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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 소설 '고래'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심사위원부터 대중까지 고루 인정받았으면서도 독특하다는 세간의 평가, 무엇보다 '재밌다'는 감상들은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눈길보단 냄새가 맞겠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재밌게 읽었기에 둘의 닮은 꼴에 대한 언급들도(작가 본인은 이에 대해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했지만) 구미를 돋우었다.
일단 소문대로 재밌는 작품이었다. 재미와 흡입력은 결코 그냥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요리에서 맛이 중요하듯 재밌는 작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맛있으면서 몸에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일부 평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는데, 나로서는 정확히 무어라 꼬집기는 그렇지만, 한 번 그 인상에 대해 묘사해보려 한다.
소설이라는 건 허구이면서도 현실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으니 모든 것을 단단한 '벽돌'로 채워넣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소설가는 빈 페이지 같이 텅 빈 작품에 숨을 불어넣어 부풀리는 것이다. 이 '풍선'이란 건 작가의 폐, 즉 삶을 유지하는 온갖 것들을 담아놓고 쏟아내는 인간 정신의 한 기관을 모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야기라는 것은 살아있게 되는 것이며, 독자에 의해 향유될 때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풍선을 불고 싶어도 풍선이란 아주 작은 구멍에도 터져버리는 것. 작중 한 등장인물의 말처럼, '풍선을 터뜨리는 건 손톱만 조금 길러도 충분한 일이'니까.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러 소설적 장치들이 그런 것이며,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이름 붙여진, 원래 우리 삶 속에 만연했다가 창작의 영역으로 적을 옮긴 구시대적 리얼리즘의 심장 또한 그렇다. 그리고 그런 장치들을 원동력 삼아 이야기의 전개만으로도 이를 극복할 수도 있는데, 고래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파천 묵륜공' 같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나선환 같다고 하려다 국산 소설이나 국산 만화에 나오는 기술을 예로 들었다)
아까 풍선을 말했는데, 그것이 숨, 호흡, 혹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무언가를 어떤 형태로 유지되게 하거나 흩어지지 않기 위한 의식의 모방이라면 어떤 소설들은 쉴 틈 없는 전개로 회전하며 그러한 것들을 붙잡아둔다.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는 듯 하면서도 작용하는 힘들이 균형을 이루며 호흡 그 자체의 형태를 이루는 것. 전개와 밀도, 그리고 속도 자체로 작품의 생명력을 구현하는 것은, 그게 쉽든지 어렵든지, 한국 소설판에서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닐 것이며 완성도 면에선 잔뼈 굵은 작가들 못지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소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요컨대, 풍선 없이도 형태가 유지된다고 해도, 작가는 기어코 풍선을 불어넣었다. 아마 작가가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업 등을 통해 글과 가까웠으며 영화적인(?) 순간들에 대한 동경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왜냐하면 이는 작가가 원하는 그림에 대한 욕구로서 표현된 듯 보였기 때문이다. 형태를 파괴하기 위해선 형태가 있어야 한다. 풍선을 터뜨리기 위해선 풍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풍선이 필요했고, 또 터뜨리고 싶어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전개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후반부터인데, 작위적임의 냄새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면서(그게 꼭 나쁘다는 건 또 아니지만) 에피파니적인 클라이맥스를 위한 감성적 빌드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부분도 능수능란함을 잃지 않았고 전반부에 비해 뭐가 좋다 나쁘다 할 것도 없지만, 이 풍선을 터뜨리려는 방식에 '작위'가 들어간 이상 소설가로서의 야심보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본능(?)에 더 힘이 들어갔지 않았나 싶다.
한마디로 이야기(글)의 힘 자체만으로 풍선을 터뜨리고 나오는 게 아니라, 외적인(작위적인) 무언가로 구멍을 낸 것이다.
이야기는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고 마술적인 캐릭터는 신파적인 도구가 되어간다. 클라이맥스는 클라이맥스기 때문에 클라이맥스가 된다. 단어들의 무게는 쌓이지 못하고 옆으로 눕는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고, 이걸 더 좋아하고 높이 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차라리 그냥 바람이 되어 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남는 것 따위 없어도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은 없었을 터이다. 또한 작가의 역량을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인 만큼 소설가로서 글 자체의 힘을 믿었다면 조금 덜 대중적이어도 더 높은 성취를 꿈꿔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그것이 고래라는 소설이 일단 재밌음에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내공도 안되면서 이래저래 말했지만, 한 마디 더 무례를 더하자면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 것은 소설과 시나리오를 같은 글쓰기이기에 같은 기술로 오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맛을 내려면 소금이나 설탕, 간장, 뭐 이런 조미료를 써야 한다. 시나리오는 이런 맛내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건, 비유하자면 그 사람을 우려내는 것이다. 차를 우려내려면 재료를 건조시켜야 하듯, 작가의 쓴 인생 경험들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우려내어졌기에 '쉽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글이 쏟아져 나온 게 아닐까.
이건 본 소설에 대한 아쉬움과도 통하는 것 같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 이야기는 없다지만 작가 본인은 단 한 명 뿐이다. 좀 더 우려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거의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낸 것이다.
고뤠~?! - dc App
whale(왜이래)~
글 좀 치노
그 약간의 아쉬움을 표현하려다 보니 좀 장황해진...
너무 야해
ㅋㅋ 천명관 고래 재밋지 그거재미잇게 봿으면 위화 허삼관매혈기읽어보셈