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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이데올로기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나환자들의 섬인 소록도에 관한 이야기다. 나환자들은 섬에서도 핍박받고 폭력에 희생되었지만, 과거에 주정수라는 원장의 부임으로 자신들의 섬인 소록도의 환경을 개선하고 가꾸어나갔다. 그리고 섬의 복지와 시설들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건설해나가며, 그들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며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시설들을 완공하고 난 다음, 정작 나환자들은 그 시설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섬 밖에서 주정수 원장의 대의로 소록도 나환자 주민들이 이룬 복지 시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몰려오고, 주정수 원장은 처음에 선의의 의도와는 빗나가기 시작한다. 주정수 원장의 ‘배신’의 징후로 동상이 그의 묵인과 주변의 아부로 세워지고, 주정수 원장의 개인적 욕망과 명예욕은 높아지며 그것에 동조하기 위해 같은 처지의 나환자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점점 노동의 강도를 높이며 나환자들의 손가락이 떨어지고 쓰러지더라도 사토라는 주정수 원장의 심복은 채찍으로 사람들을 체벌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단종수술(성기능을 잃게 하는 수술)을 일삼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섬사람들의 분노로 섬사람들은 그들이 은혜를 입은 주정수 원장을 배신해 그는 살해당하고, 그 뒤로 반복되는 원장들의 장엄한 연설과 사람들의 배신의 반복으로 그들은 좌절하고 희망을 잃게 된다.

그렇게 원장들이 많이 거쳐가고 조백헌이라는 원장이 부임하고 난 뒤,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 원장은 소록도에 부임한 초기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말 선의로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큰 계획은 바로 섬과 육지 사이를 개척해 그들에게 농사를 지을 땅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 환자들은 무심했지만, 환자들은 축구 경기와 원장의 연설에 조금씩 마음이 변해,그리고 섬 밖의 뭍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 섬 환자들을 간척사업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간척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거의 성공하게 되고 섬 사람들은 그를 영웅시 하기 시작한다. 그는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되며, 처음부터 그에게 동상(우상)을 만들게 되리라 경고하던 이상욱 과장과, 섬의 가장 어른이자 나환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황희백 노인의 경고로 결국 섬을 떠나가 된다.


이상욱 과장은 조백헌 원장의 실패 요인이 개인은 선의로 했더라도, 그것은 애초에 섬사람들과 바깥 육지 사람들의 차이에 대한 편견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환자들도 자유롭게 인간답게 살고 싶지만, 조백헌 원장은 사실 육지 사람들의 혐오와 서로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 간척사업을 시작했고 동기부여한다. 섬 환자들이 만드는 천국은 낙원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울타리다. 그들과 원장은 나환자들이 떠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낙원을 지으려고 한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인 바깥과 구별짓고 그 구별을 강화하기 위해 울타리를 더 높게 지어올리는 셈이다. 그것은 섬을 크게 확장하든 복지시설을 늘리든 확장하든 상관없다. 그것은 배제의 논리이며, 타자의 배척이고 차이의 강화이다. 결말에서 나오듯이 나환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그들을 이해하고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시선, 그리고 정상인과 환자들의 구별 없음이 그들이 진정 마음으로 원했던 바이었을 것이다.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발전과정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청준도 이것을 상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바깥으로 나가면 증오를 받게되고, 폭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은 배척한다. 그리고 내부로는 스스로의 복지를 위해 ‘자기 스스로 기업가’가 되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동하게한다. 그 안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그 섬 안의 사람들일 수 있다. 처음에는 그들도 즐겁게 일을 하고 자신의 행복이 증진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지치거나, 이데올로기 자체와 또는 상위 계층이나 엘리트 계층의 목표와 다른 계층의 목표가 달라지기 시작한다면…? 또는 하위 계층에서도 분열이 일어나 가진 것을 지키려는 자와 아부하는 자가 생겨난다면?? 거기서부터 ‘배신과 배반’이 시작될 것이다. 서로 증오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섬 사람들처럼 그들은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되고, 지도자들은 당연히 더 믿지 못하게 된다.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안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잃고 항상 분노하고 증오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점점 우상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아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위해 아부하기 시작하며, 우상을 열렬히 자신의 마음을 다해? 지지한다. 마치 라캉이 사람은 주체로 편입되는 순간 자신을 잃게 된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자유이자 하나의 구속이다. 이청준은 그 해답이 미묘하지만 작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본주의와 그 바깥(어쩌면 자연? 어쩌면 다른 이데올로기?)과의 화해 그리고 내부에서 사랑의 실천과 포용이 막연하게 해답이 되리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