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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희곡을 많이 읽는다.

불가해한 소용돌이처럼 묘사되는 외부 세계 앞에서 극중인물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희곡이 변주되어 보여지는 모습이 재밌다.

소설이 길게 풀어 쓴다고 한다면, 희곡은 간결한 운문체의 대사와 진행으로 감정과 사건을 눈 앞에 생생히 터트려 보여주는 맛이 있다.

요번에 읽은 괴테의 5편의 극도 그렇고 희곡엔 특유의 속도감이 있다 ㅇㅅㅇ

비극에서는 인물들이 외부의 힘에 튕겨나가 무릎꿇고 과거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한다면, 희극에서는 작중인물들은 자신과 대립하던 세계와 화해한다. 기본적으로 밝은 분위기로 마무리되며 아이러니하고 가벼운 메세지, 때론 고전적 교훈을 남긴다. 희곡집에서 아이러니한 풍자극인 세 개의 극을 제외한 나머지 둘 <이피게니아> <에피메니데스>는 개인적으로 괴테에게 기대했던 고전적인 맛과 흥미까지 잡은 독일 연극의 별미라고 생각된다.


-이피게니에

아가멤논의 비정함, 가문을 내려오는 저주를 마무리짓는 역할로 조명받는 이피게니아. 이 인물은 내가 알기로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에서 잠깐 언급만 되는 것부터, 여러 극에서 다뤄지기를 타인에게 휘둘려 운명 앞에 무릎꿇는 수동적인 역할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이 극에서는 괴테라는 휴머니스트의 은총을 받아 주변인들을 구원하고 화해시키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인간승리의 아이콘으로 등장! 파우스트에서도 <여성적인 것>에 힘을 말하게 되는 괴테는 신화에서 보여지는 고전적인 여성성을 이피게니아에게 부여한다.

초장에는 자신을 데려온 자들 앞에서 무력감에 떨던 이피게니아가 후반부 들어 급작스러운 화합의 아이콘이 되는 재빠른 흐름에 위화감이 들다가도, 이러한 여성성의 원형은 여러 신화와 고전을 통해 친숙하게 접했듯 공감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맥락과 페미니즘 문학에서 나타나는 여성 인물관을 비교진단해보면 유익할 듯!


-에피메니데스

일종의 정치극인 <에피메니데스>. 일이 많으신지 바쁘신 뮤즈느님이 자기 대신 지상에 두고 가는 극중인물로서 과거 그리스의 현인, 에피메니데스가 등장한다. 극 중에서 별다른 대사 비중이 없고, 그나마도 내래이션 성격의 대사를 뱉지만 괴테가 자신의 분신으로 배치시켰다는 해설에 수긍이 갔다. 괴테 자신이 그만큼의 지혜를 가졌다고 은근슬쩍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제와보니 자신은 이렇다저렇다 강단있는 진단을 내리는 스탠스에서 한발 떨어져있다는 암시로도 느껴진다.

극은 '선과악'의 메타포로 흘러간다. <악>한 진영쪽의 군대와 여러 마신들은 당시 최근에 있었던 전쟁과 고취된 애국주의를 비유한다. 여러 대사에서 프랑스와의 전쟁 전황을 묘사한 대사가 있다. 극중인물인 수호천사와 '사랑' '믿음' '희망' 등이 찬미하는 '그 분'은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공 부인 등을 비유한다.

하지만 단순히 정치극으로 프랑스를 향한 일방적인 증오를 표출하는 극으로의 해석은 괴테의 의도와는 다를 것이다. 나는 그 근거를 마신과 극악무도한 군대에 대립하는 극중인물들에서 찾았다. 뮤즈, 수호천사, <믿음, 사랑, 희망> 식의 극중인물이 표방하는 가치는 편협한 민족정신보다는 화합하는 세계정신이고, 단순히 군사 승리에 대한 환호보다는 나라에 만연한 휴머니즘의 무드일 것이다.

200년도 훌쩍 넘게 쓰인 극을 현재 우리나라 형편에 빗대어 공감하며 읽었던 이유도 괴테의 나이스한 휴머니즘 정신 때문일 것이다. 이 사람, 모르긴몰라도 꽤 순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만연했던 편협하기까지한 애국주의자들에게 민족성의 결여로 비난까지 받았다던 괴테는 용감했던 만큼 내면이 순수했을 것이란 믿음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어찌보면 만연한 뿌리깊은 민족주의가 있고, 현실을 보면 여러 차원에서 두 나라, 어떻게보면 세 개의 나라에 까지 그 편협한 민족주의가 발휘될 때가 있다.

한참전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 우리나라 곳곳의 해석주의 역사관을 보면서 지금까지도 씨게 고민하곤 했다.

우연찮게 집어든 희곡집을 통해 괴테에게서 하나의 명제를 건네받은 느낌이 든다.

'어이, 지금보다 더 나이스해질 수 있다.' 오글거리지만 뭐 이런 비슷한 메세지를 듣는 느낌이다. 정말로.

최근 독서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괴테를 칭찬했던 이들은 니체( '에?!'하시는 분들, 진짜임), 루카치, 벤야민이 있다.

정확한 텍스트가 기억나진 않지만, 뉘앙스는 기억이 난다. 그들도 내가 괴테에게 느꼈던 이런 '나이스함'을 두고 괴테라는 작가를 높이 혹은 '괜찮게' 평가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