위에서 설명한 신명기적 역사가를 한 명 상상해보셈. 아마 그 역사가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현실에 닥친 본인의 고난 속에서도, 결국에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적인 유일신 야훼에 대한 굳은 신앙을 바탕으로 의로운 행동을 계속해서 해 나갈 수 있을 것임. 그렇지만 욥기의 저자가 바라는 의로움은 그 이상을 말하고 있어. 즉, 현실을 넘어 마음 속의 인과응보적인 유일신 야훼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졌을 때, 따라서 의로움이 어떤 보상도 가져올 수 없으며 불합리하고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 때, 바로 그때 역설적으로 의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욥기는 말하고 있는 거지. 이건 한편으론 극한 절망적 상황에서의 도덕적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에게 함부로 악하다고 추정하면서 비난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함.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부터 자주 읽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욥기란 책을 드디어 이해한 것 같아서 좋았음. 이전까지 욥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나의 불만은, 욥기란 책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주제와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면 저자가 악의 문제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 분명한데, 어렸을 때 목사님이 해설해주던 욥기의 관점(욥의 선함이란 인간 기준이지 완벽히 선할 수 없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이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니 믿고 따라야 한다)을 취하던 좀 더 머리가 굵어지고 읽었던 인터넷의 좀 더 냉소적인 해설(욥기의 저자는 기독교 하나님 그 딴 거 다 개소리고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하려는 거다)의 관점을 취하던 악의 문제는 규명되지 않고 끝난다는 거였음. 그러니까 그게 맞건 그르건 욥기의 저자가 생각하는 악의 문제에 대한 답변이 정확하게 나와야 그거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 라도 있는데, 내 기준에선 애매모호하거나 두루뭉술하게 이야기가 끝난다는 생각이 드니까 ‘아니 도대체 저자는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이해가 안 가고 짜증이 났던 거임.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욥기 저자의 의도는 구약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분명함. 그건 바로 유일신 야훼에게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던 유대인들에게 바빌론이 쳐들어와 성전을 불태우고 나라를 멸망시킨 사건은 그들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끔찍한 기억이였고, 이 역사적 사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써 욥기의 저자가 욥기를 썼다는 것. 즉,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은 우리 유대인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하여 벌어졌다는 신명기적 학파나 예언서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야훼를 더 믿고 충성하는 방식으로 그 충격과 슬픔을 완화하고 극복하려고 함. 근데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고, 끔찍한 고통과 아픔 속에 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우도 당연히 많았겠지. 욥기는 그들처럼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도 의롭게 살아야 할 논리를 제시하고, 인과응보적 사고방식의 주류 유대인들에게 현실의 피해자들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공동체 윤리를 지킬 것을 말하고 있는 책임. 따라서 욥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구약을 썼던 당대인들의 사고방식과 유대의 역사에 대한 선행지식이 필요했었음을 이 책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음.


9. 전도서


전도서는 욥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신명기적인 신의 섭리와 인과응보적 정의의 원칙을 공격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어. 전도서의 주된 정서는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라고 볼 수 있음(헛되고 헛되다로 대표되는). 전도서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주제는 인간의 어떤 노력도 결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모든 것은 노력 이전으로 되돌아간다는 일종의 순환적인 사고방식과, 삶을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드는 죽음에 대한 강조임. 다만 이러한 절망과 냉소주의에도 불구하고, 전도서에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음. 그건 바로 어떤 거대한 계획이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추구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라는 것. 일종의 카르페 디엠. 이게 바로 솔로몬으로 가탁한 전도서의 저자가 진짜 말하려는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어. 다만 마지막 12장에 너무 책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에 대해 순종하라는 부분은 전도서의 전체 취지와는 매우 동떨어진 구절인데, 크리스틴 헤이스는 그 부분을 전도서의 메시지가 신경 쓰인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삽입된 구절로 보고 있음. 



