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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양에서 소개했던 대로 18가지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대부분 1940년대 후반~50년대 초반이란 시점에 쓰여진 단편들이다 보니 현대와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시선들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화성 소재가 엄청 많이 나왔는데 작가 안에서 화성은 대체 어떤 이미지일까 궁금하네요.

"대초원에 놀러오세요"는 1950년에 발표된 단편인데 그 때 VR과 유비쿼터스란 소재를 사용했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기술의 편리함을 이용하면서도 꺼림칙함을 느끼는 부모와 그와 대조적으로 기술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라는 구도는 이 뒤에도 자주 나오는데 작가가 가진 첨단기술에 대한 반감과 우려가 보여서 재밌었습니다.

"만화경처럼"은 1949년에 나온 단편으로 사고로 우주공간에 던져져 점점 멀어져가며 죽어가는 동료들을 다룬 단편입니다. 죽음 직전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삶에 대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네요.

"역지사지"는 1951년에 발표한 당시 미국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다룬 단편입니다. 당시 흑인들이 얼마나 처참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지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언젠간 이런 차별들을 넘어 진심으로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찬 메세지가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런 소재를 볼 때마다 아시아인 언급은 없나 찾게 되는 나쁜 버릇이...

"도로가 전해준 소식"은 1950년에 발표한 6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단편입니다. 시기상 당시에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확실히 생생했을 것 같네요.

"그분이 오셨습니다"는 1949년에 나온 단편인데 SF에서 기독교 소재가 나와 흥미로웠네요. "대초원에..."에서도 느꼈지만 작가가 가진 첨단 기술과 이에 매몰된 사람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전통적 가치에 대한 애정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마틴이 무사히 그분을 만나 좋은 말씀 들었으면 좋겠네요.

"기나긴 비"는 특이하게 화성이 아닌 금성을 배경으로 한 1950년에 발표된 단편입니다. 보는 저까지 지치게 할 정도로 처참한 금성의 환경에서 조금씩 미쳐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일광 돔은 과연 정말인지, 아니면 중위가 미쳐버린 것인지...

"로켓맨"은 우주에 홀려 가족 곁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아버지가 나오는 1951년의 단편입니다. 사실 이런 우주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바다의 이미지와 매우 가까운 것 같은데 이 로켓맨도 보면서 뱃사람들과 비슷하지 않나 싶었네요.

"불덩어리 성상"은 "그분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소재를 다룬 단편입니다. 본 단편집이 출간될 때 처음 실렸다고 하네요. "그분이..."에서는 예수님 소재만 가져오고 전통적 도덕관과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간의 대립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불덩어리 성상"은 정말 신과 인간, 죄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엿보입니다. 육신에 따라 죄가 달라진다는 발상도 그렇고 톡톡 튀는 맛이 참 좋았는데 결말은 좀 슴슴하게 끝나 약간 아쉬웠네요.

"세상의 마지막 밤"은 1950년에 발표된 7페이지짜리 짧은 단편입니다. "도로가..."에서도 그렇고 작가가 멸망 직전의 세계를 다룰 때는 꼭 짧게 쓰는 버릇이 있나 싶었군요. 다만 "도로가..."가 위트 있는 결말이 핵심이라면 이 작품은 멸망 그 자체보단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더 메인이란 느낌이었습니다.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은 1949년에 실린 단편인데 다른 단편들에서도 계속 그런 느낌이 있긴 했지만 유독 기술이 파괴하는 구세대의 가치를 부각시켜 보여준 단편이었습니다. 다만 포나 디킨스같은 실제 작가들을 등장시킨 건 개인적으로 불호였네요...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은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신경질적인 히치콕이란 남자에 대한 단편입니다. 깊은 철학적 고찰보단 작가가 자기 전에 든 뜬금없는 발상에서 이어져 쓴 듯한 느낌인데 나름 재밌었습니다. 본 단편집이 출간될 때 처음 실렸다 하네요.

"여우와 숲"은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전쟁을 피해 시간여행으로 1938년 멕시코로 도망친 부부의 얘기를 다룬 단편입니다. 1950년에 처음 발표됐는데 핵전쟁이 아닌 세균전쟁을 다뤘다는 점이 재밌었네요. 또 '죽어가는 이들은 남들도 자기와 함께 죽는다는 사실을 알 때 희열을 느낀다'는 대사를 통해 작가가 가진 전쟁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히에서도 그렇고 요즘 SF에선 자주 볼 수 있는 시간여행자의 말을 막는 심리장벽이란 소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방문객"은 화성으로 보내진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을 다룬 1948년에 나온 단편입니다. 고립된 세상에서 마음을 치유해 줄 기술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만 서로 그 사람을 독차지하려 다투다가 결국 모두가 이를 잃게 되는 시니컬한 결말입니다만 이제 와선 너무 클리셰라 사실 다툼이 시작하자마자 어떻게 끝날지 알 것 같더군요...

"콘크리트 믹서"는 지구의 구세대 가치관을 동경하던 화성인이 화성의 지구침공에 참여했다가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한 맛을 보고 기겁하는 내용의 단편입니다. 1949년에 발표했는데 여러모로 작가가 신시대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싶었네요.

"마리오네트 주식회사"는 자신을 대신해주는 실제 사람같은 로봇, 안드로이드를 다룬 단편입니다. 1949년에 이런 발상을 한 건 놀랍지만 안드로이드가 자아를 갖고 실제 인간의 자리를 노린다는 전개는 이젠 너무 많이 봐서...

"도시"는 2만년 전 지구인에게 멸망당한 도시가 다시 찾아온 지구인들을 이용해 지구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단편입니다. 1950년에 나온 작품인데 오컬트와 SF가 섞인 걸 넘어 마치 중남미 인디언들의 주술과 최첨단 외계인들을 이어 보는 듯한 독특한 시각이 재미있던 작품이었습니다.

"에이치 아워"는 "대초원에..."에서도 다뤘던 신기술에 쉽게 빠져드는 아이들과 조금 꺼림칙하게 느끼면서도 이를 방치해 결국 일을 그르치는 부모들을 다룬 단편입니다. 이게 1947년에 나왔으니 "대초원에..."보다 이게 더 빨랐는데 그래서인지 여기선 외계인이라는 더 심플한 소재를 사용했더군요.

"로켓"은 가족 중에 단 한 명만 로켓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상황에서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룬 1950년에 발표된 단편입니다. 사실 우주여행이란 소재보다도 꿈과 가족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더 중요해 보였다는 점에서는 "세상의..."와 비슷한 느낌이었네요. 결말에서 결국 제한된 환경에서도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 가족들의 꿈을 모두 지켜낸 주인공을 보며 작가가 첨단 기술에 갖고 있는 시각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8개의 단편 모두 재밌는 발상과 놀라운 발상을 보여준 재밌는 단편집이었지만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역시 문신남의 얘기겠네요. 살아움직이며 이야기를 보여주는 문신남이라는 무진장 재밌어 보이는 소재로 시작해놓고선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그냥 흐지부지 끝납니다. 천일야화에선 제대로 셰에라자드가 살아남는 결말 보여줬는데...


오만과 편견에 이어 본 소설인데 사실 오만과 편견도 그렇고 당시 시대의 가치관과 상식이 현대와 다르니 계속 그걸 신경쓰면서 읽게 돼 좀 피곤했네요... 다음에는 현대 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