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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라 쓰고, 병신이라 읽다
“눈을 뜨니 바퀴벌레로 변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단순히 기상천외한 환상문학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이 이야기가 현대사회의 가족과 물질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임을 깨달았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그러나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 현대사회의 비극을 담은 작품이었다.
바퀴벌레가 된 주인공, 그레고르를 보며 행복을 꿈꾸었으나 끝내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슬픔을 느꼈다. 그가 바퀴벌레로 변한 것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경제적 기능을 잃은 인간에 대한 은유로 보였다. 희망마저 없는 상황 속에서, 그를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 역시 점점 피폐해져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들이 악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작품 초반, 동생 그레테는 바퀴벌레가 된 오빠를 정성껏 보살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 역시 지치고, 끝내 그레고르의 죽음을 통해 가족은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그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것에서 더욱 서늘한 슬픔을 느꼈다.
현대사회의 한 단면이 떠올랐다. 경제적 능력을 잃은 사람들,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이들, 그리고 이를 비난하거나 외면하는 사회. 그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회복지는 숨 막히는 절망감을 준다.
재난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내일 바퀴벌레가 될 수 있는 세상.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뉴스를 보면 오랜 간병 끝에 동반자살을 택하거나, 간병인을 살해한 사건에서 법원이 간병인에게 낮은 형량을 내리는 경우를 종종 접하곤 한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나 용서의 문제가 아니다. 거동이 힘든 사람을 위해 무한한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다면, 지원의 적정선은 어디인가? 오랜 간병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부양자들이 피폐해지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레고르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질문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단순히 뉴스로 접하고 지나치던 문제들이, 그레고르의 시선을 통해 보면 숨막히게 슬프고, 또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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