10. 다니엘 VS 에스더


다니엘은 구약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묵시 문학으로 볼 수 있음. 근데 묵시 문학이란 무엇일까? 사실 위에서 언급한 후기 선지서들의 선지자의 예언들도 강한 어조로 이스라엘의 멸망이나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있긴 하잖아. 근데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음. 둘 다 최후의 순간/마지막 때에 관해 말하고 있긴 하지만, 고전적인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인간의 역사의 끝이라고는 보지 않은 것과 달리 묵시 문학에서는 종말의 날에 현재의 역사가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새롭게 시작될꺼라고 보았어. 즉, 묵시 문학에서 현시대와 다가올 시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임. 


그럼 왜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며 또 다니엘은 후기 선지서들과 달리 묵시 문학인걸까? 그건 바로 다니엘이 후기 선지서들과는 달리 기원전 2세기의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순교라는 새로운 시련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임. 무슨 말이냐면 위에서 말했듯 후기 선지서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하나의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선지자들이 본 멸망의 원인은 유대인들의 도덕적 타락과 야훼에 대한 불신임. 그런데 기원전 2세기의 유대인들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죽임당하고 있었어.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의 종교 통합 정책를 유대인들이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고 있었던 거거든.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위기는 새로운 방식의 반응을 요구했고, 그건 과거처럼 유대인들이 악을 저질렀다가 아니라 현시대 전체가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나타났어. 따라서 현재의 역사 자체를 야훼가 끝내고 새로운 선의 시대를 열어야만 한다는 사고가 묵시 문학을 낳게됨. 즉, 다니엘은 고통받고 순교당하는 유대인들을 위로하고 고무시킬 새로운 믿음의 논리를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음.


에스더는 구약 중에서 특이하게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책인데 간단한 플롯을 얘기하자면 페르시아 황제의 권신 하만이 페르시아 영내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이를 유대인 왕후인 에스델과 그녀의 양부이자 사촌인 모르드개가 저지한다는 부림절의 기원이 된 이야기야. 많이들 알고 있는 이 이야기는 사실 역사적 실화가 아니라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 말에 쓰여져 기원전 2세기에 최종 편집되고 널리 퍼진 문학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니엘의 흥미로운 대조라고 볼 수 있음. 히브리 성경 중 야훼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유일한 책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에스더는 유대인들에게 신에게 의지하는 수동적인 희망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동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책이야. 기원전 2세기는 위의 다니엘서의 배경에서 말했듯 유대의 역사에서 안티오코스 4세의 폭정과 마카베오 전쟁이라는 큰 위기가 있었던 때임. 그 위기에 대한 반응 중 하나로써 다니엘이 신에 대한 여전한 믿음을 내세웠다면, 에스더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믿음과 순교가 아니라 결속과 저항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구약에서의 그 고유성이 있음.




11. END. 다시.. 구약성경이란 무엇인가?


히브리 성경 타나크(구약)는 전근대 유대인들의 정신세계의 큰 축을 형성한 언약과 구원이라는 주제와 유대교의 핵심인 율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를 대표하는 경전임. 하지만 결국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악의 문제라는 생각이 듬. 다른 종교나 문화권에서도 악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긴 했지만 결코 유대인과 유대교만큼 중요해질 순 없었음. 왜냐하면 다신교의 신은 선악개념이 없고 유대교 이후의 아브라함 종교에서는 사탄같은걸 상정하고 악의 존재를 납득시켰기 때문에. 반면 유대교에서는 악의 문제가 신의 본질이나 종교적 믿음의 근거와 관계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와 결부되어 그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짐. 구약을 이 악의 문제에 대한 대응만으로도 분류할 수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구약의 저자들이 이 문제를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는 점임. 이스라엘인들에게 이 악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토론을 해 최적의 답을 찾는 문제풀이 같은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비극적인 역사와 관련된 삶의 대응 방식이였음. 따라서 이 문제는 한 가지 답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고 그 각각의 방식들도 별로 논리적이지 않거나 모순되는 형태로 나타남.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구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함. 구약이란 모음집이 하나의 종교적 일관성을 가진 교리문집이 아니고 따라서 기독교적인 틀을 전제하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일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아도 그 하나하나의 다양한 삶의 대응들과 방식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서로 다른 시대, 현실, 순간의 경험과 감정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해결책이 정답인지와는 별개로 구약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고전이고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함. 우리 모두 올해가 가기 전에 구약을 다시 한번 완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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